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미를 감상하거나, 팔레르모의 역사적인 중심가와 바다를 잇는 상징적인 관문을 직접 거닐며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역사 및 건축 애호가, 또는 도시 탐험가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두 개의 거대한 기둥으로 이루어진 문의 웅장함을 경험할 수 있으며, 문을 통과하며 한때 카사로로 불렸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와 포로 이탈리코 해변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공간감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문 상단의 정교한 조각들과 문장을 통해 당시의 예술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거나 특별한 볼거리가 많지 않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갈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을 보이기도 하며, 문 주변이 다소 정비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는 언급도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팔레르모 구시가지(첸트로 스토리코)의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를 따라 바다 방향으로 걸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버스
- 팔레르모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 무료 시내버스 'Free Centro Storico' 노선이 포르타 펠리체 근처를 경유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해당 노선을 확인하는 것도 좋다.
🚗 자가용
- 포르타 펠리체 주변 도로나 인근에 주차할 수 있으나, 주차 공간이 협소하거나 유료일 수 있다.
- 이 지역은 ZTL(Zona Traffico Limitato, 교통제한구역)의 시작점이므로, 운전 시 진입 가능 시간 및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
일부 리뷰에 따르면 불법 주차 관리인처럼 행동하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있다.
주요 특징
팔레르모의 가장 오래된 중심 도로인 카사로(現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기념비적인 문이다. 도시에서 바다로, 또는 바다에서 도시로 들어서는 경계로서의 역할을 하며, 팔레르모의 역사적인 주요 통로 중 하나이다.
두 개의 거대한 기둥으로 구성된 이 문은 건설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가지 건축 양식을 모두 보여준다. 도시를 향한 안쪽 면은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을, 바다를 향한 바깥쪽 면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문 상단에는 팔레르모와 합스부르크 군주를 상징하는 독수리 조각과 건설을 명한 콜론나 가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다.
1582년 시칠리아 총독이었던 마르칸토니오 콜론나의 지시로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내인 **펠리체 오르시니(Felice Orsini)의 이름을 따서 '포르타 펠리체(행복의 문)'**라고 명명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문 전체 정면 (바다 쪽 또는 도시 쪽)
두 개의 웅장한 기둥으로 이루어진 문의 전체적인 모습과 건축 양식을 담을 수 있다. 특히 바다를 배경으로 하거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를 배경으로 촬영하면 인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
문을 하나의 프레임처럼 활용하여 문 사이로 보이는 바다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의 모습을 촬영한다. 문의 아치 형태가 자연스러운 액자 효과를 준다.

문 상단 조각 및 장식 디테일
문 위쪽에 있는 독수리 조각, 가문의 문장, 바로크 양식의 장식 등 건축물의 세부적인 아름다움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일출 또는 일몰 시간에 방문하면 더욱 아름다운 빛 아래에서 문의 모습을 감상하고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포로 이탈리코 해변 산책로나 칼사(Kalsa) 지구, 가리발디 정원 등 주변 명소와 함께 둘러보는 동선으로 계획하면 좋다.
문 사이로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이므로, 사진 촬영이나 관람 시 항상 교통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팔레르모 시내를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 'Free Centro Storico'가 인근을 지나갈 수 있으니, 노선을 확인해보는 것도 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주변에 불법 주차 요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는 언급이 있다.
특별한 내부 관람 시설은 없으므로, 주로 외부에서 건축물을 감상하고 주변을 산책하는 방식으로 방문하게 된다.
역사적 배경
카사로 거리 확장
팔레르모의 가장 오래된 중심 도로인 카사로(Cassaro, 현재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가 바다 근처까지 확장되었다.
건설 시작
당시 시칠리아 총독이었던 마르칸토니오 콜론나(Marcantonio Colonna)가 확장된 카사로 거리의 바다 쪽 입구에 기념비적인 문 건설을 결정했다. 이 문은 그의 아내 펠리체 오르시니(Felice Orsini)의 이름을 따 포르타 펠리체로 명명되었으며, 7월 6일 기공식이 열렸다.
공사 재개
초기 건설 이후 중단되었던 공사가 새로운 총독 로렌초 수아레스 데 피게로아 이 코르도바(Lorenzo Suárez de Figueroa y Córdoba)의 지시로 재개되었다. 설계는 팔레르모 상원 건축가였던 마리아노 스미릴리오(Mariano Smiriglio)가 맡았다.
건축가 변경
마리아노 스미릴리오가 사망하자,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피에트로 노벨리(Pietro Novelli)가 작업 지휘를 이어받았다.
완공
포르타 펠리체가 완공되었다.
분수 추가
문에 두 개의 분수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파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오른쪽 기둥(바다를 바라볼 때)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복원
전쟁 후 복원 작업을 통해 포르타 펠리체는 이전의 모습을 상당 부분 되찾았다.
여담
포르타 펠리체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행복의 문'을 의미하며, 건설을 명령한 총독 마르칸토니오 콜론나의 아내 '펠리체 오르시니'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진다.
이 문은 카사로 거리의 반대편 끝에 있는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와 함께 팔레르모의 주요 출입구 역할을 하도록 계획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건설 기간이 길어지면서 문의 양쪽 파사드 디자인이 달라졌는데, 도시를 향한 안쪽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다를 향한 바깥쪽은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져 독특한 건축적 특징을 지닌다는 얘기가 있다.
문 상단에는 팔레르모 시와 당시 시칠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징하는 독수리 조각과 함께 콜론나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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