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스코틀랜드 중세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폐허의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하고, 왕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을 둘러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선호하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지붕 없이 남은 석조 구조물 사이를 걸으며 과거의 웅장함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왕족들의 무덤과 기념비를 살펴보거나, 인접한 홀리루드 궁전 정원에서 아서 시트의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일 경우 관람 경험이 다소 저해될 수 있다는 점과 수도원 내부에 화장실이 없어 궁전 내부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점이 언급된다.
접근 방법
🚶 도보
- 에든버러 구시가지의 로열 마일(Royal Mile) 동쪽 끝에 위치하여, 에든버러 성에서 로열 마일을 따라 약 20-3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 버스
- Lothian Buses 35번이 홀리루드(Holyrood) 지역을 경유하며, 수도원 및 궁전 근처에 정차한다.
- 에든버러 시내 주요 지점에서 홀리루드 방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기차
- 에든버러 웨이벌리(Waverley)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15-20분 거리이거나, 역 앞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지붕 없이 남은 웅장한 석조 아치와 기둥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과거 수도원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 왕족들의 무덤과 다양한 기념비를 직접 살펴보며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제공되는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수도원의 창건 배경, 주요 역사적 사건, 건축적 특징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특히 메리 여왕과 관련된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수도원 관람 후 이어지는 홀리루드 궁전 정원에서 아름답게 관리된 녹지와 함께 수도원의 외부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정원 너머로 보이는 아서 시트의 인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좋다.
추천 포토 스팟
수도원 서쪽 정문 (Main West Door)
정교한 조각이 남아있는 수도원의 주 출입구로, 고딕 건축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
지붕 없는 내부 아치와 하늘
무너진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고딕 양식의 아치가 어우러져 독특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궁전 정원에서 본 수도원 전경과 아서 시트
잘 가꾸어진 정원과 함께 수도원의 전체적인 모습, 그리고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서 시트까지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홀리루드 궁전 입장권에 수도원 관람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별도 구매할 필요가 없다.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수도원의 역사와 주요 지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관람에 도움이 된다.
수도원 내부에 화장실이 없으므로, 궁전 안뜰에 위치한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는 것이 좋다.
유적지 바닥이 고르지 않을 수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일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관련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창건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1세에 의해 오귀스티니아 수도회 소속 수도원으로 창건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1127년 데이비드 1세가 사냥 중 위험에 처했을 때 성스러운 십자가의 환영을 보고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왕실과의 관계 심화 및 의회 개최
스코틀랜드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주요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1326년 로버트 1세가 이곳에서 의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스코틀랜드 의회가 열렸다. 점차 왕실 거주지로서의 기능도 갖추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2세 매장
스코틀랜드의 왕 데이비드 2세가 사망 후 수도원에 매장되었다.
제임스 2세 출생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제임스 2세 대관식
제임스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제임스 2세 결혼
제임스 2세와 겔더의 메리가 결혼식을 올렸다.
왕실 거주지로 발전
수도원의 영빈관이 확장되어 본격적인 왕실 거주 공간으로 발전하였고, 홀리루드 궁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제임스 4세 결혼
제임스 4세와 잉글랜드의 마거릿 튜더가 결혼식을 올렸다.
기즈의 메리 대관식
제임스 5세의 왕비 기즈의 메리가 대관식을 치렀다.
거친 구애 전쟁 중 파괴
잉글랜드 헨리 8세의 '거친 구애(Rough Wooing)' 전쟁 당시 침공한 영국군에 의해 수도원이 심하게 파괴되었다. 지붕의 납이 벗겨지고 종들이 약탈당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종교개혁의 여파로 수도원은 다시 한번 큰 피해를 입었고, 제단이 파괴되고 내부가 약탈당했다.
부분 철거 및 교구 교회로 사용
수도원의 동쪽 부분(성가대석과 수랑)이 심하게 훼손되어 철거되었고, 서쪽의 네이브(회중석)만이 남아 캐논게이트 지역의 교구 교회로 사용되었다.
덴마크의 앤 대관식
제임스 6세(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왕비 덴마크의 앤이 대관식을 올렸다.
찰스 1세 대관식
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 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명예혁명 중 왕실 무덤 훼손
제임스 7세(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가 가톨릭 예배당으로 복원하려 했으나, 명예혁명 발발 후 에든버러 폭도들이 침입하여 왕실 무덤을 포함한 내부를 훼손했다.
지붕 붕괴
1758년에서 1760년 사이에 진행된 석조 지붕 교체 공사가 구조적 결함으로 이어져, 1768년 12월 2일 지붕이 붕괴되면서 현재와 같은 지붕 없는 폐허 상태가 되었다.
펠릭스 멘델스존 방문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 폐허가 된 수도원을 방문하고 영감을 받아 그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담
수도원의 이름 '홀리루드(Holyrood)'는 '성스러운 십자가(Holy Cross)'를 의미하며, 이는 데이비드 1세의 창건 설화와 관련이 깊다는 얘기가 있다.
한때 수도원 주변 약 8km(5마일) 구역은 채무자나 특정 범죄 혐의자들이 법적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성역(Sanctuary)으로 기능했으며, 이곳에 머무는 이들은 '애비 레어드(Abbey Lairds)'라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13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이곳 홀리루드 수도원에서 회의를 개최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데이비드 1세의 어머니인 성 마거릿이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스코틀랜드의 검은 십자가(Black Rood of Scotland)'라는 귀중한 성유물이 이곳에 보관되었으나, 1346년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게 빼앗겨 더럼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그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설이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선구적인 사진가이자 화가인 루이 다게르가 그린 '홀리루드 예배당의 폐허(The Ruins of Holyrood Chapel)'라는 유명한 작품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홀리루드 예배당의 폐허 (The Ruins of Holyrood Chapel)
프랑스 화가이자 사진 기술의 선구자인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그린 작품으로, 달빛 아래 신비로운 분위기의 폐허가 된 수도원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담아냈다. 이 그림은 당시 유행했던 낭만주의적 감성을 잘 보여준다.
홀리루드 (Holyrood)
영국의 시인 레티샤 엘리자베스 랜던(Letitia Elizabeth Landon)이 런던 리젠트 파크의 디오라마에 전시된 '홀리루드 예배당의 폐허'를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시이다. 작품은 폐허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회상을 노래하고 있다.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Symphony No. 3 'Scottish')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 1829년 스코틀랜드 여행 중 홀리루드 수도원의 폐허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이 교향곡의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아다지오 악장은 수도원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메리, 퀸 오브 스코츠 (Mary, Queen of Scots)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역사 영화로, 그녀의 주요 거처였던 홀리루드 궁전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수도원은 궁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