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웅장한 신전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나 고대 유적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현재는 복원된 한 개의 기둥과 일부 기초석만이 남아 있어 과거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인근 에페소스 유적지 방문 시 함께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실제 남아있는 유적이 매우 적어 단독 방문 시 다소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으며, 유적지 보존 및 관리 상태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셀축 시내 중심부(예: 셀축 버스터미널, 에페소스 고고학 박물관)에서 도보로 약 15~20분 거리에 위치한다.
표지판 안내가 부족할 수 있으니 지도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 돌무쉬 (미니버스)
- 셀축 버스터미널이나 시내에서 에페소스 유적지 방면으로 가는 돌무쉬를 이용하여 '아르테미스 신전(Artemis Tapınağı)' 또는 '에페소스 박물관(Efes Müzesi)' 근처에서 하차할 수 있다.
돌무쉬 기사에게 목적지를 미리 말해두면 도움이 된다.
🚗 자가용/택시
- 내비게이션에 'Temple of Artemis' 또는 'Artemis Tapınağı, Selçuk'으로 검색하여 찾아갈 수 있다. 유적지 바로 옆이나 인근에 비공식적인 주차 공간이 있다.
주요 특징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혔던 장엄한 신전의 터를 직접 거닐며 고대 역사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현재는 한 개의 기둥만이 덩그러니 서 있지만, 그 규모를 통해 과거의 영광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신전 터에 유일하게 남은 복원된 기둥 위에는 종종 황새가 둥지를 틀고 있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 기둥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많은 방문객들의 사진에 담긴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별도의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으며, 에페소스 고고학 박물관이나 성 요한 대성당 등 셀축의 다른 주요 역사 유적지와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용이하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유일하게 남은 기둥
신전의 유일한 현존 기둥은 이곳의 상징과도 같다. 특히 기둥 꼭대기에 황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은 특별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이다.
신전 터에서 바라보는 셀축 성채 및 성요한 대성당
신전 터에서는 멀리 아야술룩 언덕 위의 셀축 성채와 성요한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고대 유적과 중세 건축물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신전 유적 전체 풍경
넓게 펼쳐진 신전 터와 주변 습지, 그리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을 함께 담으면 고즈넉하면서도 역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유적지 주변에서 사진첩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려는 상인들이 있을 수 있다.
실제 볼거리는 한 개의 기둥과 일부 터만 남아있으므로,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에페소스 유적지 방문 전후에 잠시 들르는 것이 좋다.
에페소스 고고학 박물관에 아르테미스 신전의 복원 모형과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니 함께 방문하면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별도의 관리 인원이나 편의 시설(화장실, 매점 등)이 거의 없으므로 방문 전 필요 물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하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역사적 배경
최초의 성소 (테메노스)
이오니아인들의 이주 이전부터 아르테미스 여신 또는 그 지역의 토착 여신을 모시던 성소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칼리마코스는 아마존 여인들이 최초의 성소를 세웠다고 기록했다.
홍수로 인한 파괴
초기 신전이 대홍수로 인해 파괴되었다. 이때 상아 조각 등 유물이 함께 매몰되었다.
첫 번째 대규모 재건 (아르카익 신전)
크레타 출신 건축가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가 설계를 맡고,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후원으로 대리석 신전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오니아식 기둥이 사용된 최초의 거대한 신전 중 하나였다.
헤로스트라토스의 방화로 소실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자 했던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인물이 신전에 불을 질러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 사건은 알렉산더 대왕의 탄생일과 같은 날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대규모 재건 (헬레니즘 신전, 세계 7대 불가사의)
알렉산더 대왕 사후 에페소스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모아 이전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신전을 재건했다. 이 신전이 안티파트로스가 선정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길이 약 137m, 너비 약 69m, 높이 약 18m에 127개 이상의 대리석 기둥을 가졌다.
고트족의 침입과 파괴
로마 제국을 침공한 고트족에 의해 신전이 약탈당하고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최종 파괴 및 폐쇄 추정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이교 신전들이 파괴되던 시기에 최종적으로 폐허가 되었거나 공식적으로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록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신전 터 발굴
영국인 건축가 존 터틀 우드가 이끄는 대영박물관 탐사팀이 6년간의 탐색 끝에 신전의 위치를 발견하고 발굴을 시작했다.
유적지로 보존
현재는 발굴된 기초와 일부 유물, 그리고 복원된 한 개의 기둥만이 남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여담
알렉산더 대왕이 신전 재건 비용을 대겠다고 제안했으나, 에페소스인들은 '신이 다른 신에게 신전을 바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중히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방화범 헤로스트라토스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남기려는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며, 이로 인해 '헤로스트라투스적 명성(Herostratic fame)'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신전 건축가들은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습지대에 신전을 지었으며, 기초 공사 시 양털과 숯을 다져 넣었다고 전해진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여러 개의 가슴을 가진 풍요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것이 실제 가슴이 아니라 황소의 고환이나 계란 등 제물로 바쳐진 장식물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신전은 박해받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성역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신화 속 아마존 여인들이 디오니소스나 헤라클레스의 처벌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했던 전통과 연결된다고 알려져 있다.
신전의 기둥 중 일부가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건설에 사용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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