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칼리아리의 역사 지구인 카스텔로 가장 높은 지점에서 도시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고 중세 요새의 건축미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풍경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과거 도시 방어의 핵심이었던 타워에 올라 칼리아리 시내와 항구, 주변 지역의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으며, 피사 시대의 견고한 석조 건축 양식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보수 공사 또는 기타 사유로 내부 입장이 제한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방문 계획 시 고려해야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칼리아리 카스텔로(Castello) 역사 지구 내에 위치하며, 인디펜덴차 광장(Piazza dell'Indipendenza)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주변의 다른 역사적 명소와 함께 도보로 둘러보기 용이하다.
🚌 대중교통
- 카스텔로 지구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정확한 버스 노선 및 시간은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타워 정상에서는 칼리아리 시내, 항구, 주변 평야와 바다까지 360도 막힘없는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이곳의 전망이 인근 코끼리 탑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305년 피사 공화국 시절 건설된 견고한 석조 타워로, 최대 3미터에 달하는 두꺼운 벽과 방어를 위한 좁은 창문(총안) 등 당시 요새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흰색 석회암으로 지어졌다.
과거 카스텔로 지구 북쪽 방어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아라곤 왕국 시대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된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이다. 코끼리 탑과 함께 카스텔로의 주요 관문 중 하나였다.
추천 포토 스팟
타워 최상층 전망대
칼리아리 시내, 항구, 성곽, 주변 언덕 및 지중해를 배경으로 360도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특히 맑은 날이나 해질녘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인디펜덴차 광장에서 타워를 배경으로
광장에서 올려다보는 타워의 웅장한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주변 건물과 함께 중세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과거 입장료는 1인당 3유로였다 (2016년 9월 기준).
일부 방문객들은 코끼리 탑보다 이곳의 전망이 더 훌륭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최근 몇 년간 보수 공사 등으로 인해 내부 관람이 중단된 상태일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반드시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타워 내부 계단은 매우 가파르고 폭이 좁아 오르내릴 때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설 시작
사르데냐 건축가 조반니 카풀라(Giovanni Capula)의 설계로 피사 공화국 통치 하에 건설되었다. 카스텔로(Castello) 지구 북쪽의 방어 및 감시를 주요 목적으로 했다.
아라곤 왕국의 통치와 용도 변경
사르데냐가 아라곤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타워는 방어 시설 외에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복원 작업
건축가이자 공학자인 디오니지 스카노(Dionigi Scano)의 주도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라곤 시대에 변경되었던 부분들이 철거되고 원래 피사 시대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으며, 폐쇄되었던 일부 구간이 다시 개방되었다.
박물관 공간 정비
산 판크라치오 단지 전체의 박물관 공간을 합리화하고 재정비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부 개선 작업이 진행되었다.
여담
건축가 조반니 카풀라는 산 판크라치오 탑 외에도 약 2년 뒤에 지어진 코끼리 탑(Torre dell'Elefante)과 현재 보ይል 궁전(Palazzo Boyl)에 통합된 독수리 탑(Torre dell'Aquila)도 설계했다는 얘기가 있다.
타워 건설에 사용된 주재료는 인근 보나리아 언덕(Colle di Bonaria)에서 채석된 흰색 석회암으로, '피에트라 포르테(Pietra Forte)'라고도 불린다는 언급이 있다.
타워의 성벽 두께는 최대 3미터에 달하며, 이는 당시 군사적 방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코끼리 탑과 함께 카스텔로 지구로 들어서는 주요 출입구 중 하나로 기능했다는 설이 있다.
타워의 이름은 과거 근처에 있었던 산 판크라치오(성 판크라티우스)에게 봉헌된 작은 교회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사르데냐어로는 '사 투리 데 산투 프란카우(sa turri de Santu Francau)'라고 불리기도 한다.
1906년 복원 작업 시, 아라곤 시대에 추가되어 타워의 원래 모습을 가리고 있던 건축물들이 제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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