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비엘코폴스카 지역의 역사와 그곳에 기여한 인물들의 삶에 대해 알고 싶거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성찰을 원하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독특하고 오래된 묘비와 조각들을 직접 살펴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되새길 수 있고, 잘 가꾸어진 공원과 같은 묘역을 따라 걸으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인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일부 오래된 묘비는 관리가 다소 미흡하거나 글씨를 판독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도심에 위치한 특성상 외부 소음이 조용한 분위기를 간혹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은 방문 시 고려할 부분이다.
접근 방법
🗺️ 지리적 위치
- 포즈난 시내 중심부에서 북쪽에 위치한 성 보이치에흐 언덕(Wzgórze św. Wojciecha)에 자리 잡고 있다.
성 요셉 성당 및 가르멜 수도원과 인접해 있다.
주요 특징
비엘코폴스카 지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수많은 공로자들의 묘비를 직접 볼 수 있다. 각 묘비에 새겨진 이름과 생애를 통해 포즈난과 비엘코폴스카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묘지 곳곳에는 19세기 예술적 가치가 높은 조각상과 묘비 장식들이 남아있어 마치 야외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특히 아니엘라 뎀빈스카의 묘비나 바로크 양식의 성모 마리아상은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오래된 나무와 잘 관리된 녹지 공간은 이곳을 단순한 묘지가 아닌 도심 속 평화로운 공원처럼 느끼게 한다. 방문객들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거나, 조용히 산책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아니엘라 뎀빈스카의 묘비 (Nagrobek Anieli z Liszkowskich Dembińskiej)
1889년 브와디스와프 마르친코프스키가 조각한 예술적 가치가 높은 묘비로, 섬세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바로크 양식의 성모 마리아상 (Barokowa figura Matki Boskiej)
1771년에 제작되어 1892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조각상이다.
오래된 나무와 역사적인 묘비가 어우러진 풍경
고목과 이끼 낀 오래된 묘비들이 자아내는 고즈넉하고 역사적인 분위기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묘지 곳곳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산책 중 잠시 앉아 사색하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일부 오래된 묘비는 글씨가 마모되어 읽기 어려울 수 있다.
입구에서 먼 안쪽 구역에 더 오래된 묘비들이 다수 위치한다.
콜레라 희생자 매장 구역은 별도의 표시가 없을 수 있으나, 언덕 아래 넓은 잔디밭 형태로 남아있음을 참고한다.
역사적 배경
묘지 이전 결정
프러시아 정부가 기존 파르나 교구 묘지(모든 성인 교회 인근)를 폐쇄하고 새로운 묘지 부지를 물색하도록 결정했다.
새 묘지 개장
성 보이치에흐 언덕에 새로운 본당 묘지가 공식적으로 개장했다. 도미니코 수도원으로부터 부지를 확보했으며, 파르나 교구의 관리인 스타니스와프 콜라노프스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최고(最古) 묘비 기록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묘비는 1813년에 사망한 모니카 스차니에츠키흐 비소고타-자크셰프스카의 것이다.
콜레라 희생자 매장
여러 차례 발생한 콜레라 전염병 희생자들을 위한 별도의 매장 구역(콜레라 묘지)이 운영되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야간에 매장하고 석회를 사용했다.
죽음의 현관 설립
에드바르트 라친스키 백작의 기증으로 생매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사자 안치소인 '죽음의 현관(Przysionek śmierci)'이 세워졌으나, 이용률 저조로 1852년에 폐쇄되었다.
정규 매장 중단
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정규 매장이 중단되었고, '스타로파르니'(starofarnym, 구 본당 묘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공로자 묘지 지정
제2차 세계대전 후, 포즈난과 비엘코폴스카 지역에 공헌한 인물들을 위한 '비엘코폴스카 공로자 묘지'로 공식 지정되었다.
국가 기념물 등록
7월 10일, 폴란드 국가 기념물(A-181)로 등록되어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본격적인 복원 및 관리 강화
지속적인 훼손 문제에 대응하여 24시간 감시 체제가 도입되고 조명이 설치되는 등 본격적인 묘지 복원 및 관리 강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담
묘지 내 언덕에는 이 묘지의 실질적인 설립자로 여겨지는 스타니스와프 콜라노프스키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라임나무와 밤나무들이 있다.
묘지 한편의 평평한 잔디밭은 19세기 여러 차례 발생했던 콜레라 유행 당시 희생자들을 집단 매장한 곳이다. 당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야간에 조용히 매장하고 석회를 뿌렸으며, 이후 그 자리에는 새로운 묘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묘지에는 1771년 루드비크 로슈코프스키가 기증하여 원래 시로트카의 레포르마치 수도원 앞에 세워졌던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데, 1892년에 이곳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848년, 에드바르트 라친스키 백작의 유언에 따라 생매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음의 현관(Przysionek śmierci)'이라는 일종의 가사자 안치소가 설치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1852년에 폐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