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웅장한 건축미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 게토의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장소로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거나 종교 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집전했던 곳으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순례의 의미를 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방문객들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 내부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과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성당 앞에 세워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또한, 전쟁 중 유대인 구호에 힘썼던 마르첼리 고들레프스키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경험도 가능하다.
최근 몇 년간 내부 및 외부 보수 공사가 진행된 바 있어, 방문 시점에 따라 일부 관람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도보
- 바르샤바 중앙역(Warszawa Centralna)이나 문화과학궁전에서 그쥐보프스키 광장(Plac Grzybowski) 방면으로 도보 이동 가능하다.
🚇 대중교통
- 지하철: M1, M2 노선 Centrum 역 또는 Świętokrzyska 역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 버스 및 트램: 그쥐보프스키 광장(Plac Grzybowski) 또는 인근 정류장을 경유하는 다수의 노선 이용 가능.
바르샤바 대중교통 티켓은 시간제 또는 기간제로 운영된다.
주요 특징
바르샤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파도바 산타 주스티나 수도원을 모델로 하여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높은 돔과 세 개의 신랑, 화려한 주 제단이 인상적이며, 17세기 실레지아 바로크 화가 미하엘 빌만(M. L. Willman)의 그림과 빅토르 브로츠키(Wiktor Brodzki)의 대리석 예수상, 정교한 철제 설교단 등 다양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미사 시간 외 상시 개방
성당 정면 계단에는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이탈리아 조각가 조르조 갈레티에고(Giorgio Gallettiego)가 기증한 것으로, 1987년 교황이 이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 것을 기념한다.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의 업적을 기린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 게토 내에 위치했던 세 개의 기독교 교회 중 하나로, 유대인 혈통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예배 장소였다. 당시 주임 신부였던 마르첼리 고들레프스키(Marceli Godlewski)는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유대인들을 도왔으며, 이 공로로 2009년 사후에 '야드 바셈 열방의 의인'으로 추서되었다. 성당은 바르샤바 봉기 중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원되어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웅장한 성당의 전체 모습과 함께 교황 동상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성당 내부 중앙 제단과 돔
높은 천장과 화려한 제단, 그리고 아름다운 돔의 모습을 내부에서 촬영할 수 있다. 광각 렌즈를 활용하면 더욱 웅장한 느낌을 담을 수 있다.
그쥐보프스키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 야경
해가 진 후 조명이 켜진 성당의 모습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광장 건너편에서 성당 전체를 조망하며 촬영하기 좋다.
축제 및 이벤트
크리스마스 시즌 예수 탄생 구유 전시
매년 12월 말 ~ 1월 초 (대림절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성당 내부에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예수 탄생 장면(Nativity scene, 폴란드어: Szopka)이 전시된다. 많은 신자들과 방문객들이 이를 보기 위해 성당을 찾는다.
방문 팁
성당 내부 일부 그림을 자세히 보려면 별도의 조명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는 유료로 작동되나 간혹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기 미사는 주로 폴란드어로 진행되지만, 주말에는 지하 성당에서 이탈리아어 미사가 봉헌되기도 한다. 영어 미사 여부는 사전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성당 내부에 아름다운 예수 탄생 장면(구유)이 전시되어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당 지하 공간에서는 폴란드 고전 연극 극장이 운영되기도 하므로, 문화 체험에 관심 있다면 관련 일정을 확인해 볼 만하다.
성당 정면 광장 건너편에는 작은 공원이 있어, 방문 전후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휠체어 사용자의 경우, 성당의 규모와 구조상 일부 구역 접근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아래층 성당으로 이동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립 계획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 왕 통치 시절, 바르샤바 인근 그쥐부프(Grzybów) 마을에 교회 설립 계획이 처음 등장했다.
부지 및 자금 확보
가브리엘라 자비에워 백작부인이 그쥐부프 사유지를 선교사제회에 기증하고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 본격적인 건립 준비가 시작되었다.
건축 시작
엔리코 마르코니(Enrico Marconi)의 설계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설계는 파도바의 산타 주스티나 수도원을 모델로 한 르네상스 양식이었다.
성당 봉헌
10월 31일, 빈첸티 포피엘 대주교에 의해 성당이 봉헌되었다. 당시에는 아직 종탑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종탑 완공
두 개의 종탑이 완공되면서 성당 건축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및 손상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방어전 중 지붕이 약간 손상되었다.
바르샤바 게토 내 위치
독일 점령 하에 바르샤바 게토가 설정되면서, 성당은 게토 내에 위치한 3개의 기독교 교회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주임 신부 마르첼리 고들레프스키는 유대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바르샤바 봉기 중 대파
바르샤바 봉기 당시 독일군의 공습과 포격으로 지붕 일부가 붕괴되고 동쪽 탑이 파괴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많은 예술품과 비문도 소실되었다.
종전 및 복구 시작
전쟁 후 가을에 잔해 안정화 작업이 이루어졌고, 지그문트 카진스키 몬시뇰의 주도로 복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공산 정권에 의해 투옥되어 살해당했다.
공산 정권 하의 어려움
복구 작업은 계속되었으나, 공산주의 정권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성당 주변에 대규모 공동 주택 단지를 건설하여 성당의 경관을 가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6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3차 폴란드 사도 방문 중 이 성당에서 제2차 전국 성체 대회 개막 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는 마더 테레사도 참석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제막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즉위 15주년을 기념하여 이탈리아 조각가 조르조 갈레티에고가 기증한 동상이 성당 앞에 세워졌다.
마르첼리 고들레프스키 신부 '열방의 의인' 추서
전쟁 중 유대인을 도운 공로로 마르첼리 고들레프스키 신부가 이스라엘 야드 바셈으로부터 사후 '열방의 의인'으로 추서되었다.
'생명의 집' 칭호 수여
국제 라울 발렌베리 재단으로부터 폴란드 최초로 '생명의 집(House of Life)' 칭호를 받았다. 이는 전쟁 중 유대인 구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여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 게토 안에 있던 3개의 교회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이 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마르첼리 고들레프스키는 전쟁 전에는 유대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으나, 게토의 참상을 목격한 후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도왔다고 알려져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사도 방문 중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했을 때, 수만 명의 신자들과 함께 마더 테레사도 참석했다고 한다.
성당 앞 요한 바오로 2세 동상은 이탈리아 조각가의 기증품으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도치오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지에도 똑같은 쌍둥이 기념물이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시절,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성당 주변에 공동 주택 단지가 건설되어 한때 성당의 모습이 가려지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성당은 이탈리아 파도바의 산타 주스티나 수도원을 모델로 하여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교회로 꼽힌다.
성찬을 모시는 감실이 중앙 제단이 아닌 측면 경당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는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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