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13세기 고딕 건축의 정수를 감상하거나,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빛의 향연을 경험하고 싶은 건축 및 예술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교황 우르바노 4세의 고향에 세워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된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외부 조각과 내부의 높은 천장, 그리고 다채로운 빛을 만들어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관찰할 수 있으며, '포도송이의 성모'와 같은 16세기 트루아 학파의 조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특정 시간대에 내부 관람이 제한되거나, 성당 일부 구역의 청결 상태에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접근 방법
주요 특징
거대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 찬 내부는 우아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13세기 원본을 포함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주요 볼거리로, 1992년에 복원되어 그 가치를 더한다.
후기 13세기 고딕 건축의 고전적인 예시로, 천공 게이블, 뾰족한 첨탑, 정교한 트레이서리가 특징이다. '섬세한 유리 상자' 또는 '샹파뉴의 파르테논'이라 불릴 만큼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
성당 내외부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이 있으며, 특히 남쪽 통로 예배당에 있는 **'포도송이의 성모(Vierge aux Raisins)'**는 16세기 트루아 학파의 뛰어난 예시로 꼽힌다. 페디먼트의 13세기 '최후의 심판' 조각도 주목할 만하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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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파사드 (West Façade)
정교한 조각과 함께 웅장한 고딕 양식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특히 일몰 시간에 아름다운 실루엣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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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앞 (Stained Glass Windows Interior)
내부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하면 다채로운 빛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맑은 날 빛이 들어올 때 특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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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조각 주변 (Gargoyles)
독특하고 정교한 가고일 조각들을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다. 중세 건축의 디테일을 담기에 좋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맑은 날 정오나 해 질 녘에 방문하면 스테인드글라스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성당 주변의 오래된 거리들을 함께 둘러보면 트루아 구시가지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방문 전 개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에는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자크 팡탈레옹(훗날 교황 우르바노 4세) 출생
트루아의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황 우르바노 4세 즉위
자크 팡탈레옹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우르바노 4세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성당 건축 시작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자신의 수호성인인 성 우르바노에게 봉헌하는 대성당을 고향 트루아에 짓기로 발표하고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가 장 랑글루아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교황 우르바노 4세 사망
교황 사후에도 조카인 안셰르 추기경의 감독 하에 건축이 계속되었다.
성가대와 수랑(Transept) 완공
성가대와 수랑이 빠르게 건설되었으며, 1265년 10월 중앙 제단이 봉헌되었다.
방해 공작 및 화재 발생
인근 노트르담 오 농냉 수도원의 수녀들이 건축을 방해하여 파괴 행위를 저질렀고, 몇 달 후 화재로 목조 부분과 지붕이 소실되었다.
미완성 상태로 봉헌
7월 1일, 아직 미완성인 상태로 성당이 봉헌되었다.
본당 주요 부분 완성
성당의 주요 부분이 16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탑 완성
탑이 1630년에 완성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문화부에 의해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복원 및 완공
본격적인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19세기 말 폴 셀메르샤임에 의해 네이브 상부가 원 계획대로 완성되었고, 1905년 서쪽 파사드의 현관이 완공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4세 유해 이전
페루자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던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유해가 트루아의 이 성당으로 이전되었다.
준 대성전(Minor Basilica) 승격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준 대성전의 지위로 격상되었다.
여담
성당 건축 당시 인근 노트르담 오 농냉 수도원의 수녀들이 건축을 격렬하게 반대하며 파괴 공작을 벌였고, 심지어 무장 인력을 동원해 공사를 방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원래 트루아의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으며, 성당은 그의 아버지가 일하던 작업실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1525년, 클로드 드 리레라는 참사회원의 비용으로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생애를 묘사한 태피스트리가 제작되어 성가대를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성 우르바노와 성 세실리아의 전설을 담은 태피스트리는 실제로 짜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에는 곡물 창고나 물품 저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당의 세례반은 원래 생자크-오-농냉 교회의 것이었으나, 혁명 때 팔려나간 뒤 한 주택 마당에서 우물 연석으로 사용되던 것을 발견하여 옮겨온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는 생 위르뱅 대성당을 기둥이 아치로 직접 이어지는 건축 시스템의 가장 훌륭한 예시로 꼽았다는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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