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칼리아리에서 바로크 및 로코코 예술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은 예술 애호가나, 예수회 역사를 비롯한 종교 건축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화려하고 섬세한 내부 장식과 종교적 예술품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신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된다.
방문객들은 정교한 대리석 조각, 생동감 넘치는 프레스코화, 금박 장식 등으로 꾸며진 웅장한 내부를 둘러보며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로코코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성구실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공간이며, 운이 좋다면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통해 성당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풍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성당이 예고 없이 닫혀 있거나 안내된 운영 시간과 달라 방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언급을 한다. 또한 보수 공사로 인해 관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접근 방법
🚌 시내버스 이용
- 칼리아리 시내의 여러 버스 노선이 성당 인근을 지나간다.
-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정확한 노선 및 정류장 정보는 현지 대중교통 안내 시스템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도보 이동
- 칼리아리 구시가지(Castello, Stampace 지구)의 다른 명소와 함께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다.
구시가지 특성상 언덕길이나 계단이 있을 수 있다.
주요 특징
18세기 초 조반니 바티스타 코르벨리니에 의해 개조된 성구실은 사르데냐 로코코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프레스코 천장화, 섬세한 금박 장식, 아름다운 목조 가구 및 대형 그림들이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관람 가능 (별도 안내 시 제외)
팔각형 평면 구조의 본당은 풍부한 다색 대리석, 역동적인 조각상,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돔과 천장이 특징이다. 여러 개의 예배당에는 예수회 성인들을 기리는 제단과 그림들이 있으며,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운영시간: 성당 개방 시간 내 관람 가능
성당 내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들을 위해 성당의 역사, 건축 양식, 주요 예술 작품에 대한 무료 안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산 미켈레 성당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운영시간: 자원봉사자 활동 시간에 따라 유동적
추천 포토 스팟
성구실 내부
로코코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화려한 천장화와 벽면 장식, 정교한 목조 가구를 촬영할 수 있다.
본당 제단 및 천장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주 제단과 천장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를 담을 수 있다.
파사드와 종탑
성당의 외부 모습과 특징적인 팔각형 돔, 최근 복원된 종탑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성구실은 매우 아름다운 공간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감탄하는 곳이다.
오전 시간대가 비교적 관람객이 적어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다.
자원봉사자가 있다면 무료 안내를 통해 성당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운영 시간 변동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예수회 칼리아리 첫 공동체 설립
예수회가 칼리아리에 처음 정착하여 현재 산타 크로체 성당 자리에 첫 번째 학교를 설립했다.
스탐파체 지구에 신학원 설립
클라우디오 아쿠아비바 총장의 결정으로 부사키에서 칼리아리 스탐파체 지구로 신학원이 이전되었다.
후원자 프란체스코 안젤로 데시 사망 및 공사 시작
법조인 프란체스코 안젤로 데시의 유언 기증으로 신학원 확장 및 새 성당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산 미켈레 성당 건축
예수회 건축 양식에 따라 새로운 산 미켈레 성당이 건설되었고, 1697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했다.
파사드 완공
현재의 아추니 거리를 향한 파사드가 완공되었다.
주 제단 및 성 미카엘 조각상 설치
본당의 주 제단이 설치되고 성 미카엘 대천사 조각상이 안치되었다.
성구실 개조 및 장식
밀라노 출신 조반니 바티스타 코르벨리니의 감독 하에 성구실이 개조되고, 알토몬테와 콜롬비노의 대형 그림들로 장식되었다. 데시의 묘비도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성당 봉헌
새롭게 지어진 산 미켈레 성당이 우셀루스-테랄바 교구의 카르카소나 주교에 의해 공식적으로 봉헌되었다.
예수회 일시적 해산
예수회가 일시적으로 해산되면서 사르데냐의 예수회원들은 산 미켈레를 포함한 세 곳의 거주지에 집중되었다.
예수회 추방 및 군 병원 전환
사르데냐 왕국에서 예수회가 추방되고, 신학원 건물은 국가에 몰수되어 군 병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담
산 미켈레 성당의 파사드는 실제 교회 건물 자체보다는 이전에 지어진 예수회 신학원(현재 군 병원으로 사용)의 일부로 여겨진다.
성당 정면에는 세 개의 문장이 있는데, 중앙에는 예수회(IHS)의 상징, 오른쪽에는 신학원 확장에 기여한 암푸리아스와 치비타의 주교 조반니 산나의 문장, 왼쪽에는 성당 건축의 주요 후원자인 프란체스코 안젤로 데시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와 성구실을 포함한 전체 단지에는 예수회(IHS)의 모노그램이 총 78번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성당의 팔각형 돔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제8일의 신학'을 나타내는 건축학적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입구 아트리움에는 이른바 '카를 5세의 설교단'이 있는데, 이는 원래 산 프란체스코 알 코르소 교회에 있던 것을 1902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1535년 카를 5세가 이 설교단에서 미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라틴어 명문으로 새겨져 있다.
성구실 천장에는 알토몬테가 그린 '예수 이름의 승리'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이는 로마 예수 성당에 있는 바치차의 천장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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