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성 프란체스코의 초기 행적과 중세 종교 예술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와 예술 탐방객이 주로 찾는다. 성인이 머물렀던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에게 뜻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오타비아노 넬리의 '성모 마리아의 생애' 등 13-15세기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성 프란체스코가 기거했던 스파달롱가 가문의 옛 창고 유적도 볼 수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지하 예배실(크립토)이 때때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자동차 이용 시
- 구비오 시내에 위치하며, 피아차 콰란타 마르티리(Piazza Quaranta Martiri) 인근에 주차 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포사토 디 비코-구비오(Fossato di Vico-Gubbio) 역이다.
- 역에서 구비오행 버스(E052번 등)를 이용하여 피아차 콰란타 마르티리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 시간표는 현지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주요 특징
성당 왼쪽 후진(앱스) 전체를 채우고 있는 오타비아노 넬리의 '성모 마리아의 생애' 연작 프레스코화(1410-1415년경)는 섬세한 인물 묘사와 풍부한 색감이 돋보이는 15세기 움브리아 화파의 걸작이다. 성모 영보부터 성모 승천까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성당 동쪽의 3개 후진은 우아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중앙 후진과 오른쪽 후진 상단에는 13세기 말 익명의 움브리아 화가가 그린 초기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축복하는 그리스도와 네 성인', '재산 포기' 등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와 관련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성구 보관실 아래에서 성 프란체스코가 아버지의 집을 떠난 후 처음 머물렀던 스파달롱가 가문의 옛 창고와 집 일부의 고고학적 유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성 프란체스코와 구비오의 특별한 인연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이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개방 여부 변동 가능)
추천 포토 스팟
성당 파사드와 장미창
1958년 폴리뇨에서 옮겨온 장미창이 특징인 성당의 주 파사드는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어 기념사진 배경으로 적합하다.
고딕 양식의 후진과 팔각형 종탑 (외부)
동쪽에서 바라보는 3개의 우아한 고딕 양식 후진과 15세기에 세워진 팔각형 종탑의 조화는 성당의 독특한 건축미를 담을 수 있는 좋은 촬영 지점이다.
성 프란체스코와 늑대 조형물 (성당 외부)
성당 외부에 위치한 성 프란체스코와 늑대 조형물은 구비오의 유명한 일화를 상징하며,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많이 남기는 곳이다.
방문 팁
점심시간(보통 정오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시간을 미리 고려하는 것이 좋다.
성당 내부에 다양한 종교 예술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다.
미사 시간에 방문하면 현지 신자들과 함께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역사적 배경
성당 건축 시작 및 봉헌
성 프란체스코가 머물렀던 스파달롱가 가문의 창고 자리에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1256년에는 이미 봉헌되어 사용 중이었다.
장식 작업 진행 중
성당의 일부 장식 작업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팔각형 종탑 건설
성당 옆에 현재의 팔각형 종탑이 세워졌다.
내부 구조 변경
성당 내부는 현재와 같은 3개의 네이브(신랑) 구조로 대대적으로 개조되었다.
후진 부분 복원
성당 후진(앱스) 부분이 원래의 고딕 양식으로 복원되면서 중요한 13-14세기 프레스코화들이 재발견되었다.
파사드 완성
폴리뇨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가져온 장미창을 설치하여 현재의 파사드가 완성되었다.
여담
성당은 성 프란체스코가 아시시를 떠나 구비오에 왔을 때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던 친구 스파달롱가 가문의 옛 창고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성 프란체스코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프란치스코회 수도복을 입었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 성당 정면의 장미창은 1958년에 인근 도시 폴리뇨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건축에는 페루자 출신의 프라 베비냐테(frà Bevignate) 수사가 참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의 중인 부분이라는 언급이 있다.
성당의 팔각형 종탑은 본당 건물보다 후대인 15세기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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