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수차례의 지진과 화재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복원된 독특한 내부 모습과, 포르투갈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목격한 장소로서의 의미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특별한 분위기의 종교 건축물을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검게 그을린 기둥과 손상된 대리석 등 1959년 대화재의 흔적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으며, 여러 차례의 재건을 거치며 변화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적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다. 매일 거행되는 미사에 참여하거나, 잠시 좌석에 앉아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경건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일부 방문객들은 특정 직원의 응대가 다소 불친절하거나 외국인에게 비우호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리스본 시내 중심부의 호시우 광장(Rossio Square) 또는 마르팀 모니즈(Martim Moniz) 광장에서 도보로 약 5~10분 거리에 위치하여 접근이 용이하다.
🚇 대중교통
- 가까운 지하철역은 호시우(Rossio, 그린 라인) 역이다.
주요 특징
1959년 대화재로 인해 검게 그을리고 손상된 기둥과 벽면을 의도적으로 복원하지 않고 남겨두어, 다른 성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상처 입은 아름다움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역사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1506년 유대인 대학살(리스본 학살)이 시작된 장소이자, 과거 포르투갈 종교 재판이 열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왕실의 주요 행사(결혼식 등)가 거행되기도 했던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으며, 이러한 배경은 성당 방문에 더욱 깊은 의미를 더한다.
1241년 건립 이후 1531년 지진, 1755년 대지진, 1959년 대화재 등 수많은 재난을 겪고도 다시 일어선 불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현재의 모습은 바로크 양식을 기반으로 여러 차례 재건된 결과물이며, 그 과정에서 파괴와 복원의 흔적이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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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기둥과 벽면
화재로 인해 손상된 기둥과 벽은 성당의 비극적인 역사와 독특한 분위기를 가장 잘 담아내는 배경이 된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활용하면 더욱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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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제단과 천장
파괴와 재건을 반복한 역사를 상징하는 제단과 새롭게 복원된 천장의 대조적인 모습은 성당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과 함께 촬영하면 경건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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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내부 전경
성당의 웅장한 규모와 함께 화재의 흔적이 어우러진 전체적인 모습을 한눈에 담으면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다. 광각 렌즈를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없으나, 성당 유지를 위한 기부금을 받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평일에는 비교적 방문객이 적어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은 일반적으로 허용되지만, 미사 중에는 예의를 지켜 자제하는 것이 좋다.
민소매와 같이 노출이 있는 복장은 입장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시 복장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출구 근처에 성당의 역사와 관련된 설명이 담긴 안내판이 있으니, 관람 후 읽어보면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역사적 배경
성당 건립
성 도미니코 수도회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
리스본 학살
성당과 광장에서 유대인 신자(새로운 기독교인) 수천 명이 기독교 폭도들에게 학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진 피해
리스본 지진으로 성당이 손상되었다.
리스본 대지진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성당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제의실과 주 제단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가브리엘 말라그리다 처형
반역죄로 고발된 예수회 선교사 가브리엘 말라그리다가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재건
대지진 이후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1807년에야 완료되었다.
왕실 행사
포르투갈 공화국 수립 이전까지 왕실 결혼식 등 주요 국가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대화재
8월 13일, 성당 내부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중요한 그림과 조각품 등 내부 장식이 전소되고 건물 구조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진화에 6시간 이상 소요되었고, 소방관 2명이 순직했다.
복원 및 재개장
수십 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재개장했다. 이때 화재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겨 현재의 독특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여담
성당 내부의 검게 그을린 기둥과 붉은빛이 감도는 벽은 1959년 대화재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존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곳은 과거 포르투갈 종교 재판이 열렸던 장소 중 하나로,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고통받거나 처형당한 어두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1959년 화재는 매우 격렬하여 성당 내부의 대리석마저 녹아내릴 정도였다는 언급이 있으며, 이로 인해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1506년 유대인 대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는 얘기가 있다.
파티마의 세 목동과 관련된 유물 두 점이 성당 내부에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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