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유럽, 아시아, 고대 미술에 걸친 방대하고 가치 있는 컬렉션을 감상하고자 하는 미술 애호가 및 역사·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루벤스, 벨리니 등 유럽 거장들의 원화나 희귀한 비잔틴 아이콘, 동양 미술품과 더불어 박물관 건물 자체의 역사적·건축적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관람객들은 두 개의 역사적인 건물에 전시된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미술품을 둘러볼 수 있으며, QR코드나 음성 안내를 통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때때로 어린이를 위한 퀘스트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일반 컬렉션은 전시되지 않고 전쟁 관련 사진전 등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일부 방문객은 직원들의 외국어 응대가 부족하거나 관람 중 과도한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경험이 있다.
접근 방법
🏛️ 위치
- 키이우 중심부 테레셴키프스카 거리에 위치한다.
주요 특징
피터르 파울 루벤스, 젠틸레 벨리니, 후안 데 수르바란 등 유럽 거장들의 회화 원작을 비롯하여 14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조각, 응용 미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각국 미술 학파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중국, 일본, 티베트의 불교 미술과 이란, 터키 등 이슬람 문화권의 예술품을 만나볼 수 있다. 중국 도자기와 회화, 일본 우키요에 판화와 넨스케 조각, 티베트 탕카 등 다양하고 희귀한 동양 미술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6세기와 7세기에 제작된 희귀한 초기 비잔틴 '시나이' 아이콘 컬렉션은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또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조각, 도기, 유리 공예품 등 소규모지만 의미 있는 고대 미술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황금의 방 (Golden Chamber / Rococo Room)
로코코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으로, 정교한 디테일과 금빛 장식이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하넨코 저택 외관 및 정면 파사드
19세기 말 역사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저택 건물 자체가 훌륭한 피사체이다. 특히 복원된 하넨코 가문의 문장이 있는 정면이 인기다.
전시실 내부 천장 및 계단
각 전시실의 독특한 천장 장식과 고풍스러운 계단은 박물관의 역사적 분위기를 담기에 좋다.
방문 팁
일요일에는 학생 및 청소년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다.
주말 특정 시간에는 서양 미술과 동양 미술 각 관에서 가이드 투어가 진행되기도 한다.
작품 설명은 영어로도 제공되며, QR코드를 통해 작품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거나 관련 퀘스트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전쟁 상황으로 인해 상설 전시 내용이 변경되거나 특별 전시가 진행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입장권 구매 시 현금만 가능한 경우가 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소액의 현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두 개의 건물에 전시가 나뉘어 있으므로, 시간 배분을 잘 하여 두 곳 모두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역사적 배경
컬렉션의 시작
보흐단 하넨코(1849-1917)와 바르바라 테레셴코(1852-1922)가 결혼 후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박물관 컬렉션의 기반이 되었다.
테레셴키프스카 저택
하넨코 부부는 키이우 테레셴키프스카 거리에 위치한 저택(현재 박물관 건물)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곳을 자신들의 미술품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보흐단 하넨코의 유언
보흐단 하넨코가 사망하면서, 그의 유언에 따라 개인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공공 박물관 설립 의지가 명시되었다.
바르바라 하넨코의 기증
바르바라 하넨코는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소장품, 저택, 도서관 전체를 우크라이나 과학 아카데미에 무료로 기증하는 증서를 작성했다. 컬렉션의 분할 불가가 조건 중 하나였다.
국립 박물관 개관
볼셰비키 정부에 의해 하넨코 가문의 재산이 국유화되었고, 저택에 국립 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사가 게오르기 루콤스키가 초대 큐레이터가 되었으며, 바르바라 하넨코도 초기 전시에 참여했다.
소장품 변동 시기
바르바라 하넨코 사후 박물관 명칭에서 하넨코 부부의 이름이 삭제되었다. 이 시기 다른 국유화된 컬렉션들이 추가되었으나, 동시에 소련 정부의 박물관 유물 해외 판매 정책 등으로 인해 소장품의 일부가 유출되거나 다른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약탈
가장 귀중한 소장품 일부는 우파 시로 대피했으나, 키이우에 남겨진 많은 예술품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 약탈당했다. 박물관은 현재도 약탈된 문화재 반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대적 보수 공사
박물관 건물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위해 장기간 휴관했다.
설립자 명칭 복원
박물관의 공식 명칭에 설립자인 '보흐단과 바르바라 하넨코'의 이름이 다시 포함되었다.
비잔틴 아이콘 상설 전시
6-7세기에 제작된 희귀한 비잔틴 '시나이' 아이콘들의 상설 전시가 시작되었다.
아시아 미술관 개관
인접한 사흐노프스키 가옥 건물에 아시아 미술 상설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여담
하넨코 부부는 자신들의 저택을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미래의 미술관으로 구상하며 내부를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각 전시실은 '고딕', '르네상스', '로코코' 등 특정 역사 시대를 반영하여 꾸며졌으며, 이는 당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역사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바라 하넨코는 남편 보흐단 하넨코 사후에도 박물관 설립과 운영에 깊이 관여했으며, 초대 박물관 위원회 의장을 맡아 활동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박물관의 아시아 미술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사흐노프스키 가옥에서는 1880년에 키이우 최초로 전화 통화가 시험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넨코 저택 정면 외벽, 1층 창문 사이에는 복원된 하넨코 가문의 문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설립자인 바르바라 하넨코는 우크라이나 민속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전통 공예 부흥 운동에도 참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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