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바르샤바의 역사,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과 재건의 역사를 느끼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바로크 건축물과 조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개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신시가지 광장에 위치한 성당의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외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전쟁의 상흔을 딛고 복원된 소박한 내부에서 잠시 기도를 드리거나 마리아 카롤리나 소비에스카 데 부용의 무덤 기념비를 통해 과거를 되새겨볼 수 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외관에 비해 내부는 전쟁 후 복원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재건되어 장식이나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도보
- 바르샤바 신시가지 광장(Rynek Nowego Miasta)에 위치하여 구시가지 등 주변 관광지에서 도보로 이동이 용이하다.
🚌 대중교통
- 바르샤바 시내버스 등을 이용하여 신시가지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접근할 수 있다.
주요 특징
틸만 반 하메렌이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외관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복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신시가지 광장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복원된 내부는 비교적 소박하지만, 로렌초 마티엘리가 조각한 마리아 카롤리나 소비에스카 데 부용의 무덤 기념비 일부가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묵상하기 좋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신시가지 광장에서 바라본 모습)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전체적인 외관과 돔을 신시가지 광장과 함께 담을 수 있다. 특히 흰색 외벽이 주변 건물들과 대조를 이루며 아름답다.
축제 및 이벤트
오르간 연주회
매일 (일요일 및 공휴일 제외) 오후 12시
성당 내부에서 열리는 오르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방문 팁
매일(일요일 및 공휴일 제외) 오후 12시에 열리는 오르간 연주회를 경험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8월 31일, 독일군에 의해 34명의 수녀와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안내 책자가 비치되어 있다.
성당 내부는 전쟁 후 복원되어 외부의 화려함에 비해 소박한 편이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코토프스키 궁전, 성당으로 전환 시작
원래 비쇼그루드 지역 관리인 아담 코토프스키의 궁전이었던 건물을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왕비 마리 카지미르가 구입하여, 폴란드로 초청한 베네딕토회 수녀들을 위한 교회와 수도원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바로크 양식 성당 완공
네덜란드 태생의 건축가 틸만 반 하메렌(폴란드명 틸만 가메르스키)의 설계로 팔라디오 양식을 따른 바로크 양식의 성당과 수녀원이 완공되었다.
제단 장식
빌뉴스 보이보드였던 미하우 카지미에시 라지비우의 후원으로 성 카지미에시와 성모 마리아를 위한 트롱프뢰유 기법의 제단이 만들어졌다.
로코코 양식 오르간 설치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오르간이 설치되어 성당의 음악적 장엄함을 더했다.
마리아 카롤리나 소비에스카 데 부용의 무덤 기념비 설치
얀 3세의 손녀인 마리아 카롤리나 소비에스카 데 부용을 기리는 무덤 기념비가 로렌초 마티엘리에 의해 흰색과 검은색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바르샤바 봉기 중 파괴 및 학살
제2차 세계대전 중 바르샤바 봉기 당시 성당은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부상당한 봉기군과 민간인들을 수용했다. 이로 인해 독일군의 집중 폭격 대상이 되어 8월 31일 하루에만 사제 4명, 수녀 35명, 그리고 성당 지하실에 피신해 있던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성당과 수녀원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당 재건
전쟁으로 파괴된 성당이 재건되었으나, 원래의 코토프스키 궁전 부분은 복원되지 않았다. 재건된 성당의 내부는 이전의 화려함보다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담
이 성당은 원래 17세기 아담 코토프스키라는 인물의 개인 궁전이었으나, 1688년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왕비 마리 카지미르가 구입하여 베네딕토회 수녀들을 위한 교회와 수도원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바르샤바 봉기 당시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때문에 독일군의 집중 폭격 대상이 되어 성당과 수녀원 건물, 그리고 이곳에 피신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수녀들은 부상당한 봉기군을 돕기 위해 수도원의 엄격한 규칙을 잠시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후 성당은 재건되었지만, 원래의 코토프스키 궁전은 복원되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