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키이우의 초기 역사와 고고학적 유적에 관심 있는 탐방객, 특히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기원과 고대 건축에 대해 배우고 싶은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키이우 루스 시대의 중요한 종교 및 정치적 중심지였던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역사 애호가나 연구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곳이다.
방문객들은 키이우 최초의 석조 교회였던 이곳의 보존된 기초를 직접 둘러보며 천 년 전의 건축 양식을 상상해 볼 수 있고, 블라디미르 대공과 올가 공주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장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스타로키이브스카 언덕에 위치하여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원래의 웅장했던 교회 건물은 소실되어 현재는 그 기초와 터만 남아있으므로, 화려한 건축물을 기대하는 방문객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방문 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역사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도보 및 대중교통
- 키이우 중심부에 위치하여 안드리이브스카 내리막길, 국립 우크라이나 역사 박물관 등 주요 명소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이 필요할 수 있다.
언덕 위에 위치하므로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을 수 있다.
주요 특징
키이우 최초의 석조 교회였던 데샤틴나 교회의 역사적인 기초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996년에 완공된 교회의 규모와 배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 고대 건축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올가 공주, 블라디미르 대공과 그의 아내 안나 등 키이우 루스의 주요 인물들이 묻혔던 장소로서,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국가 형성 초기의 중요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주변에는 관련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을 수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교회가 위치했던 스타로키이브스카 언덕 위에서는 아름다운 키이우 시내와 드니프로강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안드리이브스카 교회 등의 주변 명소들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교회 기초 유적과 안내판
천년 역사의 흔적인 교회 기초를 배경으로, 안내판과 함께 역사적 의미를 담아 촬영할 수 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안드리이브스카 교회
데샤틴나 교회 터에서 키이우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안드리이브스카 교회를 아름다운 구도로 촬영할 수 있다.
주변 공원과 함께 담는 교회 터
교회 터 주변으로 조성된 공원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함께 유적지의 모습을 넓게 담아볼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인근에 위치한 국립 우크라이나 역사 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면 데샤틴나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키이우 루스 시대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다.
교회 터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저녁 시간에 방문하면 조명과 함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키이우 야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페트라 모힐라(Petro Mohyla)의 라임 나무로 알려진 오래된 나무가 근처에 있으니 함께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교회 유적 자체는 기초만 남아있으므로, 방문 전 관련 역사 자료를 미리 찾아보고 가면 더욱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설
블라디미르 대공의 명으로 비잔틴 및 현지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키이우 최초의 석조 교회로 건설됨. 성모 마리아의 안식(Dormition of the Theotokos)을 기리기 위해 '성모 안식 교회'로도 불림.
화재 및 재건
화재로 심각하게 손상된 후 야로슬라프 무드리 왕자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1039년에 다시 봉헌됨.
왕가의 영묘
야로슬라프 왕자가 키이우 공작들의 영묘로 삼아 야로폴크와 올레그의 유해를 세례 후 안장함. 블라디미르 대공과 그의 아내 안나, 올가 공주의 유해도 이곳에 안치됨.
약탈
교회가 두 차례 약탈당함.
몽골 침입으로 파괴
바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의 키이우 침공 당시 키이우 시민들의 마지막 피난처로 사용되었으나, 결국 화재와 함께 붕괴되어 완전히 파괴됨.
19세기 재건
키이우의 미트로폴리트 예브게니 볼코비티노프의 주도로 고고학적 발굴 후, 바실리 스타소프의 설계에 따라 러시아 부흥 양식으로 새로운 교회가 건설됨.
소비에트 정권에 의한 파괴
19세기에 재건된 교회는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다시 파괴됨.
복원 논의 및 최근 상황
교회 복원에 대한 계획이 여러 차례 논의되었으나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음. 2024년 5월, 국립 우크라이나 역사 박물관 부지 내 유네스코 완충 구역에 불법적으로 건축되었던 현대식 종교 건물이 철거됨.
여담
교회의 이름 '데샤틴나(십일조)'는 블라디미르 대공이 자신의 수입과 재산의 10분의 1을 교회의 건축과 유지 자금으로 책정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교회는 원래 성모 마리아의 안식을 기리기 위해 '성모 안식 교회'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대공의 할머니이자 루스 최초의 기독교 통치자였던 올가 공주의 유해가 원래 비쉬호로드에 있었으나 이 교회로 옮겨져 다시 안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최초 교회 건설 당시 순교한 테오도르 바라그인과 그의 아들 요한의 순교지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체르니히우에 있는 구세주 변모 대성당(1036년 완공)이 원래 데샤틴나 교회의 크기와 외관을 어느 정도 재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데샤틴나 교회 부지에서는 루스 최초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