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거나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감상하고 싶은 역사/문화 애호가 및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명상을 원하는 개인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루마니아 정교회의 건축과 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될 수 있다.
방문객들은 16세기에 지어진 브란코베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잘 보존된 내부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실제 예배가 이루어지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종교적인 성가를 배경으로 더욱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교회 주변에서 구걸하는 이들로 인해 다소 불편함을 느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방문 시 참고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도보
- 부쿠레슈티 올드타운(Centrul Vechi)의 립스카니(Lipscani) 지구 중심부에 위치하여, 올드타운 내 다른 명소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변에 마누크 여인숙(Hanul lui Manuc) 등 유명 랜드마크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대중교통
- 가장 가까운 주요 지하철역은 우니리 광장(Piața Unirii) 역으로, M1, M2, M3 노선이 지난다. 역에서 도보로 약 10-15분 거리에 있다.
주요 특징
16세기에 지어진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여러 차례의 복원을 거치며 브란코베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복잡한 벽돌 패턴과 정교한 석조 포털, 내부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많은 현지인이 기도와 예배를 위해 찾는 살아있는 종교 공간이다. 방문객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묵상하거나 종교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실제 예배에 참여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통해 루마니아 정교회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과거 왈라키아 공국의 궁정(Curtea Veche) 내에 있던 유일한 교회로, 왈라키아 대공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 미르체아 목자공과 그의 아들 페트라슈쿠 선량공 등 여러 통치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교회 정면 및 종탑
브란코베네스크 양식의 독특한 외관과 종탑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각도에서 촬영한다. 특히 16세기의 복잡한 벽돌 패턴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교회 내부 프레스코화와 이코노스타시스
화려하고 정교한 내부 프레스코화, 특히 제단 부분의 이코노스타시스(성상벽)를 중심으로 촬영한다. 빛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입구의 석조 포털
1715년 슈테판 칸타쿠지노에 의해 교체된 정교한 조각의 석조 입구 포털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다.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을 받은 조각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무료이므로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정교회와 달리 내부 사진 촬영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는 언급이 있다. 단, 예배 중이거나 기도하는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회 지하에 성상, 십자가, 종교 서적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이 있으니 관심 있다면 들러볼 만하다.
교회 마당이나 주변에서 고양이들을 종종 볼 수 있어, 고양이를 좋아하는 방문객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일요일에는 성찬 예배(미사)에 참석할 수 있으며, 이때 방문하면 더욱 생생한 종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방문 시에는 경건한 분위기를 존중하여 조용히 관람하고, 신자들의 기도나 예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교회 건립
왈라키아의 공작 미르체아 목자공(Mircea Ciobanul)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의 아들 페트라슈쿠 선량공(Pătrașcu cel Bun)이 장식과 그림 작업을 진행했다.
최초 기록
건물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서 기록이 등장한다.
종탑 건설
그리고레 1세 기카(Grigore I Ghica)와 게오르게 두카스(George Ducas) 치하에 종탑이 세워졌다.
종탑 소실 및 재건
낙뢰로 인해 종탑이 불탔으나, 콘스탄틴 브란코베아누(Constantin Brâncoveanu)에 의해 시계가 추가되어 재건되었다.
슈테판 칸타쿠지노의 개보수
슈테판 칸타쿠지노(Ștefan Cantacuzino)가 입구 포털을 현재의 넓은 형태로 교체하고, 내부를 다시 칠했으며 외관을 새롭게 단장했다. 이때 신랑(nave)과 나르텍스(narthex) 사이의 벽을 허물고 세 개의 아치와 돌기둥으로 대체했다.
예배당 증축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토스(Constantine Mavrocordatos)가 나르텍스의 남북으로 두 개의 예배당을 추가하여 건물을 확장했다.
부쿠레슈티 대화재 및 복구
부쿠레슈티 대화재로 교회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복구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건축가에 의해 외관에 고딕 리바이벌 양식이 일부 도입되었고, 콘스탄틴 레카(Constantin Lecca)가 불에 탄 내부 프레스코화를 다시 그렸다. 인근 감옥 예배당이 파괴되면서 그곳의 수호성인이었던 성 안토니우스가 이 교회의 두 번째 수호성인이 되었다.
1차 복원 시도
돔 재건 및 지붕 교체 등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중단되었다.
대대적인 복원
교회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두꺼운 회반죽 층을 제거하여 16세기 외관의 복잡한 벽돌 패턴을 드러냈다.
고고학적 발굴
교회 부지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었다.
지진 피해 복구
대지진 이후 교회가 보강되고 그림이 복원되었으며, 정원이 추가되었다.
재봉헌
복원 및 보수 작업 후 교회가 다시 봉헌되었다.
여담
왈라키아 공국의 많은 왕자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거나 즉위식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부쿠레슈티 대화재(1847년) 당시 인근 감옥의 부속 예배당이 파괴되면서, 그곳에 모셔져 있던 성 안토니우스의 성화가 기적적으로 온전하게 발견되어 이 교회로 옮겨졌고, 그 후 성 안토니우스가 교회의 두 번째 수호성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회의 원래 이름은 '옛 궁정 교회(Biserica Curtea Veche)'로, 과거 왈라키아 공국의 궁정(Curtea Veche) 터에 세워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성 안토니우스의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교회 건축에 사용된 벽돌 패턴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여 브란코베네스크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미르체아 목자공과 그의 부인 도암나 키아즈나, 그들의 아들 미르체아, 그리고 훨씬 이전에 이곳에 교회를 세웠던 미르체아 1세(미르체아 첼 버트른)를 묘사한 기증자 초상화가 있었다고 한다.
%2Fbanner_1748615914107.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