개요
세바스토폴의 역사와 해군 문화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이나, 바다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건축물을 사진에 담고 싶은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러시아 군사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부두의 상징적인 콜로네이드와 대리석 사자상을 감상할 수 있으며, 주변 만을 둘러보는 보트 투어를 이용하거나, 여러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기념 명판을 통해 과거를 되새길 수 있다. 해 질 녘에는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호객 행위가 다소 지나치거나, 특정 시간대에는 관광객으로 매우 붐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페리/보트 이용
- 부두 인근 포르토플로트 선착장에서 세바스토폴 중심부와 자카로프 광장(Площадь Захарова), 골란디야 마을(посёлок Голландия), 잉케르만(Инкерман) 등을 연결하는 페리 및 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일부 노선 약 20-30루블)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해상에서 도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 도보 및 대중교통
- 세바스토폴의 중심지인 나히모프 광장(Площадь Адмирала Нахимова)에 바로 인접해 있어 도보 접근이 용이하다.
- 주변에 다수의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정류장이 있다.
주요 특징
바다에서 세바스토폴로 들어오는 웅장한 정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다. 넓은 계단 위 흰색 도리아 양식의 열주(콜로네이드)가 인상적이며, 계단 양쪽에는 이탈리아 조각가가 만든 대리석 사자상이 자리 잡고 있어 방문객들의 주요 사진 촬영 장소가 된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부두 주변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해상 보트 투어를 통해 세바스토폴 만과 정박해 있는 흑해 함대의 군함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가라앉은 배 기념비 등 주요 해상 명소를 둘러보는 코스가 인기 있다.
운영시간: 주간 운영 (계절 및 날씨에 따라 변동)
부두의 콜로네이드와 주변에는 세바스토폴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을 기리는 여러 기념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시놉 해전 승리,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피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 등 도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운영시간: 상시 관람 가능
추천 포토 스팟
콜로네이드 정면 계단 중앙
웅장한 흰색 콜로네이드를 배경으로 부두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대리석 사자상 옆
부두의 상징인 용맹스러운 대리석 사자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부두 끝에서 바라보는 남부 만 또는 북쪽 해안
넓게 펼쳐진 남부 만의 풍경, 정박된 선박들, 그리고 건너편 북쪽 해안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러시아 해군의 날 기념 해상 퍼레이드
매년 7월 마지막 주 일요일
흑해 함대의 본거지인 세바스토폴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 백작 부두는 해상 퍼레이드의 주요 시작점이자 관람 장소이다. 다양한 군함과 항공기가 참여하는 장관을 볼 수 있으나, 매우 많은 인파가 몰린다.
방문 팁
부두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저렴한 페리(일부 노선 약 20-30루블)를 이용할 수 있다.
해상 보트 투어 시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
일몰 또는 일출 시간에 방문하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군 축제 기간에는 많은 군함과 퍼레이드를 볼 수 있지만, 매우 혼잡하므로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부두 주변에는 낚시하는 현지인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음료 등은 부두 근처 매점보다 시내 일반 상점에서 미리 구매하는 것이 비교적 저렴하다.
역사적 배경
목조 부두 건설
최초의 목조 선착장이 건설됨. 당시에는 소규모의 단순한 구조였다.
보이노비치 백작의 이용과 명칭 유래
당시 세바스토폴 함대 사령관이었던 마르코 보이노비치 백작이 자신의 별장이 있던 북쪽 해안으로 가기 위해 이 부두를 자주 이용하면서 '그라프스카야(백작의) 부두'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예카테리나 2세 방문 및 석조 계단 건설
예카테리나 2세의 크림반도 방문에 맞춰 목조 계단이 석조로 교체되었으며, 공식적으로 '예카테리닌스카야 부두'로 명명되었다.
존 업튼의 설계로 재건축
공병 대령 존 업튼의 설계에 따라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도리아 양식의 콜로네이드와 대리석 사자상이 있는 웅장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크림 전쟁 시기
제1차 세바스토폴 방어전 당시 모든 보루에 탄약과 식량을 공급하는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1855년에는 부두 근처 화약 운반선 폭발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표트르 슈미트 중위의 봉기
러시아 제1혁명 당시 표트르 슈미트 중위가 이곳에서 순양함 '오차코프'로 이동하여 반란 함대의 지휘를 맡았다.
러시아 내전 이후 피난
브랑겔 장군의 크림 군대가 패배한 후, 약 15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이곳을 통해 러시아를 떠났다.
명칭 변경
'예카테리닌스카야 부두'에서 '제3인터내셔널 부두'로 개칭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소련 전쟁 중 치열한 전투로 파괴되었으며, 1941년 11월에는 순양함 '체르보나 우크라이나'가 부두 근처에서 격침되었다. 1944년 5월 9일 해방 시 이곳에 소련 해군기가 게양되었다.
복원 및 수리
전쟁으로 파괴된 부두가 복원되었으며, 1968-1969년 계단 수리, 1987-1988년 콜로네이드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역사적 명칭 회복
원래의 이름인 '그라프스카야 부두'로 다시 불리게 되었다.
여담
원래 공식 명칭은 '예카테리닌스카야 부두'였으나, 세바스토폴 함대 사령관이었던 마르코 보이노비치 백작이 자신의 개인 선착장처럼 자주 이용하여 '그라프스카야(백작의) 부두'라는 이름이 민간에 더 널리 퍼졌다고 전해진다.
부두의 계단 양옆을 지키는 대리석 사자상은 19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페르디난도 펠리치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1차 세바스토폴 방어전(크림 전쟁) 당시 모든 보루에 탄약과 식량을 공급하는 핵심 통로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부두 건설에는 크림반도에서 채취되는 단단한 잉케르만 석재가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20년 11월, 러시아 내전 이후 약 1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고국을 떠나야 했던 비극적인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언급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러시아 제국 시대의 흥미로운 사진 모음 (블로그 게시물)
해당 게시물에는 1897년 그라프스카야 부두에서 촬영된 선원들의 흑백 사진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