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거나, 도심 속에서 비교적 한적하게 자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일부 방문객들은 과거 레지스탕스 수용소였던 이곳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학습과 추모를 목적으로 방문하기도 한다.
방문객들은 자원봉사 가이드가 진행하는 무료 투어를 통해 과거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요새 내부의 일부 시설을 둘러보며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넓게 조성된 공원 구역에서는 산책, 조깅, 피크닉을 즐기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이 시설을 이용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다만, 일부 방문객들은 요새 시설의 유지보수가 미흡하여 방치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박물관이나 내부 시설의 개방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메스 시내 남동쪽에 위치하며, 주요 도로에서 접근이 용이하다.
- 요새 입구 근처 및 내부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대중교통 이용
- 메스 시내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노선 및 배차 간격은 현지 교통 정보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주요 특징
자원봉사 가이드의 안내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로 사용된 요새 내부의 일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약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생생한 역사 설명과 함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운영시간: 주로 일요일 오후 (웹사이트 확인 필요)
요새 주변은 넓은 녹지 공간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도심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운동 시설, 피크닉 테이블 등도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적합하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가능성 (정확한 정보 확인 필요)
19세기 후반에 건축된 요새의 오래된 석조 및 벽돌 건물, 방어시설의 잔해 등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독특한 사진 촬영 배경이 되기도 한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가능성 (외부 관람 기준)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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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요새 건물 외벽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과 석조 건물 외벽은 그 자체로 독특하고 역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배경이 된다. 특히 빛바랜 질감과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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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Casemate A 주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Casemate A 건물 주변은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의 육중함과 주변의 분위기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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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숲길과 유적지
자연과 어우러진 요새 유적의 모습은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햇살 좋은 날 숲길 사이로 보이는 오래된 건축물이나 잔디밭 위의 유적은 평화로우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요새 내부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한다면 자원봉사자가 진행하는 무료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투어는 약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가이드 투어 및 박물관 개방은 주로 일요일 오후(14:00, 16:00 시작 등)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방문 계획 시 반드시 사전에 운영 여부와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요새 부지 내에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으로 방문하기 편리하다.
넓은 공원 구역은 산책, 조깅, 피크닉, 아이들과의 놀이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하며, 반려견 동반도 가능하다.
일부 방문객들은 시설 유지보수가 미흡하거나 특정 구역이 방치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공원 내 화장실이 없다는 점에 대한 불편함도 언급된다.
가이드 투어의 내용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다루고 있어, 14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다소 충격적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프랑스 통치 하 건축 시작
로렌 지방이 프랑스 영토였던 시절, 메스 방어 체계의 일환으로 쾰르 요새 건설이 시작되었다. 세레 드 리비에르 시스템에 따라 설계된 초기 요새 중 하나이다.
프랑코-프로이센 전쟁 및 독일 합병
프랑코-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독일 제국에 합병되었고, 미완성 상태였던 요새도 독일군 수중에 넘어갔다.
독일 제국에 의한 개선 및 '포트 괴벤'으로 개칭
독일군은 요새를 보강하고 확장하여 '포트 괴벤(Fort Goeben)'으로 명명했다. 이는 프로이센 장군 아우구스트 카를 폰 괴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메스 방어의 첫 번째 요새화 벨트의 일부가 되었다.
군사적 미사용
요새는 기능적으로 이미 구식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직접적인 군사 활동에 사용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수용소로 사용
독일 점령 하에 친위대(SS)는 이곳을 특별 수용소(Sonderlager)로 사용하여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구금하고 심문했다. '쾰르의 지옥(Enfer de Queuleu)'으로 불릴 만큼 열악한 환경과 잔혹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약 1,500~1,800명이 수감되었고, 36명이 사망했으며, 4명만이 탈출에 성공했다.
독일군 철수 및 수감자 이송
연합군이 메스로 접근하자 독일군은 요새에서 철수하며 대부분의 수감자들을 다른 강제 수용소로 이송했다.
역사 기념물 지정
요새는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저항 및 추방 기념비 건립 및 메스 시 소유
요새 부지 내에 저항 및 추방 기념비가 건립되었으며, 요새는 메스 시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여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심문하고 수감했던 장소로, '쾰르의 지옥(Enfer de Queuleu)'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는 얘기가 있다.
이곳에 수감되었던 인원은 1,500명에서 1,800명에 달하며, 그중 36명이 사망했고 4명만이 환풍구를 통해 탈출에 성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수용소 사령관이었던 친위대 상사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헴펜(Georg Friedrich Hempen)은 전후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62년 독일 올덴부르크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체포된 후 긴 재판 끝에 기술적인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수감자 중에는 장 부르제(Jean Burger)가 이끈 '마리오 그룹(Mario Group)'과 같은 저명한 레지스탕스 조직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요새의 초기 설계는 보방(Vauban) 스타일의 요새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으며, 이는 이후 단순화된 세레 드 리비에르 시스템 요새들과는 대조적인 특징이라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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