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아레초의 역사와 종교적 중요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도심 속 자연 공간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기려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아레초의 초기 기독교 역사와 중세 시대의 중심지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과거 대성당과 주교 관련 시설들의 고고학적 발굴 현장을 직접 살펴볼 수 있으며, 넓게 펼쳐진 공원에서 다양한 수목 사이를 거닐거나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언덕 정상에서는 아레초 시가지와 주변 언덕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일부 구역은 관리가 미흡하여 청결하지 못하거나 주사기 등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으며, 특히 오후나 저녁 시간대에는 마약 거래 등으로 인해 안전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다. 방문 시 주의가 필요하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시
- 아레초(Arezzo) 중앙역에서 하차 후 남서쪽으로 약 1km, 도보로 약 15-20분 소요된다.
- 역 앞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근처 정류장에서 하차할 수 있다.
버스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차량 이용 시
- 아레초 시내 중심부에서 남서쪽에 위치하며, 내비게이션에 'Colle del Pionta' 또는 주소(Colle Pionta, 52100 Arezzo AR)를 입력하여 찾아갈 수 있다.
- 공원 주변이나 인근에 주차 공간이 있을 수 있으나, 별도의 전용 대형 주차장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주요 특징
과거 아레초의 첫 번째 대성당이었던 산토 스테파노와 산타 마리아 성당, 그리고 산 도나토 성전의 유적을 비롯한 다양한 고고학적 발굴물을 직접 볼 수 있다. 아레초의 초기 기독교 역사와 중세 시대 주교-백작의 권력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12헥타르에 달하는 넓은 공원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갖추고 있어 산책, 조깅, 피크닉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어린이를 위한 놀이 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인기가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가능성 높음
언덕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는 아레초 역사 지구의 모습과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토스카나 언덕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의 전망이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천 포토 스팟
피온타 언덕 정상부
아레초 시내와 주변 토스카나 언덕의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고고학 발굴 지역 (옛 성당터 부근)
고대 유적의 흔적과 함께 역사적인 분위기가 담긴 독특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공원 내 올리브 나무 숲길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을 찍기 좋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일부 구역, 특히 공원 북쪽이나 인적이 드문 곳은 마약 거래나 불량한 사람들의 출몰이 잦으므로 낮 시간에도 주의가 필요하며, 오후 늦게나 저녁 시간대 방문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아이들을 위한 그네 등 놀이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좋다.
공원 내 잔디밭이나 벤치에서 피크닉을 즐기기 좋으니, 간단한 먹거리와 돗자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산책로나 조깅 코스가 잘 되어 있어 운동을 즐기는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
과거 정신병원 부지였던 곳으로, 현재는 일부 건물이 대학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기독교 예배당 건립
아레초의 두 번째 주교였던 성 도나토의 순교 이후, 그의 후계자인 젤라시오 주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평화령(313년) 이후 이곳에 예배당을 세웠다. 이는 피온타 언덕이 종교적 중심지로 발전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산타 마리아 및 산토 스테파노 대성당 건설
롬바르드족과 프랑크족의 영향을 받은 산타 마리아 및 산토 스테파노 대성당이 건설되었다. 이 시기 피온타 언덕은 아레초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산 도나토 성전 봉헌
유명 건축가 마지나르도(Maginardo)가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을 모델로 하여 웅장한 산 도나토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했다. 이로써 피온타 언덕은 주교좌 성당, 주교 관저, 참사회 등을 갖춘 진정한 주교 도시(cittadella vescovile)로 발전했다.
전성기 및 중요 방문객
피핀 소왕, 카롤루스 대제, 여러 오토 황제들, 그리고 교황 빅토르 2세와 그레고리오 10세(이곳에서 사망) 등 수많은 중요 인물들이 방문하며 서방 기독교 세계의 주요 순례지이자 영적 중심지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 귀도 다레초(귀도 모나코) 등이 활동한 '주교좌 학교'는 학문과 예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주교좌 이전 및 쇠퇴 시작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명령으로 주교좌 성당, 주교 관저, 참사회가 아레초 성벽 안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피온타 언덕은 점차 중요성을 잃고 버려지기 시작했다.
코시모 1세에 의한 철거
피렌체의 코시모 1세 데 메디치 대공의 적으로 간주된 피에로 스트로치가 1554년 그의 군대를 이곳에 주둔시킨 것을 계기로, 코시모 1세는 1561년 10월 20일 피온타 언덕의 모든 건축물을 철거하도록 명령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역사적 건축물이 파괴되었다.
고고학적 재발견 및 공원화
20세기 초부터 고고학적 발굴이 시작되어 과거의 영광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주요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12헥타르 규모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건물은 대학 시설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담
피온타(Pionta)라는 지명은 '울타리' 또는 '둘러싸인 땅'을 의미하는 게르만어 계통의 롬바르드어 '비운다(biund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진다. 이는 초기 경작지나 목축지를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이곳은 아레초의 '바티칸'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두 명의 교황, 빅토르 2세(1057년 사망)와 그레고리오 10세(1276년 사망)가 이곳에서 선종했다.
유명한 화가 지오토의 프레스코화 '아레초에서 악마를 쫓아내는 성 프란체스코'(아시시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소재)의 배경 왼편에 그려진 건물이 피온타 언덕의 옛 대성당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피온타 언덕에는 과거 아레초의 정신병원(Ospedale Neuropsichiatrico)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건물 중 일부는 현재 아레초 대학 캠퍼스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13세기 초 피온타 언덕에서 시작된 아레초 최초 대학의 역사적 맥을 잇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있다.
공원 내에는 고고학적 유물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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