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팔레르모의 유서 깊은 18세기 건축물이나 이곳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에 관심 있는 여행객, 특히 역사적 장소의 변천사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과거 빈민 구호 시설이었던 곳이 현재는 박물관 및 전시장으로 활용되는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방문객들은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외관과 넓은 안뜰을 둘러볼 수 있으며, 사진전, 건축전, 역사 관련 전시 등 다채로운 주제로 열리는 임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때때로 단지 내 산타 마리아 델라 푸리피카치오네 교회의 모습도 일부 엿볼 수 있다.
일부 구역만 개방되어 전체 시설을 둘러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으며, 많은 부분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거나 특정 전시가 없을 경우 내부 관람이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언급된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팔레르모 시내 중심부에서 Corso Calatafimi 방면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 및 노선은 현지 교통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도보
- 팔레르모 누오바 문(Porta Nuova) 또는 쿠바(Cuba)와 같은 인근 명소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나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주요 특징
18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넓은 안뜰과 아름다운 회랑을 갖추고 있다. 과거 빈민 구호 시설의 규모와 역사를 엿볼 수 있으며,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 건축, 과학, 현대 미술 등 다양한 주제의 특별 전시가 수시로 개최되어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로버트 카파, 알렉산더 로드첸코 사진전이나 'Body Worlds' 같은 국제적인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운영시간: 전시 일정에 따름
건물 단지 내 첫 번째 안뜰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델라 푸리피카치오네 교회는 18세기 후반(1773-1779년)에 지어졌다. 아름다운 내부 장식을 갖추고 있으나, 일반 관람객에게는 제한적으로 개방될 수 있다.
운영시간: 제한적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외관과 정문
건물 정면의 조각 장식과 거대한 문은 방문객들이 처음 마주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그 규모와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기 좋다.
넓은 안뜰과 회랑
건물 내부의 넓은 안뜰과 이를 둘러싼 아치형 회랑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다양한 각도에서 건축의 대칭미와 깊이감을 담을 수 있다.
산타 마리아 델라 푸리피카치오네 교회 (외부 및 개방 시 내부)
안뜰에 면한 교회의 독특한 외관과, 개방 시 관람 가능한 내부의 종교 예술 작품들이 주요 촬영 대상이다. 특히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언급이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특별 전시 기간에 방문하면 건물 내부의 더 많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건물 전체가 항상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아니므로, 특정 전시 관람을 주된 목적으로 방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내부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푸리피카치오네 교회는 특정 행사나 정해진 경우에만 개방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관리인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예상치 못한 공간을 둘러보거나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경험이 있다.
역사적 배경
설립 구상
오스트리아 통치 하, 빈민 구제를 위한 시설 '레알 알베르고 데이 포베리'로 최초 설립이 구상되었다. 팔라고니아 공작 페르디난도 프란체스코 그라비나가 주요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건설 시작
부르봉 왕가의 카를로 국왕 통치 하에 프로젝트가 재개되었다. 초기 설계는 건축가 오라치오 푸레토에게 맡겨졌으며, 이후 주세페 베난치오 마르불리아와 니콜로 풀리아가 완공까지 공사를 이끌었다. 시칠리아 부왕 바르톨로메오 코르시니의 감독 하에 4월 24일 첫 삽을 떴으며, 건설 과정에서 페니키아 및 카르타고 시대의 고대 무덤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개관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페르디난도 3세 재위 중이던 8월 8일, 부분적으로 미완성인 상태로 문을 열었다.
산타 마리아 델라 푸리피카치오네 교회 건립
첫 번째 안뜰에 산타 마리아 델라 푸리피카치오네 교회가 건립되었다.
용도 변경 및 개칭
여성 전용 시설로 전환되면서 명칭이 '알베르고 델레 포베레'로 변경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피해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건물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복원
전쟁 이후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현재의 모습
부분적으로 시칠리아 지방 정부와 팔라고니아 공작 및 벤티미글리아 백작 연구소가 소유하고 있다. 대중에게 더 많이 개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학 시설의 일부 및 임시 전시회, 컨퍼런스 장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담
건설 초기 부지에서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이 시설은 장애가 있거나 병약한 빈민, 길잃은 젊은 여성, 그리고 고아 소녀들을 위한 종합적인 구호 시설로 계획되었다고 한다.
이 시설은 나폴리에 있는 유사한 대규모 구호 시설인 '레알 알베르고 데이 포베리'보다 몇 년 앞서 구상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에는 건물 내부에 자체적인 약제실, 여러 개의 기숙사, 대형 식당, 세탁 시설뿐만 아니라 실을 잣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 파스타 제조 공장, 방직 및 직조 작업장, 여러 개의 주방, 그리고 넓은 지하 저장고 등이 완비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1층에는 비단 실을 뽑고 짜는 견직물 공장과 양말 공장이 있었으며, 위층에는 기숙사와 다양한 용도의 방, 그리고 시설 책임자의 거주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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