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로마의 주요 도로였던 아피아 가도의 종착점을 상징하는 역사적 기념물을 직접 확인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고대 로마 문화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장대한 코린트식 기둥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 그라나페이-네르베냐 궁전에서 원본 주두의 정교한 조각을 관람하거나 베르길리우스 계단을 따라 항구의 풍경을 즐기며 산책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은 원래 두 개였던 기둥 중 하나만 남아있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아피아 가도의 종점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리는 안내가 부족하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브린디시 중앙역(Stazione di Brindisi Centrale)에서 약 1km 거리로, 도보로 약 15-20분 소요된다.
- 구시가지 중심부, 두오모 광장에서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용이하다.
🚗 자동차
- 기둥은 ZTL(교통제한구역) 내에 위치할 수 있으므로, 외곽 주차장 이용 후 도보 이동이 권장된다.
- 인근 항만관리사무소 광장(Piazza della Capitanerie di Porto)에 주차장이 있으나, 공간이 협소할 수 있다.
일부 여행자는 하이브리드 차량 무료 주차를 미끼로 요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주요 특징
한때 두 개였으나 현재 하나만 남아있는 장엄한 코린트식 기둥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수 세기 동안 브린디시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역사적 건축물이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기둥이 위치한 언덕 위에서는 브린디시 항구와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질녘 풍경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운영시간: 24시간 개방
원래 기둥 위에 있던 정교한 조각의 주두 원본은 인근 그라나페이-네르베냐 궁전(Palazzo Granafei-Nervegna)에 전시되어 있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현재 기둥 위에는 복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운영시간: 매일 08:00-20:00 (변동 가능성 있음)
추천 포토 스팟
%2Fphotospot_0_1747661504795.jpg&w=3840&q=75)
로마 원주와 항구 배경
하나 남은 로마 원주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브린디시 항구를 함께 담을 수 있다. 특히 기둥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나, 계단을 내려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
%2Fphotospot_1_1747661553477.jpg&w=3840&q=75)
베르길리우스 계단 위에서 바라본 전경
계단 위에서 아래쪽 항구 산책로(룽고마레 레지나 마르게리타)와 바다, 맞은편 이탈리아 수병 기념비(Monumento al Marinaio d'Italia)까지 넓게 조망하는 구도로 촬영할 수 있다.
%2Fphotospot_2_1747661571958.jpg&w=3840&q=75)
석양과 함께하는 원주
해질녘, 붉게 물드는 하늘과 항구를 배경으로 실루엣처럼 보이는 원주의 모습을 담으면 더욱 인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원래 기둥머리(주두)는 인근 그라나페이-네르베냐 궁전(Palazzo Granafei-Nervegna)에 무료로 전시되어 있으니 함께 방문하여 정교한 조각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항구 전망이 뛰어나 해질녘에 방문하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주변에 두오모 광장, 고고학 박물관 등 다른 명소들이 도보 거리에 있으므로 함께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고고학 박물관 역시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자동차로 방문 시, 항만관리사무소 광장(Piazza della Capitanerie di Porto) 주차장에서 하이브리드 차량 무료 주차를 미끼로 현지인이 접근하여 돈을 요구했다는 경험담이 있으니, 주차 요금 지불 시 주의가 필요하다.
기둥이 높은 계단 위에 위치하므로 편안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건립 추정
정확한 건립 시기는 불분명하나, 로마 안토니우스 왕조(2세기) 또는 세베루스 왕조(3세기 초)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이후 비잔틴 시대에 최종적으로 정비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단부 명문 기록
남아있는 기둥의 받침대에는 프로토스파타리오 루포(Lupo Protospata)가 사라센의 침략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했다는 내용의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는 도시 재건을 기념하는 의미를 더한다.
도시의 상징으로 등장
원래는 두 개의 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 기둥이었으며, 이 시기부터 브린디시 도시의 휘장이나 상징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기둥 붕괴
강한 지진으로 인해 두 기둥 중 하나가 붕괴되어 그 잔해가 땅에 떨어졌다. 붕괴된 기둥의 파편들은 100년 이상 방치되었다.
붕괴된 기둥, 레체 시에 기증
1657년 나폴리 왕국에 페스트가 창궐했으나 살렌토 지역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를 성 오론초의 가호 덕분이라 여긴 레체 시에서 성인에게 바치는 기념물을 만들고자 했고, 당시 브린디시 시장이 붕괴되어 방치된 기둥의 잔해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어려움 끝에 레체로 옮겨져 성 오론초 동상의 기둥 제작에 사용되었다.
임시 해체 및 보관
전쟁 중 연합군의 격렬한 폭격으로 인한 추가적인 붕괴나 손상을 막기 위해, 남아있던 한 개의 기둥을 해체하여 안전하게 보관했다.
전면 복원 및 원본 주두 이전
기둥을 다시 한번 구성 요소별로 해체하여 전면적인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변 광장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복원 후, 원래의 정교한 주두(기둥머리)는 보존을 위해 인근 그라나페이-네르베냐 궁전으로 옮겨져 전시되었고, 현재 기둥 꼭대기에는 복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여담
원래 이 기둥은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 기둥으로, 고대 건축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형태였다고 전해진다.
기둥의 정확한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오랫동안 로마로 향하는 아피아 가도의 종점을 표시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항구의 번영을 기념하거나 청동상 등을 받치기 위한 상징적인 건축물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등대로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두 개의 기둥(성 마르코의 사자상과 성 테오도로상)이 브린디시의 이 기둥들을 중세 시대에 모방하여 세운 것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기둥 건립자에 대해서도 도시의 신화적 창시자인 브렌토의 아버지 헤라클레스, 로마의 장군 술라, 또는 도로 건설로 유명한 트라야누스 황제 등 다양한 인물이 거론될 정도로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사용된 대리석의 종류가 다양하고, 일부 부재에서 재활용 흔적이 발견되며, 주두에 새겨진 이교도 신들의 흉상 같은 독특한 도상 때문에 로마 제국 시대 이후, 심지어 비잔틴 시대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그리스 여행에서 돌아와 열병으로 사망한 곳이 바로 브린디시이며, 기둥 옆 계단(베르길리우스 계단) 근처에 그가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집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축배를 들 때 외치는 '브린디시(Brindisi)'라는 말은 이 도시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술을) 권합니다'라는 뜻의 옛 독일어 'bringe dir's'가 이탈리아로 건너오면서 발음이 비슷한 'Brindisi'로 정착했고, 여기서 '건배하다(brindare)'라는 동사가 파생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쿼바디스 (Quo Vadis)
헨리크 시엔키에비츠의 소설과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쿼바디스'에서 사도 베드로가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달아나다 예수의 환영을 만나 다시 로마로 돌아간 길이 바로 아피아 가도로 묘사된다. 이 기둥은 그 유명한 아피아 가도의 이탈리아 내 종착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2Fbanner_1747484443788.jpg&w=3840&q=75)
/feature_0_1747746474381.jpg)
/feature_0_174777715208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