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중세 시대 교황청의 역사와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을 탐방하고, 교황 요한 21세의 석관 등 역사적 유물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건축에 관심 있는 개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성당 내부의 소박하지만 인상적인 천장과 프레스코 유적을 감상할 수 있으며, 통합 티켓을 이용하여 인접한 교황궁과 대성당 박물관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각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 과정에서 중세 양식을 우선시하면서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장식 대부분이 사라져, 내부가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시
- 로마 테르미니(Termini), 티부르티나(Tiburtina), 오스티엔세(Ostiense) 역에서 비테르보행 기차 탑승.
- 비테르보 포르타 로마나(Porta Romana) 역 또는 포르타 피오렌티나(Porta Fiorentina) 역에서 하차.
-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 2시간.
역에서 대성당까지는 도보 또는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자동차 이용 시
- 로마에서는 카시아 비스(Cassia bis) 도로를 이용하거나, A1 고속도로 이용 시 오르테(Orte) 출구로 나와 S204 도로를 따라 비테르보 방면으로 이동.
역사 지구 내부는 도로가 좁고 일방통행이 많으므로, 성벽 외곽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 버스 이용 시
- 로마 삭사 루브라(Saxa Rubra) 버스 터미널에서 코트랄(COTRAL) 버스 탑승.
- 비테르보 포르타 로마나(Porta Romana) 정류장 또는 리엘로(Riello) 버스 터미널에서 하차.
-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역사 지구 중심부는 도보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주요 특징
교황 요한 21세의 석관을 비롯하여, 한때 이곳에 안장되었던 교황 알렉산데르 4세의 이야기가 깃든 역사적 공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정교한 조각과 함께 당시의 역사적 중요성을 느껴볼 수 있다.
12세기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본 구조와 14세기에 추가된 고딕 양식 종탑 등 시대별 건축 양식의 특징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종탑의 독특한 색상 조합이 눈에 띈다.
대성당, 종탑, 교황궁 등 중세 건물로 둘러싸인 역사적인 광장의 중심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광장 자체의 역사적 의미도 깊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추천 포토 스팟
산 로렌초 광장에서 바라본 대성당 정면
대성당의 르네상스 양식 파사드와 고딕 양식의 종탑이 어우러진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대성당 내부 중앙 통로에서 본 제단과 천장
복원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실내와 기하학적 무늬의 코스마테스크 양식 바닥, 특징적인 목조 지붕 구조를 함께 촬영할 수 있다.
종탑 근접 촬영
흰색 트래버틴과 청록색 현무암이 번갈아 사용된 독특한 외관의 종탑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산 펠레그리노 인 피오레 (San Pellegrino in Fiore) 기간 중 광장 장식
매년 4월 말 - 5월 초
비테르보의 주요 봄 축제인 '산 펠레그리노 인 피오레' 기간 동안 대성당 앞 산 로렌초 광장을 비롯한 중세 지구가 다채로운 꽃과 식물로 화려하게 장식된다. 이 시기에 방문하면 아름다운 꽃 장식과 함께 대성당을 감상할 수 있다.
방문 팁
대성당, 교황궁, 대성당 박물관을 함께 방문할 수 있는 통합 티켓 구매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과 건축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니 활용하면 유익하다.
정오에 방문하면 대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성당 자체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나, 특별한 경당(사크리스티) 등 일부 구역은 추가 요금이 발생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성당 존재
전설에 따르면 에트루리아 시대 헤라클레스 신전 자리에, 늦어도 8세기에는 산 로렌초에게 봉헌된 초기 본당 교회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당으로 승격
교황 첼레스티노 3세에 의해 비테르보 교구가 설립되면서 기존의 산 로렌초 교회가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은 이 시기에 건축된 것이다.
교황청 소재지 및 전성기
로마를 떠난 교황청이 비테르보에 머무르면서 대성당과 인접한 교황궁이 교황좌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 시기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와 요한 21세가 이곳에 묻혔다.
종탑 건축
기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에 고딕 양식의 종탑이 추가되었다. 종탑 상부는 흰색 트래버틴과 청록색 현무암을 번갈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대규모 개축
감바라 추기경의 주도로 파사드, 지붕, 중앙 후진 등이 대대적으로 개축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내부 장식과 예술품 상당수가 교체되거나 소실되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4세의 무덤도 이때 철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 및 복원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대성당과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 전후 복원 과정에서 16세기 개축으로 변경되었던 부분들이 제거되고,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여담
대성당이 에트루리아 시대 헤라클레스 신전 자리에 세워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6세기 개축을 주도한 감바라 추기경의 가문 문장에 새우가 그려져 있어, 성당 내부에 바닷가재나 새우 같은 해산물 장식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이름 '감바라(Gambarra)'는 이탈리아어로 새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교황 알렉산데르 4세의 무덤은 16세기 개축 당시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괴되어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대성당 옆 교황궁에서 새로운 교황 선출이 지연되자 격분한 시민들이 추기경들을 가두고 지붕을 없애버린 일화에서 '콘클라베(cum claves, 열쇠로 잠근다는 의미)'라는 교황 선출 방식의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성당의 종탑은 비테르보 지역의 흰색 트래버틴과 청록색 현무암을 번갈아 사용하여 지어졌는데, 이는 오르비에토 대성당과 유사한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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