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포르투갈 초기 왕들의 무덤과 역사적인 건축물, 특히 마누엘 양식과 아줄레주 타일에 관심이 많은 역사 애호가 및 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초대 국왕들의 정교한 무덤을 직접 관람하고, 교회 내부의 푸른 아줄레주 타일과 마누엘 양식의 '고요의 회랑'을 거닐며 역사적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석, 종교 유물 관찰도 가능하다.
일부 방문객들은 수도원 건물, 특히 파사드와 회랑의 부드러운 석조물이 풍화로 인해 손상되어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역사적 가치에 비해 유지 보수가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코임브라 B (Coimbra-B) 역 하차 후 코임브라 A (Coimbra-A) 역으로 환승하는 지역 열차 이용.
- 코임브라 A 역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며, 수도원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 버스 이용
- 코임브라 버스 터미널(Terminal Rodoviário de Coimbra)은 시내 중심부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에 있다.
-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수도원 근처까지 이동할 수 있다.
🚗 자가용 이용
- A1 고속도로 등 주요 도로를 통해 코임브라에 접근할 수 있다.
- 수도원 주변 도심은 중세 구조로 인해 운전이 어렵고 주차 공간 찾기가 힘들 수 있으므로, 대중교통 이용이나 시내 외곽 주차 후 도보 이동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포르투갈의 첫 두 왕인 아폰수 엔히크스(Afonso Henriques)와 그의 아들 산슈 1세(Sancho I)의 정교한 석관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무덤은 16세기에 니콜라우 샤트렌느(Nicolau Chanterene)의 작품으로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안치되었다.
운영시간: 운영시간 내 관람 가능
교회 내부 벽면은 포르투갈의 전통 장식 예술인 아름다운 푸른색 아줄레주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타일들은 성경 이야기나 역사적 장면들을 묘사하며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운영시간: 운영시간 내 관람 가능
마르쿠 피레스(Marco Pires)가 완성한 '고요의 회랑'은 정교한 마누엘 양식의 석조 장식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아치와 기둥, 천장의 섬세한 조각들을 감상하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운영시간: 운영시간 내 관람 가능
교회 내부에는 18세기에 제작된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으며,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또한, 정교한 목조 조각으로 장식된 성가대석(High Choir)도 주목할 만한 볼거리이다.
운영시간: 운영시간 내 관람 가능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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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양식 정문
수도원의 가장 상징적인 부분으로, 정교하고 화려한 마누엘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룬 조각들을 배경으로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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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회랑 (Claustro do Silêncio)
아름다운 아치와 기둥, 섬세한 석조 장식이 어우러진 회랑에서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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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부 아줄레주 타일과 왕들의 무덤
푸른색 아줄레주 타일로 뒤덮인 벽면이나 초대 국왕들의 장엄한 무덤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담을 수 있다. 내부 조명을 고려하여 촬영하는 것이 좋다.
방문 팁
교회 본당 입장은 무료일 수 있으나, 포르투갈 초대 국왕들의 무덤, 아름다운 회랑, 성물 안치소 등 수도원의 핵심적인 부분을 관람하려면 약 3~4유로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많은 방문객들이 이 유료 관람을 추천한다.
입장권 구매 시 현금만 가능할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매표소 직원(특히 '마리아'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됨)이 매우 친절하며, 수도원의 역사와 관람 포인트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후기가 많다.
수도원 내부의 각 전시 공간에는 QR 코드가 비치되어 있어, 스캔하면 다양한 언어(영어 포함)로 작품 및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성 테오토니오(São Teotónio)의 유골함 등 중요한 유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역사적 배경
수도원 설립
코임브라 성벽 바깥에 성 테오토니오(São Teotónio)가 성십자가 규율참사회 공동체를 설립하고 초대 원장을 맡았다. 포르투갈 왕정 초기에 가장 중요한 수도원이 되었다.
초기 건축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수도원과 교회가 건설되었다. 당시 건물은 단일 신도석(네이브)과 파사드에 높은 탑이 있는 구조였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왕실의 지원과 발전
교황의 특권과 왕실의 지원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했다. 방대한 도서관을 갖춘 학교는 중세 지식인과 권력 엘리트들의 교류 장소였다.
마누엘 양식으로의 대대적 개축
마누엘 1세 국왕의 명으로 수도원 전체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디오구 드 보이타카(Diogo de Boitaca)가 마누엘 양식의 교회와 참사회 회의실 설계를 담당했으며, 마르쿠 피레스(Marco Pires)가 교회, 성 미겔 예배당, 고요의 회랑 등을 완성했다.
정문 건설
니콜라우 샤트렌느(Nicolau Chanterene)의 감독 하에 수도원의 상징적인 정문이 건설되었다. 마누엘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요소가 조화를 이룬다.
왕들의 무덤 이전
초대 국왕 아폰수 엔히크스와 그의 후계자 산슈 1세의 무덤이 니콜라우 샤트렌느의 조각 작품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주 제단으로 옮겨졌다.
성구실 건축
현재의 성구실(Sacristy)이 건축되었으며, 이곳에는 주목할 만한 16세기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다.
여담
산타크루즈 수도원은 포르투갈의 국가 판테온(National Pantheon)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포르투갈의 첫 두 왕인 아폰수 엔히크스와 산슈 1세가 이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로 더 널리 알려진 리스본의 성 안토니우(Saint Anthony of Lisbon)는 한때 이 수도원의 일원이었으며, 사제 서품 후 수도원의 환대 담당자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모로코에서 순교한 프란치스코회 초기 순교자들의 유해를 맞이한 것이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수도원의 학교와 도서관은 매우 높은 명성을 누렸으며, 지식인과 권력 엘리트들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였다. 아폰수 엔히크스 국왕이 왕권을 강화하는 데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필사실)이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수도원 건물의 일부, 특히 외관과 회랑을 구성하는 부드러운 석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화되어 모래처럼 부스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인 기념물이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코임브라 대학교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 산타크루즈 수도원이 대학교의 첫 번째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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