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과 생활상에 관심이 깊은 역사 애호가나 고고학적 탐구에 열정적인 방문객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특히 잘 보존된 목욕탕 유적을 통해 로마 제국의 찬란했던 문화를 직접 확인하려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넓게 펼쳐진 야외 공간에서 고대 목욕탕의 냉탕, 온탕, 열탕 등 주요 시설의 구조를 직접 살펴볼 수 있으며, 함께 전시된 로마, 비잔틴, 셀주크 시대의 다채로운 비석, 석관, 건축 부재 등을 통해 과거의 기록과 예술 양식을 탐구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전시된 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직원들의 안내 및 시설 관리가 다소 미흡하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또한, 그늘진 휴식 공간이 많지 않아 특히 더운 날씨에는 관람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시
- 앙카라 지하철 울루스(Ulus) 역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소요.
- 울루스 광장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가능.
유적지는 창크르 자데시(Çankırı Caddesi) 변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 쉽다.
🚗 자가용 이용 시
- 전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유적지 주변 골목길에 주차해야 한다.
- 주차 공간이 협소할 수 있으므로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한다.
주요 특징
3세기 카라칼라 황제 시대에 건설된 대규모 목욕탕 유적으로, 냉탕(Frigidarium), 온탕(Tepidarium), 열탕(Caldarium)의 구조와 함께 독특한 지하 난방 시스템(Hypocaust)의 흔적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잘 보존된 벽돌 기둥과 바닥 구조는 당시 로마 건축 기술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석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언어(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로 새겨진 비문이 있는 비석, 정교한 조각의 석관, 제단, 건축 부재 등을 통해 당시의 장례 문화와 예술, 다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목욕탕 동쪽 편에서는 고대 안키라(Ancyra)의 신성한 구역(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신전 지역)으로 이어졌던 열주 도로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코린트식 주두를 가진 대리석 기둥들은 과거 도시의 웅장함을 짐작하게 한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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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히포카우스트 시스템 전경
지하 난방 시설의 독특한 벽돌 기둥 구조가 잘 드러나는 지점에서 고대 건축의 지혜를 담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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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비문이 새겨진 비석군
여러 언어와 문양으로 장식된 고대 비석들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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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에서 바라보는 앙카라 시내
고대 유적 너머로 펼쳐지는 현대 앙카라의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아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방문 팁
튀르키예 뮤지엄 패스(Müzekart) 소지 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입장권 구매 시 현금만 사용 가능할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편리하다.
야외 박물관으로 그늘이 부족하므로, 여름철 방문 시에는 모자, 선크림, 양산, 충분한 물을 챙기는 것이 좋다.
전시된 유물에 대한 상세 설명이 부족한 편이므로, 방문 전 관련 역사 정보를 미리 찾아보고 가면 더욱 유익한 관람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방문객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하고 여유롭게 유적을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역사적 배경
프리기아 정착
목욕탕이 세워진 언덕(호육)에서 프리기아 시대의 정착지 유물이 발견되어, 이곳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로마 목욕탕 건설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의 명으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를 기리기 위해 대규모 목욕탕 단지가 건설되었다. 당시 안키라(Ancyra)는 갈라티아 속주의 주도였다.
목욕탕 사용 및 번영
건설 이후 약 500년 동안 로마와 비잔틴 제국 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사용되었고, 여러 차례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화재로 인한 파괴
대규모 화재로 인해 목욕탕 건물이 크게 파괴되어 지하층과 1층의 일부 유적만 남게 되었다.
발굴 조사
렘지 오우즈 아륵(Remzi Oğuz Arık) 교수, 하미트 Z. 코샤이(Hamit Z. Koşay) 등의 주도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진행되어 목욕탕 유적과 함께 프리지아, 로마, 비잔틴, 셀주크 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야외 박물관으로 개방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야외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여담
이 목욕탕이 자리한 고원은 전통적으로 '창크르 카프(Çankırı Kapı)'라 불리는 '호육(höyük)', 즉 고대 유물이 겹겹이 쌓인 언덕 형태의 유적지라고 한다.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수많은 동전들은 목욕탕의 건설 시기를 카라칼라 황제 시대로 특정하고 약 500년간 사용되었음을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앙카라의 겨울이 유난히 춥기 때문에, 이곳의 온탕(tepidarium)과 열탕(caldarium)은 다른 로마 목욕탕에 비해 특별히 더 넓게 설계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유적지 내에서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다양한 언어로 새겨진 비석들이 발견되어, 고대 안키라가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던 국제적인 도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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