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런던의 항구 및 무역 역사, 특히 대서양 노예 무역과 관련된 과거를 탐구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아이들과 함께 교육적인 시간을 보내려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템스강을 중심으로 한 런던의 발전 과정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 및 모형을 관람할 수 있으며, 과거 부두 노동자들의 삶을 재현한 '세일러타운(Sailortown)' 거리를 거닐거나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 '머드락스(Mudlarks)'에서 인터랙티브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일부 전시관의 조명이 다소 어둡고, 특별 전시는 별도의 유료 티켓이 필요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언급된다.
접근 방법
🚇 도크랜즈 라이트 레일웨이 (DLR)
- West India Quay 역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분 거리에 위치한다.
박물관까지 가장 가깝고 편리한 방법 중 하나이다.
🚇 지하철 (Tube)
- Canary Wharf 역 (Jubilee Line, Elizabeth Line)에서 하차 후, 도보 약 10-15분 소요된다.
카나리 워프의 현대적인 금융 지구를 지나 박물관에 도착하게 된다.
🚌 버스
- Westferry 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135, 277, D3, D7번 등의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주요 특징
대서양 노예 무역과 설탕 산업이 런던의 부와 발전에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박물관의 핵심 전시 중 하나이다. 당시의 유물, 이야기, 시각 자료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19세기 런던 부두 지역의 활기 넘치던 거리와 상점들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공간이다. 어둑한 골목길, 선술집, 상점 등을 거닐며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인터랙티브 체험 학습 공간이다. 부두와 관련된 다양한 놀이와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안전한 소프트 플레이 공간도 갖추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어린이 동반 시 '머드락스(Mudlarks)' 소프트 플레이 센터는 인기가 많아 사전 온라인 예약이 필수이다.
짐 보관이 가능한 사물함(£1 유료)이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무료 입장이지만, 박물관 운영 지원을 위해 £5 정도의 기부를 권장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3층(노예 무역, 1600-1840년대)과 2층(세일러타운, 1840년대-현재)을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방문 전 박물관 공식 웹사이트에서 특별 강연, 워크숍, 가족 프로그램 등의 진행 여부를 확인하면 더욱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충분하며, 1층 카페 근처에 수유 의자 및 아기 기저귀 교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역사적 배경
설탕 창고 건립
현재 박물관 건물인 'No. 1 Warehouse'가 조지 왕조 시대 서인도회사 설탕 창고로 지어졌다.
소장품 이전
런던항만청(Port of London Authority)의 박물관 및 아카이브 소장품이 런던 박물관(Museum of London)으로 이관되었다.
런던 도크랜즈 박물관 개관
템스강과 런던항의 역사를 주제로 런던 도크랜즈 박물관(당시 Museum in Docklands)이 공식 개관하였다.
'런던, 설탕, 노예' 전시 시작
영국의 대서양 노예 무역 폐지 200주년을 기념하여 '런던, 설탕, 노예(London, Sugar & Slavery)' 상설 전시가 시작되었다.
여담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1802년에 건설된 서인도회사의 설탕 창고 중 하나로, 당시 'No. 1 Warehouse'로 불렸다는 얘기가 있다.
박물관 소장품의 상당 부분은 과거 런던항만청(Port of London Authority)이 운영하던 박물관과 아카이브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유명 배우이자 방송인인 토니 로빈슨(Tony Robinson)이 해설하는 영상 자료가 박물관 내에 상영된다는 언급이 있다.
카나리 워프의 현대적인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붉은 벽돌의 역사적인 건물이라는 점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1층에는 세인즈버리(Sainsbury's) 슈퍼마켓의 역사를 다룬 전시 공간이 있는데, 이는 세인즈버리가 박물관의 초기 주요 후원사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feature_0_174775750599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