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 수용소의 역사를 배우고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역사 학습자와 성찰을 원하는 방문객이 주로 찾는다.
이들은 수용소 유적을 둘러보고 박물관의 증언과 유물을 통해 과거의 참상을 마주하며, 오디오 가이드로 깊이 있는 이해를 더할 수 있다.
일부 관람객들은 전시가 주로 읽거나 듣는 정보 위주여서, 시각적인 볼거리를 기대하는 경우 다소 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트리에스테 시내에서 리시에라 디 산 사바로 향하는 버스 노선이 있다.
정확한 노선 번호와 운행 시간은 현지 교통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이용
- 내비게이션에 'Via Giovanni Palatucci, 5, Trieste' 주소를 입력하여 찾아갈 수 있다.
- 인근 네레오 로코 경기장(Stadio Nereo Rocco) 또는 대형 슈퍼마켓 주차장에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다.
주요 특징
과거 쌀 도정 공장이었던 건물은 나치 강제 수용소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방문객들은 당시의 암울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건물과 안뜰, 감방으로 사용되었던 공간들을 둘러보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 파괴된 소각장 자리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당시 수용소의 운영 실태, 수감자들의 생활, 나치의 만행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역사 자료, 사진, 유물, 생존자들의 증언 영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탈리아 내 유일하게 소각장을 보유했던 이 수용소의 역할과 비극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는 각 전시 공간과 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여 관람의 이해도를 높인다. 이탈리아어와 영어 등 다국어를 지원하며, 약 40분 정도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방문객이 오디오 가이드 이용을 추천한다.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이나,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 약 3~3.5유로의 오디오 가이드 이용이 권장된다.
방문 시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정숙한 관람 태도가 요구되며, 직원이 관람 예절을 엄격히 관리하는 편이다.
감정적으로 힘들 수 있는 장소이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일부 방문객은 손수건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인근 네레오 로코 경기장(Stadio Nereo Rocco) 또는 슈퍼마켓 주차장에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다.
박물관 내 설명은 주로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제공된다.
방문객의 안전과 존중을 위해 내부 일부 구역에서는 사진 촬영이 제한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물 건립
원래 쌀 도정 공장(Risiera)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이 세워졌다.
나치 강제 수용소 운영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점령 하에 정치범, 유대인,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및 민간인들을 구금, 살해하고 아우슈비츠 등 다른 절멸 수용소로 이송하는 중간 기지로 사용되었다. 이탈리아 내 유일하게 소각장(화장장)이 설치 및 운영되었으며, 약 3,000~5,000명이 이곳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치는 퇴각 직전 소각장을 파괴했다.
난민 수용소
전쟁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당파 군인 및 가족, 이후에는 이스트리아, 피우메, 달마티아 등지에서 온 이탈리아계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국립 기념물 지정
이탈리아 대통령령에 의해 국립 기념물(Monumento Nazionale)로 지정되었다.
시민 박물관 개관
건축가 로마노 보이코(Romano Boico)의 설계로 재정비되어 '리시에라 디 산 사바 시민 박물관(Civico Museo della Risiera di San Sabba)'으로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담
이곳의 명칭 '리시에라(Risiera)'는 원래 쌀 도정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역사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설치된 나치 수용소 중 유일하게 소각장(화장장)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당파 군인 및 가족, 그리고 1950년대에는 구 유고슬라비아 영토에서 온 이탈리아계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난민 수용소로도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박물관의 모습은 건축가 **로마노 보이코(Romano Boico)**의 설계를 통해 1975년 재정비된 것이라고 한다.
슬로베니아의 저명한 작가 **보리스 파호르(Boris Pahor)**도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다하우, 나츠바일러-슈트루트호프 등 다른 강제 수용소로 이송된 바 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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