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역사적 의미와 전쟁의 비극을 되새기려는 역사 애호가나 성찰적인 여행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와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슬퍼하는 어머니와 아이' 부조를 통해 전쟁의 깊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의 희망을 느낄 수 있으며, 클라이네 알스터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기념비에 새겨진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für Euch)'라는 문구의 의미에 대해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기도 하며, 기념물 자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 함부르크 시청(Rathaus)과 매우 가까워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다.
- U-Bahn(지하철) 3호선 Rathaus역 또는 U1, U2, U4, S1, S2, S3 노선이 정차하는 Jungfernstieg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주요 버스 노선 또한 함부르크 시청 주변을 경유하므로 버스 이용도 편리하다.
기념비는 클라이네 알스터(Kleine Alster)와 알스터 아케이드(Alsterarkaden) 방면, 시청 광장(Rathausmarkt)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주요 특징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역작으로 꼽히는 청동 부조이다.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희미한 위안과 미래를 향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나치 시대 '퇴폐 미술'로 낙인찍혀 철거되었다가 전후 복원된, 그 자체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작품이다.
기념비 정면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함부르크 출신 병사들을 기리는 **'도시의 아들 4만 명이 당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 1914–1918 (Vierzigtausend Söhne der Stadt liessen ihr Leben für Euch — 1914–1918)'**라는 헌사가 독일어로 새겨져 있다. 원래 제1차 세계대전 기념비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 희생자 모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기념비는 아름다운 클라이네 알스터(작은 알스터 호수)와 고풍스러운 알스터 아케이드(Alsterarkaden)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방문객들은 기념비 주변의 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색에 잠기거나,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와 오리들을 바라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함부르크 시청, 성 페트리 교회 등 주변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어우러진 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기념비 정면 (부조 '슬퍼하는 어머니와 아이' 포함)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인상적인 부조 작품과 기념비 전체의 모습을 정면에서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촬영 지점이다.
클라이네 알스터 건너편 또는 알스터 아케이드에서 바라본 기념비
작은 알스터 호수와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배경으로 기념비의 전체적인 모습을 원경으로 촬영할 수 있다.
기념비 계단에서 클라이네 알스터와 시청 방향
기념비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자연스러운 모습과 함께 작은 알스터 호수 및 함부르크 시청 주변의 활기찬 풍경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함부르크 시청, 융페른슈티크 거리, 알스터 아케이드 등 시내 주요 명소와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기념비 주변의 넓은 계단은 잠시 앉아 클라이네 알스터의 백조와 오리를 구경하거나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하다.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나 부조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방문 전 관련 역사적 배경지식을 미리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매년 독일 현충일(Volkstrauertag, 11월 중순 일요일)에는 함부르크 상원과 시민 대표가 이곳에 헌화하며 공식 추모 행사를 거행한다.
역사적 배경
설계 공모 및 건립 준비
함부르크시는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기리기 위한 '소박한 기념물(schlichtes Mal)' 디자인 공모를 진행했다. 건축가 클라우스 호프만(Klaus Hoffmann)의 석비 디자인이 1등으로 선정되었고,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에게 석비의 다른 면을 장식할 부조 제작이 의뢰되었다.
제막 및 초기 논란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로 공식 제막되었다. 그러나 기념비가 전쟁 영웅주의보다는 남겨진 이들의 슬픔에 초점을 맞춘 점에 대해 참전 군인 협회, 독일 국가주의 그룹, 국가사회주의(나치) 세력 등으로부터 '비영웅적', '비독일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당신들을 위해(für Euch)'라는 헌사의 문구는 우익 세력의 압력에 따른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나치 정권에 의한 변형
나치 정권은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부조 '슬퍼하는 어머니와 아이'를 '퇴폐 미술(Entartete Kunst)'로 규정하고 철거했다. 그 자리에는 조각가 한스 마르틴 루볼트(Hans Martin Ruwoldt)가 제작한 날아오르는 독수리 형상의 부조가 대신 설치되었다. 또한 나치는 담토어(Dammtor) 지역에 별도의 전쟁 기념비를 건립했다.
복원 및 의미 확장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석공 프리드리히 부르쉬(Friedrich Bursch)에 의해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원래 부조가 충실히 복원되었다. 이후 기념비는 제1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까지 함께 추모하는 장소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으며, 함부르크시의 공식적인 전사자 추모 기념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여담
기념비에 새겨진 'Vierzigtausend Söhne der Stadt liessen ihr Leben für Euch — 1914–1918'라는 문구는 '도시의 아들 4만 명이 당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 1914–1918'로 번역되며, 여기서 '당신들을 위해(für Euch)'라는 표현은 건립 당시 사회민주당(SPD)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익 세력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결과였다고 알려져 있다.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는 자신의 부조 작품 '슬퍼하는 어머니와 아이'에 대해 '깊은 고뇌 속에서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서는 모습(Mutiges Zusammenraffen aus tiefem Leid)'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기념비 건립 당시, 함부르크 시청 광장(Rathausmarkt)에서 빌헬름 1세 황제의 기마상이 철거된 사건과 맞물려, 이 기념비는 당시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함부르크 시 정부(SPD, DDP, DVP 연립)와 우익 정당들 간의 정치적 대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나치 시대에 바를라흐의 부조가 철거된 후, 나치 정권은 함부르크 담토어(Dammtor)역 근처에 그들의 이념에 부합하는 새로운 전쟁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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