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키이우의 다른 교회들과 차별화된, 비잔틴 양식의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건축미를 감상하고 싶은 건축 애호가나 역사에 관심 있는 여행객, 혹은 조용히 기도하며 영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이 주로 찾는다.
교회 내부에 그려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수 세기에 걸친 파괴와 재건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다. 포딜 지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변의 역사적인 분위기와 함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반려동물 동반 시 입장이 엄격히 제한되어, 작은 반려견을 안고 있더라도 내부 출입 및 물품 구매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키이우 지하철 M2 오볼론스코-테렘키브스카 선(Оболонсько-Теремківська лінія)의 콘트락토바 플로შ차(Контрактова площа)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역에서 교회까지는 도보로 약 5분 이내 거리이다.
🚶 도보
- 포딜 지구의 주요 관광 명소인 안드리이브스키 언덕 등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주요 특징
12세기 고대 루스 건축 양식으로 재건되어, 키이우의 다른 교회들과는 다른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비잔틴 양식의 영향이 엿보이는 외관은 포딜 지구의 역사적인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교회 내부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종교적인 유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평화롭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하거나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132년에 처음 건축되어 몽골 침입, 화재 등으로 수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고대 루스 문학의 걸작 '이고르 원정기'에 언급된 유서 깊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외관 (콘트락토바 광장 방면)
독특한 고대 루스 양식으로 재건된 교회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주변 콘트락토바 광장의 풍경과 함께 촬영하기 좋다.
교회 내부 제단 및 프레스코화
아름답게 장식된 제단과 벽면의 프레스코화를 중심으로 내부의 경건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조명이 다소 어두울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입구 상단 종탑과 교회 측면
입구 위쪽에 설치된 작은 종탑과 함께 교회의 측면 모습을 촬영하여 건축물의 입체감을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종교 시설이므로 내부 관람 및 사진 촬영 시에는 다른 방문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예의를 지키는 것이 좋다.
교회 주변의 콘트락토바 광장, 안드리이브스키 언덕, 삼소노프 분수 등 포딜 지구의 다른 명소와 함께 둘러보는 일정을 계획하면 좋다.
교회 내부는 조명이 다소 어두울 수 있으므로, 사진 촬영을 계획한다면 이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일부 방문객은 플래시 없이 촬영이 어려웠다는 언급을 남겼다.
반려동물 동반 규정이 엄격하여 작은 반려견을 안고 있어도 입장이 거절된 경험이 있다는 후기가 있으므로, 반려동물 동반 방문객은 이 점을 미리 인지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립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의 아들 므스티슬라프 대공에 의해 콘트락토바 광장 자리에 처음 세워졌다. 돌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어진 키이우 최초의 건물이었다.
몽골 침입으로 파괴
바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교회가 파괴되었다.
재건 및 재축성
대대적인 보수 후 다시 축성되었으나, 1482년 크림 타타르족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
이탈리아 건축가 세바스티아노 브라키에 의해 5개의 돔을 가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시기 잠시 키이우 정교회 수도 대주교의 주교좌 성당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
건축가 이반 그리고로비치-바르스키에 의해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고 종탑이 세워졌다.
화재 후 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
대화재로 인해 중앙 돔이 붕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고, 이후 안드레이 멜렌스키의 설계로 단일 돔의 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철거
소비에트 정권의 종교 탄압 정책에 따라 교회가 완전히 철거되었다.
12세기 양식으로 복원
우크라이나 독립 후, 건축가 유리 아세예프의 설계에 따라 12세기 고대 루스 시대의 모습으로 추정하여 재건되었다. 이 복원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여담
교회 이름 '피로호슈차'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탑에 보관되었던 비잔틴 이콘 '피르고티스'(탑의 성모)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다른 설로는 빵을 거래하던 상인들('피리그'-빵, '고슈치'-상인들)이 자금을 대서 지었다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피로고스트'라는 상인의 이름을 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키이우에서 돌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벽돌로만 지어진 최초의 건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명한 고대 루스 문학 작품인 **'이고르 원정기'**에서 폴로베츠인의 포로 생활에서 키이우로 돌아온 이고르 스뱌토슬라비치 공작과 관련하여 이 교회가 언급된다.
현재의 건물은 1997-1998년에 12세기 원형을 바탕으로 재건된 것이나, 원형에 대한 정확한 시각 자료가 부족하여 복원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교회 부지에는 과거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들을 재매장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중매체에서
이고르 원정기 (Слово о полку Ігоревім)
고대 루스 문학의 중요한 서사시로, 주인공 이고르 스뱌토슬라비치 공작이 폴로베츠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가 키이우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이 교회가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