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스페인 왕실 역사, 특히 '라 차타'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사벨 데 보르본 왕녀의 생애에 관심 있는 이들이나, 인근의 데보드 신전 또는 파르케 델 오에스테를 산책하며 역사적 의미가 담긴 조형물을 감상하고자 하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왕녀와 당시 마드리드 시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흰 대리석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조형물 주변의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거닐거나 잠시 멈춰 서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다만, 마드리드 주요 관광 명소가 밀집된 중심부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어, 이 기념비만을 목적으로 방문하기에는 동선상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마드리드 지하철 3, 4, 6호선 아르궤예스(Argüelles)역 하차 후 도보 약 10-15분.
- 마드리드 지하철 3호선 벤투라 로드리게스(Ventura Rodríguez)역 하차 후 도보 약 10-15분.
데보드 신전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파세오 델 핀토르 로살레스 산책로에서 기념비를 찾을 수 있다.
🚶 도보
- 데보드 신전, 파르케 델 오에스테, 마드리드 왕궁 서쪽 지역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주요 특징
기념비의 중심에는 대중에게 친근했던 왕녀 이사벨 데 보르본의 노년기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위엄 있게 서 있다. 그녀의 온화하면서도 기품 있는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왕녀 조각상의 양옆으로는 당시 마드리드 시민들의 왕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꽃을 바치는 비올레테라(제비꽃 파는 소녀)가, 왼쪽에는 왕녀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놀로(전통 복장의 마드리드 남성)가 배치되어 왕녀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기념비 전체는 흰 대리석으로 제작되어 우아하고 정교한 느낌을 준다. 조각상 뒷면에는 스페인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어, 이사벨 왕녀의 신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추천 포토 스팟
기념비 정면 전체
왕녀 조각상을 중심으로 양옆의 인물상과 기념비 전체의 웅장함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왕녀 조각상과 함께
이사벨 왕녀 조각상 옆에 서서 인물 중심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왕녀에게 꽃을 바치는 소녀상과의 구도가 인기 있다.
야간 조명 아래 기념비
저녁에 조명이 켜지면 흰 대리석 기념비가 더욱 입체적이고 아름답게 빛나 로맨틱한 분위기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인근의 데보드 신전이나 파르케 델 오에스테(서쪽 공원)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함께 둘러보기 좋은 위치에 있다.
조명이 켜지는 저녁 시간대에 방문하면 흰 대리석 조각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여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기념비는 파세오 델 핀토르 로살레스 산책로에 있어, 가벼운 산책을 즐기며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마드리드 주요 관광 중심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으므로, 여행 동선을 계획할 때 이 점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이사벨 데 보르본 왕녀 출생
이사벨 2세 여왕과 그녀의 부군인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사이의 장녀로 마드리드 왕궁에서 태어났다. 출생과 동시에 아스투리아스 여공(왕위 계승자)의 지위를 얻었다.
이사벨 왕녀의 생애와 인기
'라 차타(La Chata)'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마드리드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두 차례 아스투리아스 여공이었으며, 자선 활동과 소탈한 성품, 투우에 대한 열정 등으로 유명했다.
프랑스로 망명 및 사망
스페인 제2공화국이 선포되자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망명한 지 며칠 뒤인 4월 23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기념비 건립
이사벨 데 보르본 왕녀를 기리기 위해 마드리드 파세오 델 핀토르 로살레스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건축가 미겔 가르시아-로마스 마타와 조각가 헤라르도 사라고사가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념비 제막
완성된 기념비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기념비는 ABC 신문의 주도로 이루어진 국민 모금을 통해 건립 자금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해 스페인 귀환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의 요청으로 프랑스에 있던 이사벨 왕녀의 유해가 스페인으로 돌아와 세고비아의 라 그랑하 데 산 일데폰소 왕궁의 콜레히아타에 안치되었다.
여담
이사벨 데 보르본 왕녀는 마드리드 시민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 '라 차타(La Chata)'라는 친근한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코가 납작한 귀여운 아이'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해진다.
마드리드의 주요 거리 중 하나인 '프린세사 거리(Calle de la Princesa)'와 프린세사 병원(Hospital de la Princesa)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벨 왕녀는 투우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도 유명했으며, 이는 그녀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기여한 요소 중 하나였다는 얘기가 있다. 그녀는 마드리드 투우장의 단골 관람객이었다고 한다.
기념비 건립 자금은 당시 유력 일간지였던 ABC 신문이 주도한 국민 모금을 통해 마련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왕녀에 대한 국민적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칠리아의 왕자였던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유산한 후, 남편이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고 한다.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 선포로 왕정이 무너지자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망명길에 오른 지 불과 며칠 만에 사망하여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는 언급이 있다. 그녀의 유해는 수십 년이 지난 1991년에야 스페인으로 돌아와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