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2세기 노르만-아랍 양식의 독특한 건축미와 고요한 분위기를 경험하고자 하는 역사 및 건축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평화로운 수도원 회랑과 정원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개인 여행객들에게도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교회의 외부 파사드와 내부의 라틴 십자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회랑을 거닐며 장미, 올리브, 무화과나무 등이 어우러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일부 복원 과정에서 본래의 모습이 다소 가려진 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며, 고고학 관련 안내는 이탈리아어로만 제공되는 경우가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교회는 팔레르모 ZTL(교통 제한 구역) 내에 위치하므로, 차량 접근 시 유의해야 한다.
- 주변 주차 공간이 제한적일 수 있다.
주요 특징
12세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노르만 양식과 아랍 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축미를 자랑한다. 특히 아름다운 회랑은 이중으로 된 날씬한 기둥과 아치로 둘러싸여 있으며,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교회 입구와 회랑 주변에는 소철, 부겐빌레아, 장미, 올리브, 무화과나무 등이 심어진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조용히 산책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튜턴 기사단의 저택(Mansio)으로 사용되었던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교회 내부는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라틴 십자가 구조와 코린트식 기둥, 반원형 후진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회랑 (Cloister)
이중으로 된 날씬한 기둥과 아치가 특징적인 회랑은 빛과 그림자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정원의 푸르름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정원 (Garden)
교회 입구와 회랑 주변에 조성된 정원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축물과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을 담기에 좋다.
교회 외부 파사드 및 후진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교회의 외부 모습, 특히 특징적인 아치 장식과 후진은 아랍-노르만 건축의 독특함을 잘 보여준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약 2~3유로이며, 회랑을 포함한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결혼식이 자주 열리는 장소이므로, 방문 시 행사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국어 안내문이 제공되기도 하지만, 고고학 관련 상세 설명은 이탈리아어로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팔레르모 칼사(Kalsa) 지구에 위치하며, 일부 방문객들은 주변 환경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역사적 배경
건축 완료
시칠리아 왕국의 재상 마테오 다젤로(Matthew of Ajello)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시토회 수도원에 할당되었다. 오트빌 왕조 시대에 시칠리아 수도에 지어진 마지막 교회이다.
튜턴 기사단에 양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가 팔레르모를 점령한 후, 시토회 수도사들은 추방되고 교회와 수도원은 튜턴 기사단에 양도되었다. '마조네(Magione)'라는 이름은 튜턴 기사단의 저택(Mansio)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족 매장
탕크레드 왕과 그의 아들 로저 3세 왕자가 이 교회에 묻혔다.
튜턴 기사단 추방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요청으로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세가 시칠리아에서 튜턴 기사단을 추방했다. 이후 사제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성 조지 콘스탄티니안 기사단에 양도
나폴리의 부르봉 왕가 통제 하에 있다가 성 조지 콘스탄티니안 군사 기사단에 주어졌다.
복원 작업
주세페 파트리콜로에 의해 중요한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노르만 교회의 바로크 양식 추가 요소 일부가 제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손상된 부분도 복원되었다.
여담
교회 이름 '마조네(Magione)'는 라틴어 '만시오(Mansio)'에서 유래된 단어로, 영주의 저택이나 튜턴 기사단의 숙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교회가 세워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과거 튜턴 기사단은 젊은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보호자 역할을 10년 이상 수행했으며, 이곳에 기숙사, 무기고, 마구간 등을 지었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는 가기니(Gagini)의 작품으로 알려진 '은총의 성모자상(Madonna delle Grazie)' 프레스코화가 있다.
회랑의 우물가에는 유대인 묘비가 재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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