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바에사의 중세 역사와 독특한 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역사 애호가나 도시의 상징적인 탑을 직접 보고자 하는 일반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 탑은 과거 도시 방어 시설의 일부였던 바르비칸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방문객들은 12세기 아랍 기원의 탑 외관을 자세히 관찰하고, 19세기에 추가된 시계와 20세기 초에 복원된 총안 등을 통해 시대별 변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탑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외부에서만 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및 도보
- 바에사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리나레스-바에사(Linares-Baeza) 역으로, 약 15km 떨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바에사 시내까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마드리드, 그라나다, 말라가 등 주요 도시에서 바에사로 오는 버스 노선이 운행된다.
주요 특징
12세기 아랍 기원의 탑으로, 19세기에 설치된 대형 시계가 특징이다. 바에사 시내 중심에서 시간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여겨진다.
운영시간: 상시 관찰 가능
과거 바에사를 둘러쌌던 무슬림 시대 성벽의 일부로, 도시 방어 시설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사벨 여왕의 철거 명령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탑 중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운영시간: 상시 관찰 가능
추천 포토 스팟
알리아타레스 탑 정면
탑의 전체적인 모습과 상징적인 시계를 함께 담을 수 있는 기본 구도이다. 탑의 웅장함을 표현하기 좋다.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바라본 탑
넓은 광장을 배경으로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진 알리아타레스 탑의 풍경을 촬영할 수 있다. 특히 저녁 무렵 조명이 켜지면 더욱 운치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탑 아래 아치 통로
탑 하단부의 아치형 통로를 이용하여 독특한 프레임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탑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앵글이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탑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외관만 관람 가능하다.
바에사와 인접한 우베다를 함께 묶어 하루 일정으로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탑 주변의 콘스티투시온 광장에는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이 있어 잠시 쉬어가거나 식사를 해결하기에 편리하다.
바에사 역사 지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다른 주요 명소들과의 도보 이동이 용이하다.
역사적 배경
건설 및 초기 소유
무슬림 지배 하에 도시 성벽의 일부로 건설되었다. 초기에는 알리아타레스라는 아랍 부족이 소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벨 여왕의 철거 명령
이사벨 1세 여왕이 바에사 내 귀족 가문 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성곽과 요새 대부분의 철거를 명령했으나, 알리아타레스 탑은 파괴를 면했다.
다른 명칭 사용
이 시기에 '알타레스 탑(Torre de los Altares, 제단의 탑)'으로도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다양한 용도 변경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모병 장소, 귀족들을 위한 감옥, 심지어 비둘기집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시계 설치
탑의 외벽에 현재 볼 수 있는 대형 시계가 설치되어 시계탑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총안(흉벽) 추가
탑 상부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총안(성벽 위 낮은 담)이 추가되었다. 이는 당시 시장이었던 돈 마누엘 가르손 네그레라(Don Manuel Garzón Negrera)가 한 상인에게 가게 앞 물건을 치우지 않은 벌로 비용을 부담시켜 비야라르 개선문의 디자인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담
탑의 이름 '알리아타레스'는 건설 당시 탑을 소유했던 아랍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15세기에 '알타레스 탑(Torre de los Altares, 제단의 탑)'으로 불렸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이사벨 여왕이 도시 내 귀족 가문들의 분쟁을 끝내기 위해 성곽 철거를 명령했을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탑 상부에 있는 총안(성벽 위 낮은 담)은 20세기 초, 한 상인이 가게 앞에 놓인 상자를 치우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자 그 벌로 비용을 대게 하여 비야라르 개선문의 것을 본떠 만들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탑에 시계를 설치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의회에서 처음에는 투우 경기를 여섯 차례 열었으나, 경비 충당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