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우크라이나의 현대사와 민족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 탐구자나, 리비우의 주요 랜드마크에서 그의 기념비를 직접 보고자 하는 일반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7미터 높이의 웅장한 스테판 반데라 동상과 그 뒤에 자리한 30미터 높이의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스텔라를 관람할 수 있으며, 넓은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기념비 주변을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기념비의 조형미가 다소 경직되어 있고 구소련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하며, 저녁 시간에는 광장 주변에 노숙인이 머무르거나 일부 청소년들이 소란스럽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습에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리비우 중앙역(Lviv Holovnyi Railway Station)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약 1km, 도보로 약 10-15분 소요된다.
🚇 대중교통
- 기념비 인근에 다수의 트램 및 버스 정류장이 있어 대중교통 접근이 용이하다.
주요 경유 노선은 현지 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7미터 높이의 스테판 반데라 동상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을 기리고 있으며, 넓은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다양한 모임의 장소로 활용된다. 동상 앞에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되새기며 역사적 의미를 탐구할 수 있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동상 뒤편에 세워진 30미터 높이의 아치형 스텔라는 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기둥은 우크라이나 역사의 주요 시대(키이우 루스 시대, 코자크 시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시대, 현대 우크라이나)를 상징한다. 스텔라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기념비 주변 광장은 평평하고 넓어 스케이트보드, 롤러스케이트 등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이다. 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이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스테판 반데라 동상 정면
웅장한 동상 전체를 정면에서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촬영 지점이다.
국가 정체성 스텔라와 동상을 함께 담는 구도
역사적 상징물인 스텔라와 동상을 한 프레임에 넣어 의미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광장과 성 올가와 엘리자베스 교회 배경
넓은 광장과 함께 인근의 아름다운 성 올가와 엘리자베스 교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스테판 반데라 탄생 기념 횃불 행렬
매년 1월 1일
스테판 반데라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리비우 시내 중심가에서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크로피브니츠키 광장의 반데라 기념비에 헌화하는 행사이다. 수백 명의 시민과 민족주의 단체 회원들이 참여하여 그의 업적을 기린다.
방문 팁
기념비가 위치한 광장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이 많아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근의 성 올가와 엘리자베스 교회 전망대에 오르면 기념비와 리비우 시내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광장 주변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기념비의 받침대에는 스테판 반데라의 출생지와 묘소에서 가져온 흙이 담긴 두 개의 캡슐이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 배경
기념비 프로젝트 승인
일곱 차례의 공모전을 거쳐 조각가 미콜라 포시키라(Mykola Posikira)와 건축가 미하일로 페디크(Mykhailo Fedyk)의 디자인이 최종 선정되었다.
건설 시작
선정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기념비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식 개장
성모 안식 축일(포크로바 축일) 전날이자 우크라이나 반란군(UPA) 창설 기념일에 맞춰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여담
스테판 반데라 기념비 건립 프로젝트는 최종 디자인이 확정되기까지 총 일곱 번의 공모전을 거쳤다고 알려져 있다.
동상 뒤편에 있는 30미터 높이의 아치형 스텔라는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기둥은 우크라이나 역사의 주요 시대(키이우 루스 시대, 코자크 시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시대, 현대 우크라이나)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
기념비 건립에는 총 850만 흐리우냐(우크라이나 화폐) 이상의 비용이 들었으며, 이 중 동상 자체 제작 비용은 약 40만 흐리우냐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기념비의 전체적인 조형 양식이나 분위기가 구소련 시절에 세워진 기념물들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