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부터 이어져 온 깊은 역사와 요새와 같은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직접 확인하고, 특히 신비로운 분위기의 지하 묘지를 탐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특별한 종교 건축물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견고한 석조 구조물로 이루어진 수도원 내부를 둘러보며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별도 입장료를 내면 고대 석관과 유물이 보존된 지하 묘지(크립트)를 직접 관람하며 수 세기에 걸친 마르세유의 역사를 접할 수 있다.
지하 묘지는 다소 습하고 어두울 수 있으며, 일부 구역은 안전을 위해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거나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하 묘지 입장 시 현금 결제만 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버스 이용
- 마르세유 시내버스 60번 등을 이용하여 수도원 근처에서 하차할 수 있다. 구항구(Vieux-Port)에서 출발하는 노선이 있다.
🚇 지하철 이용 후 도보 또는 환승
- 마르세유 지하철 M1호선 Vieux-Port 역에서 하차 후, 도보(약 15-20분 소요) 또는 버스로 환승하여 접근할 수 있다.
🚶 도보 이용
- 마르세유 구항구 남쪽 지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며,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주요 특징
수도원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으로,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석관들과 고대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신비롭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마르세유의 오랜 역사의 흔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운영시간: 수도원 운영 시간 내 (오후 6시 마감 가능성)
중세 시대의 요새를 연상시키는 견고하고 웅장한 외관은 수도원의 오랜 역사와 방어적 기능을 짐작하게 한다. 수도원 앞 광장에서는 마르세유 구항구와 주변 도시 경관의 일부를 조망할 수 있다.
수도원 교회 본당과 지하 묘지 곳곳에서 성인들의 유해 일부와 고대 석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조각품 등 다양한 종교적, 역사적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마르세유의 초기 기독교 역사와 수도원의 역할을 엿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수도원 앞 광장 (구항구 방면)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거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르세유 구항구와 도시의 전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수도원 외부 성벽 및 탑
요새와 같은 독특하고 견고한 수도원의 건축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다.
지하 묘지(크립트) 내부
고대 석관과 아치형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단, 내부 촬영 규정 및 조명 조건 확인 필요)
축제 및 이벤트
성촉절 나베트 비스킷 축복 (La Chandeleur - Bénédiction des Navettes)
매년 2월 2일 오전 6시경
매년 2월 2일 성촉절(칸델마스) 오전 6시경, 마르세유 대주교가 인근의 유서 깊은 빵집 '르 푸르 데 나베트(Le Four des Navettes)'에서 그 해 처음으로 구워낸 나베트 비스킷을 생 빅토르 수도원으로 가져와 축복하는 전통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마르세유의 오랜 전통 중 하나로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한다.
방문 팁
지하 묘지(크립트) 입장료는 약 2유로이며, 현금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카드 결제가 불가능하다는 후기가 있다.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면 이용하는 것이 수도원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언급이 있다.
지하 묘지는 수도원 본당보다 일찍 마감될 수 있으며,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는 정보가 있으니 방문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며, 함께 둘러보는 관광 코스로 계획하기 좋다.
내부가 다소 어둡고, 특히 지하 묘지는 계단이 있고 바닥이 고르지 않을 수 있으므로 관람 시 주의가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기독교 수도사이자 신학자인 성 요한 카시아누스(John Cassian)가 이집트 수도원의 이상을 따라 남성들을 위한 생 빅토르 수도원과 여성들을 위한 생 소뵈르 수도원을 마르세유에 설립했다.
신학적 논쟁의 중심
수도원은 설립 초기 카시아누스의 저술과 관련된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 논쟁의 영향을 받았다.
사라센족의 침략과 파괴
수도원은 바이킹과 사라센족의 침략으로 여러 차례 고초를 겪었으며, 특히 838년과 923년에는 사라센 함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838년에는 수녀원장 성 에우세비아와 39명의 수녀가 순교했다.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재건
오노라 주교와 첫 번째 베네딕토회 원장인 성 비프레드의 노력으로 수도원 생활이 성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복원되었다.
확장 및 봉헌
성 이사른(Saint Isarn) 원장이 1020년부터 상부 교회, 탑, 제단 건설을 시작했으며, 1040년 교황 베네딕토 9세가 교회의 제단을 봉헌했다.
영향력 확대
수도원은 빠르게 회복하여 주변 지역의 쇠퇴한 수도원들의 종교 생활을 복원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스페인 및 사르데냐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교황 우르바노 5세와 수도원
훗날 교황 우르바노 5세가 된 기욤 그리모아르(Guillaume Grimoard)가 1361년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어 교회를 확장하고 높은 성벽으로 수도원을 둘러쌌다. 그는 교황이 된 후에도 마르세유를 방문하여 수도원 교회의 주 제단을 축성하고 시노드를 개최했다.
쇠퇴기
명의 원장(commendatory abbots) 제도가 도입되면서 수도원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에 중요한 도서관의 장서들이 흩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속화
수도사들의 행동에 대한 불만 등으로 인해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수도원은 세속화되어 평신도 참사회(collegiate church)로 전환되었다.
프랑스 혁명기 수난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수도원은 보물을 약탈당하고 유물은 소각되었으며, 건물은 창고, 감옥, 병영 등으로 사용되었다.
복원 및 예배 재개
제1제정 시대 이후 교회는 다시 예배 장소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소 바실리카 지정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생 빅토르 교회는 소 바실리카(minor basilica)로 지정되었다.
여담
생 빅토르 수도원은 그 이름처럼 서기 290년경 순교한 로마 군인이자 마르세유의 성인인 성 빅토르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
수도원 지하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사용되었던 채석장 유적이 있으며, 이후 기원전 2세기부터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이어진 **대규모 공동묘지(네크로폴리스)**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훗날 교황 우르바노 5세가 된 기욤 그리모아르가 이곳의 원장이었으며, 그가 수도원 확장과 요새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수도원은 고대 필사본을 다수 소장한 매우 중요한 도서관을 보유했으나, 16세기 후반 명의 원장들의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거나 흩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720년 마르세유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 수도사들이 외부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고 수도원 문을 걸어 잠근 채 은둔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도원의 창립자로 알려진 성 요한 카시아누스의 유해가 과거 지하 묘지에 안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거나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수도원 인근에는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로 알려진 '르 푸르 데 나베트(Le Four des Navettes)'가 있으며, 매년 2월 2일 성촉절에 이 빵집에서 만든 나베트 비스킷을 수도원에서 축복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요한 카시아누스의 참된 자유 (Frei werden: Der geistliche Weg des Johannes Cassian)
수도원의 창립자인 성 요한 카시아누스의 삶과 영성을 다룬 가브리엘레 지글러의 저서이다. 그의 사상과 생 빅토르 수도원 설립 배경 등을 엿볼 수 있다.
%2Fbanner_1748613606995.jpg&w=3840&q=75)
/feature_0_1747730971744.jpg)
/feature_0_174779669263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