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요크 시내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거나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탐방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최근 보수 공사를 통해 내부 관람 환경이 개선되어 도시의 역사적 상징물을 경험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타워 꼭대기 전망대에서 요크 시내와 주변 풍경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복원된 예배당과 초기 형태의 수세식 화장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오디오 가이드와 정보판을 통해 타워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입장료에 비해 내부 볼거리가 다소 부족하고 관람 시간이 짧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현대적인 보수 방식에 아쉬움을 표하는 방문객도 일부 있으며, 타워 정상까지 오르기 위한 계단이 많고 가파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요크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시내 명소에서 도보로 접근이 용이하다.
- 요크 기차역(York Railway Station)에서는 도보로 약 15-20분 소요된다.
🚗 자가용
- 타워 바로 인근에 Clifford's Tower Car Park (유료)가 있으나, 주차 요금이 비싼 편이라는 평가가 있다.
- 도보 가능한 거리에 Peel Street Car Park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 대중교통 (버스)
- 요크 시내를 운행하는 다수의 버스 노선이 타워 근처를 지나간다.
- Park & Ride 서비스 이용 시, Askham Bar 노선 등이 타워 근처에 정차한다.
구체적인 버스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타워 꼭대기에 마련된 새로운 지붕 데크와 전망 공간에서는 요크 민스터를 비롯한 역사적인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멀리까지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여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내
2022년 완료된 보수 공사를 통해 타워 내부에 새로운 목조 계단과 관람로가 설치되어 이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공간까지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적 시설이 조화를 이루며, 방문객들은 다양한 높이에서 타워의 구조를 경험할 수 있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내
타워 내부에는 과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공간들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작은 예배당과 왕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 그리고 중세 시대의 초기 수세식 화장실 유적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각 공간에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정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운영시간: 운영 시간 내내
추천 포토 스팟
타워 정상 전망대 (요크 민스터 배경)
요크 민스터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특히 해질녘 노을과 함께라면 더욱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타워 외부 언덕 아래 (봄철 수선화와 함께)
봄이 되면 타워가 서 있는 언덕 경사면에 수선화가 만개하여, 노란 꽃밭을 배경으로 웅장한 타워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역사적 건축물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담을 수 있는 지점이다.
타워 내부 나선형 계단 또는 아치형 창문
타워 내부의 오래된 석조 나선형 계단이나 독특한 형태의 아치형 창문을 활용하면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독특한 구도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를 잘 활용하는 것이 포인트다.
축제 및 이벤트
요르빅 바이킹 페스티벌 (Jorvik Viking Festival) 연계 행사
매년 2월 경
요크에서 매년 열리는 유럽 최대 규모의 바이킹 축제 기간 동안 클리퍼드 타워 주변에서 전투 재현이나 스토리텔링 등 특별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과거 바이킹 시대 요르빅의 역사와 연결되는 장소로서 의미를 더한다.
방문 팁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 시 입장료를 최대 15% 또는 1인당 약 3파운드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English Heritage 멤버십이 있다면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 가능하며, 때에 따라 빠른 입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
타워 바로 옆 주차장(Clifford's Tower Car Park)은 요금이 비싼 편이므로, 도보로 약 5-10분 거리에 있는 Peel Street Car Park 등 다른 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비를 절약할 수 있다.
타워 내부에는 화장실이나 카페, 기념품점이 없으므로 방문 전후로 인근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는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스캔하여 이용할 수 있으니, 개인 이어폰을 준비하면 편리하다.
계단이 많고 일부 구간은 가파르거나 좁은 나선형 계단이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필수적이다.
유모차나 휠체어는 접근이 매우 어려우므로, 해당 방문객은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최초 목조 성채 건설
정복왕 윌리엄 1세의 명령으로 요크를 장악하고 북부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포스 강과 우즈 강 사이에 목조 모트 앤 베일리 성채를 급히 건설했다.
파괴 및 재건
반란군과 바이킹 군대에 의해 성채가 파괴되었으나, 이후 재건되고 수비가 강화되었다.
유대인 대학살
반유대주의 폭동으로 약 150명의 유대인이 목조 성채로 피신했으나, 폭도들에게 포위되어 집단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성채는 불탔다.
석조 성채 재건 (클리퍼드 타워 건설)
헨리 3세의 명령으로 기존 목조 성채 자리에 마그네슘 석회암을 사용하여 현재의 독특한 네잎클로버(quatrefoil) 형태의 석조 성채(킵)를 건설했다. 이 시기에 외벽과 문루 등도 강화되었다.
스코틀랜드 전쟁 시 중요 거점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기간 동안 요크 성은 잉글랜드 북부의 왕실 행정 중심지이자 중요한 군사 작전 기지로 활용되었다.
쇠퇴 및 감옥 활용 증가
성이 점차 노후화되면서 군사적 중요성은 감소하고, 지역 범죄자 및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군사적 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잉글랜드 내전과 요크 공성전
잉글랜드 내전 발발 후 왕당파에 의해 수리 및 요새화되어 1644년 의회군에 맞선 요크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투 후 의회군에 항복했다.
화약고 폭발
성 조지 축일 밤, 타워 내 화약고에서 원인 불명의 폭발이 일어나 지붕과 내부 구조물이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의 폐허 상태가 되었다. 고의적인 폭발이라는 설도 있다.
감옥 및 행정 중심지로 재개발
타워 주변의 성 베일리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개발되어 요크셔 지역의 행정 중심지 및 감옥, 채무자 감옥 등으로 사용되었다. 1825년에는 새로운 튜더 고딕 양식의 교도소가 건설되었다.
요크 시에 기증 및 보존 시작
클리퍼드 타워가 요크 시에 기증되었고, 보존 및 수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특히 지반 침하 문제 해결을 위한 콘크리트 기초 공사가 진행되었다.
국가 기념물 지정
영국 공공사업청(Office of Works)으로 이관되어 국가 기념물로 지정 및 관리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 교도소 철거
1825년에 지어진 튜더 고딕 양식의 교도소 건물이 철거되었다.
대규모 보존 프로젝트 완료
잉글리시 헤리티지에 의해 석회암 구조 보수, 예배당 지붕 관리, 새로운 내부 접근 계단 및 지붕 전망 데크 설치 등 대규모 보존 및 개선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다.
여담
클리퍼드 타워라는 이름은 16세기 말부터 이 성의 세습 관리인이었던 클리포드 가문(컴벌랜드 백작 가문)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190년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장소로, 당시 약 150명의 유대인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현재 타워 주변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684년 타워 내부의 화약고가 폭발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폭발의 열기로 인해 타워의 석회암이 현재와 같이 약간 분홍빛을 띠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봄이 되면 타워가 서 있는 인공 언덕(모트) 경사면에 수선화가 만발하는데, 이는 1190년 유대인 학살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이 있다. 이 수선화는 매년 학살 추모일 즈음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타워는 독특한 네잎클로버(Quatrefoil) 형태로 디자인되었는데, 이는 방어 시 사각지대를 줄이고 더 넓은 범위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실험적인 설계로 여겨진다. 이러한 디자인은 영국 내에서는 드물지만 프랑스 에탕프 성의 디자인과 유사하며, 폰테프랙트 성의 미래 설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7세기 폭발 사건 당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성채가 '민스 파이(Minced Pie)'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철거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폭발 직전 일부 수비대원들이 개인 물품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사상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방화나 폭파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