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폴란드의 군사 역사와 국가적 희생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나,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들은 폴란드 군의 중요한 종교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함께, 수많은 전쟁 기념물과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국가의 과거를 되새기고자 한다.
방문객들은 카틴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예배당을 비롯해 다양한 전투와 군부대를 기리는 기념판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지하 박물관에서는 폴란드 군대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 및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도 감상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위치
- 바르샤바 구시가지(Old Town)와 가까운 드우가(Długa) 거리 13/15번지에 위치한다.
-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Heroes of the Warsaw Uprising Monument) 맞은편, 크라신스키 광장(Krasiński Square)과 인접해 있다.
주변 관광지와 함께 도보로 둘러보기 용이하다.
주요 특징
성당 내에는 카틴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예배당이 마련되어 있으며, 약 15,000개의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다. 또한 폴란드 역사의 주요 전투와 군부대를 기념하는 수많은 석판과 상징물들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성당 지하에는 폴란드 군대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 군사 훈장, 기념품 등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폴란드 군의 발자취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성당의 외관과 내부는 그 자체로 볼거리다. 특히 폴란드의 주요 전투 장면이 새겨진 청동 출입문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있는 주 제단 등이 인상적이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파사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성당의 웅장한 정면과 두 개의 낮은 탑은 바르샤바의 역사적 건축미를 담기에 좋은 지점이다.
카틴 예배당 및 전쟁 기념물
카틴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예배당 내부와 폴란드 군인들을 추모하는 다양한 기념판들은 역사의 아픔과 무게를 전달하는 의미 있는 장면을 제공한다.
청동 출입문
폴란드의 주요 전투 장면들이 새겨진 정교한 청동 출입문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며, 폴란드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상징적으로 담을 수 있다.
방문 팁
성당 지하에 위치한 군사 역사 박물관은 목요일에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다.
성당 내부에 헌금용 카드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어 현금 없이도 기부가 가능하다.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므로 함께 방문하여 폴란드 현대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피아리스트 수도회 교회 건축 시작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 국왕의 후원으로 이전 스웨덴 침공(대홍수) 시 파괴된 성 프리모와 펠리치아노 목조 교회 자리에 새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가는 콘스탄티노 텐칼라로 추정된다.
교회 봉헌
오랜 건축 기간 끝에 포즈난 주교 미코와이 시비엥치츠키에 의해 봉헌되었다. 승리의 성모 마리아를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러시아 정교회로 변경
11월 봉기 실패 후 러시아 제국 당국에 의해 몰수되어 성 삼위일체 러시아 정교회로 개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양파형 돔이 추가되는 등 외형과 내부가 크게 변경되었다.
폴란드군 야전 성당으로 지정
폴란드 독립 후 가톨릭 교회로 환원되었고, 오스카르 소스노프스키의 설계로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복원(1923-1927)되어 폴란드 육군 야전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바르샤바 봉기 중 파괴
바르샤바 봉기 당시 독일 공군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었으며, 임시 야전 병원으로도 사용되다 8월 20일 공습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재건
레온 마렉 수진이 이끄는 건축가 팀에 의해 이전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야전 성당 지위 회복
폴란드의 주권 회복 이후 폴란드군 군종 교구의 주교좌 성당 지위를 공식적으로 회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담
원래 이 자리에는 성 프리모와 펠리치아노를 기리는 목조 교회가 있었으나, 17세기 스웨덴과의 전쟁(대홍수)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교회 건축 당시 이탈리아 파엔차에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그림을 들여왔으며, 교황 우르바노 8세가 기증한 두 가톨릭 성인의 유물도 로마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러시아 정교회로 사용될 당시, 양파 모양의 돔이 탑에 추가되었고 내부에는 정교회 프레스코화와 대형 이코노스타시스가 설치되었다.
바르샤바 봉기 중에는 성당의 지하실과 지하 묘소가 임시 야전 병원으로 활용되었으며, 보존된 서쪽 탑은 관측소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성당을 재건할 때, 1944년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일부 그림들은 전후 실레지아에서 가져온 미하엘 빌만(Michael Willmann)의 작품으로 대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르샤바 봉기 당시 폴란드 지하 저항군(AK) 지휘관들이 유일하게 조직한 군사 퍼레이드가 1944년 8월 6일 이 교회 앞에서 라친스키 궁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현재 바르샤바에 있는 세 개의 대성당 중 하나로 그 위상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