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프레스코화, 특히 세속적인 주제의 그림에 관심이 많은 예술 애호가나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아름다운 전망과 함께 독특한 성의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적합하다.
성 내부의 여러 방과 여름 별장에서 아서왕 이야기,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다채로운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성벽을 따라 걸으며 탈베라 계곡의 전망을 즐기거나, 성의 역사와 건축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프레스코화 외에는 내부가 다소 비어있다고 느끼거나, 일부 공간이 생각보다 작다고 여기는 방문객도 있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성 아래편에 위치한 전용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 주차장에서 성 입구까지는 가파른 자갈길을 도보로 약 1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주차는 3시간 무료이며, 차량 내부에 주차 시작 시간을 표시해야 한다.
🚌 대중교통 이용 시
- 볼차노 시내에서 성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이 있다.
- 볼차노 발터 광장(Piazza Walther)에서 론콜로 성까지 무료 셔틀 미니밴이 운행되기도 한다.
🚶 도보 이용 시
- 볼차노 시내 중심부에서 탈베라 강변 산책로를 따라 약 30-4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 강 건너편 보행자 경로를 이용하는 것이 차량 도로보다 안전하고 쾌적하다.
주요 특징
현존하는 가장 광범위한 중세 세속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여름 별장과 서궁 등에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트리스탄과 이졸데, 플레이어의 가렐 등 문학작품 속 장면과 사냥, 토너먼트 등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각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더욱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1237년 처음 지어진 이래 여러 차례의 증개축을 거친 성의 다양한 공간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견고한 성벽, 방어 시설이었던 탑, 고풍스러운 안뜰 등을 거닐며 중세 시대 성의 건축적 특징과 역사의 흐름을 체험할 수 있다.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의 여러 장소에서 탈베라 계곡과 볼차노 시내, 그리고 주변 포도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파노라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여름 별장과 성벽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뛰어나 사진 촬영 명소로도 좋다.
추천 포토 스팟
여름 별장 내부 및 창문
프레스코화와 함께 창밖으로 펼쳐지는 계곡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성벽 위
탈베라 계곡, 볼차노 시내, 주변 포도밭 등 탁 트인 전경을 촬영하기에 좋다.
안뜰
중세 성곽의 고풍스러운 건축미를 배경으로 인물 사진이나 성 전체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볼차노 카드(BozenCard) 소지 시 버스 및 성 입장이 무료이다.
QR 코드를 통해 무료 오디오 가이드 앱(Hearonymus)을 이용할 수 있으니, 방문 전 미리 다운로드하는 것이 좋다.
성 아래 주차장은 3시간 무료이며, 주차 시작 시간을 차량 내부에 표시해야 한다.
볼차노 시내 발터 광장(Piazza Walther)에서 출발하는 무료 셔틀 미니밴을 이용할 수 있다.
강 건너편 산책로를 이용하면 볼차노 시내에서 성까지 도보로 이동하기 좋다.
성 입구까지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자갈길이므로 편한 신발 착용이 필수적이다.
작은 반려견은 안고서 안뜰과 야외 식당 구역까지 동반할 수 있다.
성 주변으로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다른 등산로들도 마련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건설 시작
트렌토의 알데리히 주교 대리가 반겐 가문의 프리드리히와 베랄 형제에게 '룬헨슈타인(Runchenstayn)' 바위 위에 성을 건설하도록 허가했다.
첫 번째 파괴 및 소유권 이전
티롤의 마인하르트 2세에 의한 공성전으로 성이 파괴되었고, 이후 보첸의 고트샬크 크노거에게 넘어갔다.
빈틀러 가문의 인수 및 프레스코화 제작
보첸의 부유한 상인 형제인 니클라우스와 프란츠 빈틀러가 성을 구입하여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오늘날 성을 유명하게 만든 세속적인 주제의 프레스코화를 대거 의뢰했다.
여름 별장 건설 및 프레스코화
여름 별장이 건설되고 내부와 외부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의 이야기가 포함되었다.
정치적 분쟁과 소유권 변동
빈틀러 가문이 티롤의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면서 니클라우스는 재산을 잃고, 성은 오스트리아의 지기스문트 대공에게 넘어갔다.
합스부르크 가문 소유 및 막시밀리안 1세의 개입
합스부르크 가문이 성을 소유했으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성을 개조하고 프레스코화를 복원하도록 지시했다.
화약고 폭발
탑의 1층에 있던 화약고가 폭발하여 성의 일부 외벽, 입구, 동쪽 궁전이 손상되고 탑이 파괴되었다.
다양한 소유주와 쇠퇴기
지그문트 폰 브란디스, 리히텐슈타인-카스텔코른 가문 등을 거치며 소유주가 바뀌었다. 1672년 화재로 동쪽 궁전이 파괴된 후 재건되지 않았고, 성은 점차 쇠퇴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재발견
요한 요제프 폰 괴레스 등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낭만주의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로 부상했다.
오스트리아 황실의 인수 및 복원
요한 살바토르 대공이 성을 구입하여 1882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선물했다. 황제는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에게 복원을 의뢰했다.
볼차노 시 기증
복원 후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볼차노 시에 성을 기증하여 현재까지 시 소유로 남아있다.
최근 복원
프레스코화를 포함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담
원래 성이 세워진 바위는 '룬헨슈타인(Runchenstayn)'으로 불렸다고 한다.
14세기 성주였던 빈틀러(Vintler) 형제는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 당시 신분에 맞지 않게 성을 구입하고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하여 화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재발견되어 낭만주의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여겨졌다.
1833년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 국왕이 이곳에 머물며 방명록에 처음으로 서명했는데, 이 방명록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성에 '무르카(Murka)'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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