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크라쿠프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되새기며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추모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1만 여 기의 묘석 사이를 거닐며 과거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고, 홀로코스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며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수 있다. 훼손된 묘비로 만들어진 벽은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부 구역의 묘비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거나 안내 표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방문 시 이러한 점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도보
- 카지미에시(Kazimierz) 유대인 지구 중심부에 위치하여, 해당 지역 관광 시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대중교통 (트램/버스)
- 크라쿠프 시내 여러 곳에서 카지미에시 지구로 향하는 트램 및 버스 노선이 운행된다.
- 하차 후 묘지까지는 약간의 도보 이동이 필요할 수 있다.
정확한 노선 및 가장 가까운 정류장은 현지 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1800년부터 시작된 묘지에는 다양한 시대와 양식의 묘비 1만여 기가 남아있어, 크라쿠프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오래된 묘석과 비교적 최근의 묘석이 공존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묘비 조각들을 모아 만든 기념벽과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는 전쟁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수많은 랍비, 학자, 예술가, 공동체 지도자 등 크라쿠프 유대인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들의 묘비를 통해 과거 유대인 사회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묘비가 늘어선 길목 (Alleyway between tombs)
오래된 묘비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고즈넉한 길은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홀로코스트 기념벽 (Tombstone memorial wall)
전쟁 중 파괴된 수많은 묘비 조각들로 이루어진 벽은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역사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03년 건립된 장례식장 건물 (Mortuary building)
잘 보존된 붉은 벽돌의 장례식장 건물은 묘지의 역사적 건축미를 더하며, 독특한 배경이 되어준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남성은 입구에서 키파(유대인 남성용 모자)를 착용하거나 다른 모자로 머리를 가려야 하며, 여성은 어깨를 가리는 등 단정한 복장을 하는 것이 좋다.
묘지 내부는 상당히 넓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는 것이 좋으며, 일부 오래된 길은 걷기에 불편할 수 있으니 편한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사진 촬영 금지 표지판이 있다는 언급이 있으나, 많은 방문객이 사진을 찍는다는 후기도 있다. 방문 시 현장 규정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엄숙하고 사색적인 장소이므로, 방문 시에는 조용히 행동하고 다른 방문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
묘지 설립
크라쿠프 유대인 공동체(Qahal)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로부터 부지를 매입하여 신 유대인 묘지를 설립했다.
묘지 확장
수도회로부터 추가 부지를 매입하여 묘지 면적을 확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훼손
나치 독일 점령기 동안 묘지가 폐쇄되고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많은 묘비석이 건축 자재나 플라슈프 강제 수용소의 도로 포장재 등으로 약탈당했다.
복원 노력
전쟁 후, 야쿱 스텐디그(Jakub Stendig)를 비롯한 생존자들과 관계자들이 흩어진 묘비석을 수습하여 재설치하는 등 복원을 위해 노력했다.
부지 개보수
미국 유대인 공동 분배 위원회(Joint Distribution Committee)의 재정 지원으로 묘지 부지가 개보수되었다.
역사 기념물 등록
묘지와 1903년에 지어진 장례식장 건물이 크라쿠프의 역사 기념물로 공식 등록되었다.
여담
묘지 관리인이었던 피나 라드너(Pina Ladner)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플라슈프 강제 수용소로 보내져 총살당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악명 높은 나치 사령관 아몬 괴트(Amon Göth)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처형 비용까지 지불하도록 강요했으며, 그의 집 안뜰을 포장하는 데 이곳의 묘비석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묘지에서 가장 오래된 묘비는 1809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묘지 벽을 따라 걸으며 손가락으로 벽을 만져보며 역사의 아픔을 느껴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일부 리뷰에서는 기독교 묘지와는 다른 독특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