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키이우의 역사적 자취와 드니프로 강의 탁 트인 전망을 경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사진 촬영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도시의 가장 오래된 기념물 중 하나를 직접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1802년에 세워진 기념비의 건축 양식을 관찰할 수 있으며, 주변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드니프로 강과 도시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기념비로 이어지는 긴 계단을 따라 산책하거나 다른 주요 명소로 이동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기념비와 주변 시설의 유지 관리가 미흡하여 아쉬움을 표하며, 특히 강변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가 어둡고 청결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접근 방법
도보 접근 (계단 이용)
- 드니프로 강변에서 지하 통로를 통해 계단으로 접근할 수 있다.
- 흐레샤티크 거리, 유럽 광장 방면에서 긴 계단(300개 이상)을 통해 내려올 수 있다.
- 유리 다리(클리치코 다리) 아래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계단이 많아 도보 이동 시 시간과 체력을 고려해야 한다.
주요 특징
기념비가 위치한 언덕에서는 드니프로 강과 도시 좌안의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다. 주변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면서 경치를 즐기기에 좋다.
기념비는 드니프로 강변과 시내 중심부를 연결하는 300개가 넘는 긴 계단과 이어져 있다. 이 계단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을 즐기기에도 좋으며, 그 자체로도 역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802년에 세워진 이 기념비는 키이우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기념물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자치권을 상징하는 마그데부르크 법 반환을 기념하여 건립되었으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이다.
추천 포토 스팟
계단 상부 전망 지점
기념비로 이어지는 긴 계단의 위쪽에서 드니프로 강과 도시의 탁 트인 파노라마를 배경으로 기념비와 함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기념비 근처 벤치
드니프로 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기념비를 배경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일몰 시간대 강변 조망 지점
해가 질 무렵, 기념비 주변에서 붉게 물드는 하늘과 드니프로 강, 그리고 기념비의 실루엣을 함께 담아 감성적인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강변에서 기념비로 가려면 지하보도를 이용하고, 언덕 위에서는 유리 다리(클리치코 다리) 아래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흐레샤티크 거리나 유럽 광장으로 빠르게 이동하려면 기념비 옆 계단(300개 이상)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계단 자체가 사진 촬영 명소로 인기가 있으며, 여름철 산책 코스로도 적합하다.
강변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는 조명이 어둡고 관리가 미흡할 수 있으니, 특히 늦은 시간에는 주의하는 것이 좋다.
기념비 주변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드니프로 강의 경치를 감상하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역사적 배경
마그데부르크 법 최초 획득
키이우가 처음으로 도시 자치권인 마그데부르크 법을 부여받았다.
기념비 건립
키이우에 마그데부르크 법이 반환된 것을 기념하여 건축가 안드레이 멜렌스키의 설계로 기념비가 세워졌다. 원래는 샘 위에 세워진 예배당이었으며, 8월 15일에 봉헌되었다.
종교 행렬 시작
세라피온 수도대주교가 기념비로 물을 봉헌하기 위한 십자가 행렬을 시작했다.
예배당 추가
기념비 내부에 성수가 나오는 우물이 있는 작은 예배당이 추가되었다.
계단 건설
기념비로 이어지는 현재의 계단이 건설되었다.
여담
키이우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야외 기념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 외에도 '마그데부르크 법 기둥', '루스 세례 기념비', '성 볼로디미르 하부 기념비'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다는 얘기가 있다.
이 장소에서 성 볼로디미르 대공이 자신의 열두 아들을 세례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그데부르크 법 반환을 기념하여 세워졌으나, 당시 러시아 제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루스 세례 및 성 볼로디미르와 연관된 것처럼 그 의미를 부여해야 했다는 설이 있다.
기념비 건립을 위해 키이우 시민들이 3일간 축제를 벌이고 1만 루블이라는 거금을 모금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기념비가 세워진 곳 아래에는 과거 치유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샘이 있었는데, 후일 분석 결과 물에 라돈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멀리서 보면 기념비의 모습이 마치 촛불처럼 보인다는 언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