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웅장한 건축미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종교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이나, 러시아 정교회의 독실한 신앙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고 싶은 이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고 예배를 이어온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방문객들은 바실리 스타소프가 설계한 엠파이어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 외부와 내부를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1828-1829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노획한 오스만 제국의 대포로 만들어진 독특한 울타리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표트르 대제가 아꼈던 '에데사의 성화상'을 비롯한 유서 깊은 성화상들을 친견하며 영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1호선 체르니솁스카야(Чернышевская)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5~10분 소요된다.
리테이니 대로(Liteyny Prospekt)에서 프레오브라젠스카야 광장(Preobrazhenskaya Square) 방면으로 이동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버스 및 기타
- 주변을 경유하는 다수의 시내버스 및 트롤리버스 노선이 있다. 구체적인 노선은 현지 대중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1828-1829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건축가 바실리 스타소프가 설계한 것으로, 노획한 오스만 제국 대포 102개의 포신으로 기둥을 만들고 육중한 사슬로 연결했다. 각 포신 위에는 왕관을 쓴 쌍두 독수리상이 장식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가 아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건립 시에도 함께 했다고 전해지는 시몬 우샤코프 작 '에데사의 성화상(Образ Спаса Нерукотворного)'과 표트르 대제의 누이 나탈리아 알렉세예브나 황녀의 명으로 1711년에 제작된 '슬픔에 잠긴 모든 이의 기쁨이신 성모(Всех Скорбящих Радосте)' 아이콘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화상들을 볼 수 있다.
1825년 화재 이후 건축가 바실리 스타소프에 의해 재건된 현재의 건물은 웅장한 엠파이어 양식을 보여준다. 프란체스코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의 도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원 성당의 이코노스타시스와 제단 닫집은 모스크바 목조각가 코빌린스키 형제가 완성했으며, 성화는 M. L. 콜로콜니코프가 그렸다.
추천 포토 스팟
대성당 정면 및 전경
엠파이어 양식의 웅장한 다섯 개 돔과 함께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다.
대포 울타리
오스만 제국 대포로 만들어진 독특한 울타리와 쌍두 독수리 장식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성당 내부 (촬영 허용 시)
화려한 이코노스타시스와 벽화, 성화상 등 정교회 특유의 아름다운 내부 장식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주님 변모 축일 과일 바자회 (야블로치니 스파스)
매년 8월 19일 (신력 기준, 구력 8월 6일)
주님 변모 축일(민간에서는 '사과 구세주' 축일로도 불림)을 기념하여 성당에서 전통적으로 과일 바자회가 열린다. 이 날은 사과를 비롯한 과일을 축성하고 나누는 풍습이 있다.
방문 팁
체르니솁스카야(Chernyshevskaya)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비교적 붐비지 않는 조용한 골목에 위치해 있어 차분한 관람이 가능하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예배가 이루어진 몇 안 되는 정교회 성당 중 하나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느낄 수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예배 중에는 신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특히 예배 장면 자체를 촬영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성당 내부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관람 시 주의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초석 건립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의 명으로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의 옛 병영 자리에 미하일 젬초프의 설계로 기공되었다.
최초 완공 및 축성
미하일 젬초프 사후 피에트로 안토니오 트레지니가 이어받아 바로크 양식으로 완공했으며, 대주교 실베스테르가 축성했다. 제단 닫집과 성상대는 건축가 프란체스코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의 도면을 따랐다.
명예 칭호 수여
파벨 1세 황제 치하에서 '모든 근위대의 성당(собор всей гвардии)'이라는 명예 칭호를 받았다.
화재 발생
대화재로 인해 성당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외벽과 주요 성물들은 구해낼 수 있었다.
엠파이어 양식으로 재건
건축가 바실리 스타소프에 의해 현재의 엠파이어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재건된 성당 축성
수석 주교 세라핌에 의해 재건된 성당이 축성되었다. 중앙 제대는 주님 변모 축일, 우측(남쪽) 제대는 라도네즈의 성 세르기우스, 좌측(북쪽) 제대는 순교자 교황 클레멘스 1세와 알렉산드리아의 표트르를 기리기 위해 봉헌되었다.
대포 울타리 건설
바실리 스타소프의 설계로 러시아-튀르크 전쟁(1828-1829) 승리를 기념하여 노획한 오스만 제국 대포로 만들어진 독특한 울타리가 성당 주위에 세워졌다.
교구 자선회 설립
구빈원, 아동 보호소, 식당, 군인 자녀 학교, 무료 숙소 등을 운영하는 교구 자선회가 시작되었다.
지속적인 운영
10월 혁명 이후에도 대부분의 러시아 교회와 달리 예배 장소로 계속 운영되었다. 1918년 교구 교회로 전환되었고, 보관 중이던 군기, 병기, 전쟁 트로피 등은 포병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방공호 운영
제2차 세계 대전 중 레닌그라드 포위 공격 당시 성당 지하실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공호가 마련되어 부상자들에게 응급 처치를 제공했다.
복원 작업
전쟁 후 성당의 외관과 내부가 복원되었다.
여담
성당 울타리를 이루는 대포 포신은 다시는 전투에 사용되지 않음을 상징하기 위해 그 끝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일부 대포에는 '알라의 분노(The Wrath of Allah)', '신성한 초승달(Sacred Crescent)', '천둥을 내뿜는 자(Spewing Thunder)', '오직 죽음만을 주리라(I Give Only Death)'와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닌그라드 포위 공격 당시 성당 지하에는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공호가 마련되어 부상자들을 위한 응급 처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성당은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예배가 이루어진 몇 안 되는 정교회 성당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프레오브라젠스카야 광장과 인근 라디쉬체프 거리(구 교회 거리)는 이 성당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1871년부터 교구 자선회가 활동하며 구빈원, 아동 보호소, 군인 자녀들을 위한 학교 등을 운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거나 자주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현지인들 사이에 회자되곤 한다.
대중매체에서
가르데마리ны, вперёд! (Gardes-Marines, Ahead!)
소련 시대 인기 TV 시리즈의 일부 장면이 이 성당에서 촬영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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