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정교한 프레스코화, 높은 천장, 고요한 분위기 등 웅장한 고딕 건축의 정수를 경험하고자 하는 예술 및 역사 애호가들이 주로 방문한다. 베로나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다양한 시대의 예술 작품과 종교적 유물을 통해 중세 베로나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방문객들은 피사넬로의 '성 제오르지오와 공주'와 같은 유명 프레스코화를 비롯해 알티키에로, 리베랄레 다 베로나 등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각각 독특한 장식을 지닌 여러 예배당을 둘러보거나, 성당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며 깊이 있는 관람을 할 수 있다.
입장료 부과 및 기도 목적 방문객에 대한 제한적 무료 개방 정책에 대해 일부 방문객들이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접근 방법
🚶 도보
- 베로나 역사 지구 중심부에 위치하여 아레나 디 베로나, 줄리엣의 집 등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 버스
- 베로나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Piazza Santa Anastasia' 정류장 또는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정확한 노선 및 시간표는 현지 대중교통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펠레그리니 예배당 외부 아치 위에 그려진 이 작품은 후기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섬세한 필치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며, 기사도 문학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성당 입구 첫 번째 기둥 옆에 위치한 두 개의 성수반은 **독특한 곱사등이 인물상(곱비)**이 받치고 있는 형태로 유명하다. 각각 1491년과 1591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방문객들의 시선을 끈다.
베로나에서 가장 큰 성당답게 웅장한 내부 공간을 자랑한다. 높은 십자형 궁륭 천장, 붉은색과 흰색 대리석 기둥, 그리고 화려한 프레스코와 조각으로 장식된 수많은 예배당들이 인상적이다. 각 예배당은 카발리, 펠레그리니, 프레고소 가문 등 베로나의 유력 가문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추천 포토 스팟
펠레그리니 예배당의 피사넬로 프레스코화 앞
후기 고딕의 걸작 '성 제오르지오와 공주'를 배경으로 예술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곱비(Gobbi)' 성수반 조각상 옆
성당의 독특한 상징물인 곱사등이 조각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중앙 신랑에서 바라본 제단과 천장
웅장한 고딕 양식의 높은 천장과 화려한 제단, 스테인드글라스를 한 프레임에 담아 성당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베로나의 4개 주요 성당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개별 입장료(각 4유로)보다 저렴한 **통합 입장권(8유로)**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입장 시 제공되는 QR 코드를 통해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으며, 한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를 지원한다.
운영 시간은 유동적이며, 특히 토요일에는 오후 3시 30분에 마감하는 등 일찍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베로나 카드 소지 시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이탈리아 성당 방문 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복장 규정(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옷)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일부 방문객은 민소매 착용 시 숄 등으로 가리도록 요청받은 경험이 있다.
역사적 배경
기존 교회 존재
현재 성당 부지에는 테오도리크 대왕 시절 성 아나스타시아에게 봉헌된 아리우스파 교회와 성 레미지우스에게 봉헌된 프랑크 시대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미니코 수도회 베로나 도착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이 베로나에 정착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부지 확보
베로나 주교 만프레도 로베르티가 도미니코 수도회에 새 성당과 수도원 건축을 위한 부지를 제공했다.
대성당 건축 시작
고딕 양식으로 현재의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델라 스칼라 가문, 특히 굴리엘모 다 카스텔바르코 등의 후원이 있었다.
건축 지연
스칼리제리 가문의 쇠퇴로 인해 건축 작업이 상당히 느려졌으나, 개인 기부로 명맥을 이어갔다.
지붕 공사 진행
베네치아 공화국 통치 하에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교황의 대사면 부여 등으로 공사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바닥 포장 시작
피에트로 다 포를레차가 성당 바닥 포장 작업을 감독하기 시작했다.
대성당 축성
베로나 주교이자 추기경인 조반니 미키엘에 의해 대성당이 공식적으로 축성되었다. 그러나 정면 파사드를 포함한 일부 작업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도미니코 수도회 철수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도미니코 수도회가 철수하고, 성당은 교구 사제들에게 넘겨져 본당이 되었다.
주요 복원 작업
1878-1881년, 1967-1970년대, 그리고 2010년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담
성당의 공식 명칭은 도미니코회 순교자인 '베로나의 성 베드로'에게 봉헌되었으나, 이전에 이곳에 있던 성 아나스타시아에게 봉헌된 아리우스파 고트 시대 교회와 프랑크 시대 교회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계속 '산타 아나스타시아'라고 불렀고, 이 이름이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대성당의 정면 파사드는 15세기에 석조로 완성될 계획이었으나, 자금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이는 베로나의 다른 대형 교회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성당 내부 입구 양쪽에 있는 두 개의 성수반은 '곱비(Gobbi)'라고 불리는 독특한 곱사등이 인물상이 받치고 있다. 왼쪽 조각상은 1491년 가브리엘레 칼리아리(화가 파올로 베로네세의 아버지)의 작품으로, 오른쪽 조각상은 1591년 파올로 오레피체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성당 바닥은 흰색, 붉은색, 검은색의 세 가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데, 이 색상들은 각각 도미니코 수도회의 복장(흰색과 검은색)과 성당이 헌정된 성 베드로 순교자(붉은색)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성당의 72m 높이 종탑은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460년에 설치된 최초의 5개 종은 여러 차례 다시 주조되었다. 현재의 종 세트는 1839년에 제작된 것이다.
성당 건축의 주요 후원자 중 한 명인 굴리엘모 다 카스텔바르코의 석관은 성당 외부 광장 옆 아치 위에 안치되어 있는데, 이는 후에 지어진 스칼리제리 가문의 묘역(Arche Scaligere)의 초기 모델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2Fbanner_1747548146013.jpg&w=3840&q=75)
/feature_0_1747679722991.jpg)
/feature_0_174780937112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