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딕 건축의 정수를 감상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건축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1,500㎡에 달하는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종교 예술에 관심 있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방문객들은 웅장한 내부 공간을 거닐며 섬세한 조각과 장식을 관찰할 수 있고, 유서 깊은 보물실에 전시된 종교 유물들을 통해 중세 시대의 신앙과 예술을 엿볼 수 있다. 대형 파이프 오르간의 모습도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이다.
일부 방문객은 서쪽 장미창이 파이프 오르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점이나, 특정 시간대(점심시간 등)에 문을 닫는 경우가 있어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 트루아 기차역(Gare de Troyes)까지 기차로 이동 후, 역에서 도보 또는 시내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대성당으로 이동할 수 있다.
대성당은 트루아 구시가지 중심부인 '부숑 드 샹파뉴(bouchon de Champagne)' 지역에 위치하여 도보 접근이 용이하다.
🚗 차량 이용
- A5 고속도로 (파리-트루아-랑그르) 또는 A26 고속도로 (칼레-랭스-트루아)를 이용하여 트루아 시내로 진입한다.
대성당 주변으로 공영 주차장이 있으며, 일부 시간에 한해 대성당 앞 광장(Place Saint-Pierre)에 단기 주차가 가능할 수 있으나 확인이 필요하다.
주요 특징
13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총 1,500㎡ 규모 스테인드글라스는 성경 이야기와 성인들의 삶을 다채로운 빛으로 표현한다. 특히 1625년 리나르 공티에가 제작한 '신비로운 포도 짜는 기계(Le Pressoir Mystique)' 창은 독특한 도상으로 유명하다.
1208년 착공하여 수세기에 걸쳐 완성된 웅장한 고딕 양식의 내부와 외부를 감상할 수 있다. 높은 천장, 다섯 개의 신랑(nave aisles),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파사드와 트랜셉트가 특징이며, 미완성인 남쪽 탑으로 인해 비대칭적인 외관을 지닌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유물을 포함하여 중세시대의 귀중한 종교 예술품과 성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 성유물함, 트루아의 성 루 성유물함의 에나멜 장식, 비잔틴 양식의 상아함 등이 대표적이다.
추천 포토 스팟
서쪽 파사드 정면
웅장한 고딕 양식의 파사드 전체와 유일하게 남은 북쪽 생 피에르 탑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특히 저녁 노을 질 때 아름답다.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햇빛 투과 시)
햇빛이 투과될 때 다채로운 색채를 뽐내는 1,500㎡ 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특히 성가대석 창문과 트랜셉트의 장미창이 인상적이다.
북쪽 트랜셉트 외부 (장미창과 석조 첨탑)
외부에서 볼 때 북쪽 트랜셉트의 장미창 중앙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석조 첨탑(aiguille) 구조를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햇빛이 좋은 날 방문하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더욱 만끽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내부 관람 시 스테인드글라스 해설 가이드(있을 경우)를 참고하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점심시간(일반적으로 12:30~14:00 사이)에는 대성당이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시간을 미리 계획하는 것이 좋다.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있을 경우, 웅장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연주 일정은 사전 확인 필요)
보물실은 항상 개방하는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특정 유물 관람이 목적이라면 사전에 개방 여부 및 시간을 문의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이전 성당 건립
현재 위치에 이전 성당이 건립되었으나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파괴됨.
트루아 공의회
대성당에서 트루아 공의회가 개최되어 템플 기사단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음.
대화재
트루아 시 대화재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소실.
고딕 대성당 착공
주교 가르니에 드 트레넬의 주도로 현재의 고딕 양식 대성당 건축 시작.
허리케인 피해
허리케인으로 인해 건설 중이던 성가대 남쪽 하부와 상부 벽면이 파괴됨.
트루아 조약 체결
백년전쟁 중 영국 왕 헨리 5세와 프랑스 공주 카트린 드 발루아의 결혼이 이루어지고, 헨리 5세를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 인정하는 트루아 조약이 대성당에서 체결됨.
잔 다르크 방문설
잔 다르크가 샤를 7세와 함께 랭스 대관식으로 향하는 길에 트루아에 방문하여 이 대성당에 들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쪽 파사드 공사 시작
건축가 마르탱 샹비주의 설계로 서쪽 파사드 공사가 시작됨.
북쪽 탑(생 피에르 탑) 완공 및 건축 마무리
북쪽 탑의 일부가 완성되면서 수세기에 걸친 대성당 건축이 실질적으로 마무리됨. 남쪽 탑(생 폴 탑)은 미완성으로 남음.
벼락으로 인한 첨탑 붕괴
트랜셉트 교차점의 첨탑이 벼락을 맞아 붕괴되고 이후 재건되지 않음.
프랑스 혁명기 수난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대성당의 많은 조각상들이 파괴되고 보물들이 약탈당함.
역사 기념물 지정
프랑스 정부에 의해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됨.
지속적인 복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음.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보존함.
여담
트루아 대성당의 두 개의 탑 중 북쪽의 생 피에르 탑만 일부 완성되었고, 남쪽의 생 폴 탑은 재정 문제와 지반 문제 등으로 인해 결국 지어지지 못해 현재와 같은 비대칭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북쪽 트랜셉트의 장미창은 1390년 한 차례 붕괴 후 재건되었으나, 약 40년 뒤 다시 붕괴 위험에 처하자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15세기 중반 창 중앙에 **독특한 석조 첨탑(aiguille)**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대성당의 그랜드 오르간은 원래 시토회 클레르보 수도원의 것이었으나, 프랑스 혁명 이후 국유재산으로 매각된 것을 트루아 대성당 측에서 구입하여 1808년에 현재 위치에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36년, 트루아의 시계 제작자였던 드니 볼로리(Denis Bolori)가 직접 만든 날개를 달고 당시 건설 중이던 대성당의 생 피에르 탑에서 비행을 시도했으나, 생 파르-오-테르트르(Saint-Parres-aux-Tertres) 근방에 추락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있다.
대성당의 종탑에 있는 4개의 종(페트루스 카롤루스, 파울루스 안나, 사비니아누스, 마리)은 그 크기와 무게, 그리고 낮은 음역으로 인해 프랑스 내에서도 매우 독특한 종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중매체에서
국가 가구 (Le Mobilier national)
로랑스 코세(Laurence Cossé)의 소설에 등장한다. 작중 문화부 고위 관리가 프랑스 대성당 절반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트루아 대성당도 그 목록에 포함되지만 트루아 출신 등장인물이 이에 강력히 반대하는 내용이 묘사된다.
트루아 (Troyes)
전략 보드게임 '트루아'와 그 확장팩 '트루아의 여인들(Les Dames de Troyes)'은 트루아 대성당이 건설되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가문을 이끌고 도시 발전에 기여하며 명성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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