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크림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당시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며 기념비의 예술적 가치를 감상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런던 중심가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경로에 포함시켜 잠시 들르는 경우가 많다.
정교하게 조각된 세 명의 근위병 동상과 '명예' 또는 '승리'를 상징하는 여성상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으며, 기념비 전후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건립 취지와 추모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시드니 허버트 동상도 함께 살펴보며 크림 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이 기념비가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방문객 수가 적다는 점을 언급하며, 크림 전쟁 자체가 대중에게 다소 잊힌 역사라는 점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역 (베이컬루 라인, 피카딜리 라인)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소요.
- 그린 파크(Green Park) 역 (주빌리 라인, 피카딜리 라인, 빅토리아 라인)에서 하차 후 도보 약 10~15분 소요.
역에서 기념비까지는 표지판이 잘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지도 앱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 버스 이용
- 워털루 플레이스(Waterloo Place), 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reet), 폴 몰(Pall Mall) 등 기념비 인근을 경유하는 다수의 시내버스 노선이 있다.
런던 교통 상황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주요 특징
화강암 받침대 위에 서 있는 세 명의 근위병 동상은 각각 그레나디어 가드, 스코츠 가드, 콜드스트림 가드를 대표한다. 러시아로부터 노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청동으로 주조되었으며, 조각가 존 벨의 작품으로 각 인물의 복장과 자세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근위병 동상 위에는 팔을 펼친 여성상이 있는데, 초기에는 '명예(Honour)'로 불렸으나 1914년 이전 후 '승리(Victory)'로 지칭되기도 한다. 기념비 전후면에는 크림 전쟁에서 전사한 2,152명의 장교 및 사병들을 기리는 명문과 건립 관련 기록이 새겨져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1914년 기념비 이전과 함께 설치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시드니 허버트의 동상이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크림 전쟁 당시 간호 혁신을 이끈 나이팅게일과 그녀를 지원한 육군 장관 허버트의 업적을 함께 기리며 전쟁의 다면적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기념비 정면 전체 모습
세 명의 근위병 동상과 그 위의 여성상, 그리고 받침대의 명문까지 기념비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구도이다. 기념비의 웅장함과 역사적 무게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근위병 동상 클로즈업
세 명의 근위병 동상 중 하나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표정과 복장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다. 청동 조각의 질감과 역사 속 인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
나이팅게일 동상과 함께 촬영
근위대 크림 전쟁 기념비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동상을 함께 프레임에 넣어 촬영한다. 두 기념물이 크림 전쟁이라는 공통된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트라팔가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런던의 주요 관광 명소들과 가까워 도보로 함께 둘러보기 좋은 위치에 있다.
기념비의 청동 부분은 크림 전쟁 당시 세바스토폴 포위전에서 노획한 러시아 대포를 녹여 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보면 더욱 의미가 깊다.
워털루 플레이스 주변에는 이 기념비 외에도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과 기념물이 많으니 함께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밤에는 조명이 비춰져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특히 건축물의 디테일을 감상하기 좋다.
역사적 배경
크림 전쟁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연합군 간의 전쟁. 연합군이 승리하였다.
기념비 건립 및 최초 공개
조각가 존 벨(John Bell)에 의해 제작되어 워털루 플레이스에 세워졌다. 세 명의 근위병 동상과 '명예(Honour)'를 상징하는 여성상으로 구성되었으며, 마거릿 조안나 벨에 의해 초석이 놓였다.
초기 조각에 대한 엇갈린 평가
기념비 속 인물들의 슬프고 고뇌하는 듯한 모습이 당시 전쟁 기념비에 기대되던 영웅적이고 이상적인 모습과 달라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눈엣가시'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특히 '명예'상은 '거리의 곡예사가 네 개의 고리를 던지는 모습'에 비유되기도 했다.
기념비 이전 및 구성 변경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시드니 허버트(크림 전쟁 당시 육군성 장관)의 동상을 세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원래 위치에서 북쪽으로 약 30피트(약 9m) 이전되었다. 이때부터 여성상은 '승리(Victory)'로도 불리게 되었다. 나이팅게일 동상은 아서 조지 워커, 허버트 동상은 존 헨리 폴리가 제작하였다.
Grade II 등재 건축물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국의 주요 건축물 및 유적 목록인 Grade II listed building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여담
기념비 제작에 사용된 청동은 크림 전쟁의 격전지였던 세바스토폴에서 연합군이 노획한 러시아군 대포를 녹여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 건립 당시, 기념비에 표현된 병사들의 비통한 표정과 자세는 전통적인 전쟁 기념비의 영웅적인 모습과 달라 논란이 있었다. 한 비평가는 '명예'를 상징하는 여성 조각상을 두고 **'거리의 곡예사가 고리 네 개를 던지는 모습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기념비 옆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동상이 세워진 이후, 많은 이들이 '램프를 든 여인'으로 알려진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기념비 전면 명판에는 1861년 '마거릿 조안나 벨(Margaret Johanna Bell)'이 기념비의 초석을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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