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화려하고 정교한 바로크 양식의 내부 장식과 풍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장소에 얽힌 오랜 역사와 깊은 종교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예술 애호가 및 역사·문화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조용하고 성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영적인 경험을 원하는 방문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다채로운 색상의 대리석과 금박으로 장식된 내부, 웅장한 제단, 섬세한 조각상과 천장 프레스코화를 포함한 예술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여러 개의 예배당을 둘러보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수 세기 동안 신자들이 봉헌한 감동적인 봉헌화(ex-votos)들을 관람하며 그들의 믿음과 이야기를 엿볼 수도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 토리노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다양한 버스 및 트램 노선으로 접근이 용이하다.
- 가장 가까운 정류장은 성당 이름 또는 인근 주요 도로명으로 검색하여 찾을 수 있다.
도보로도 주변 관광지와 연계하여 방문하기 좋다.
주요 특징
성당 내부는 눈부신 다색 대리석, 금박 장식, 솔로몬 양식 기둥, 정교한 조각상 및 프레스코화로 가득 차 있어 바로크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필리포 유바라가 설계한 중앙 제단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수세기에 걸쳐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하며 봉헌한 수많은 그림과 물건들이 전시된 공간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봉헌화들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기적에 대한 믿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성당은 고대 로마 성벽의 일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 바로크 양식의 돔, 신고전주의 양식의 현관 등 여러 시대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모습을 자아낸다. 각기 다른 시대의 특징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추천 포토 스팟
중앙 제단 앞
필리포 유바라가 설계한 웅장하고 화려한 중앙 제단과 그 주변의 정교한 장식들을 함께 담을 수 있다.
돔 아래 중앙 공간
아름다운 천장화와 함께 바로크 양식 돔의 웅장함과 빛이 쏟아지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봉헌화(Ex-votos) 전시 공간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봉헌화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위안의 성모 마리아 축일 행렬
매년 6월 20일
성모 성화상을 모시고 토리노 시내를 행진하는 전통적인 종교 행사이다. 많은 신자와 시민들이 참여하여 장관을 이룬다. 이는 1104년 시력을 잃었던 순례자가 성모 발현 후 성화를 찾아 시력을 회복했다는 기적을 기념하는 날이다.
방문 팁
성당 맞은편에는 토리노의 전통 음료 '비체린(Bicerin)'을 맛볼 수 있는 **유서 깊은 카페 '알 비체린(Al Bicerin)'**이 있다.
내부의 수많은 봉헌화(Ex-voto)들은 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어 천천히 살펴보면 더욱 의미 있는 방문이 된다.
미사 시간에는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미사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부담 없이 방문하여 바로크 예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교회 건립
토리노의 초대 주교 성 막시무스가 고대 로마 성벽 유적 근처에 성 안드레아에게 헌정된 교회를 세우고, 성모 마리아를 위한 작은 예배당과 성화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수도원과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건설
이вре아의 아달베르토 1세가 수도원 건설을 명하고 영토를 기증했다. 이 시기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건설되었다.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성화 발견과 기적 전설
전설에 따르면, 시력을 잃은 프랑스 브리앙송 출신의 순례자 조반니 라바키오가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인도로 잃어버렸던 성화를 지하에서 발견하고 시력을 회복했다. 이 사건으로 성당은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교회 확장
베네딕토회는 늘어나는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교회를 서쪽으로 한 칸 확장했다.
과리노 과리니의 바로크 양식 재건축
사보이-느무르의 마리 잔 바티스트의 의뢰로 건축가 과리노 과리니가 기존 교회를 타원형 본당과 북쪽의 육각형 예배당을 갖춘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이 작업은 안토니오 베르톨라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토리노 공성전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의 토리노 공성전 당시 성당은 포격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때 맞은 포탄 하나가 현재도 외벽에 남아있다.
필리포 유바라의 추가 작업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가 북쪽의 성직자석과 새로운 중앙 제단을 추가하고, 성모 성화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돔 장식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나폴레옹 시대의 수난
나폴레옹의 종교 탄압으로 수도회가 해산되고 성당은 한때 병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신고전주의 양식 추가 및 확장
피에트로 안셀메티와 카를로 체피 등의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남쪽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현관과 지하 성당을 추가하고, 내부 예배당들을 확장하는 등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교황의 인정
교황 비오 10세가 성모 성화에 대한 교황 대관식을 승인하고, 성당을 소성당(Minor Basilica)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폭격 피해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성당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이후 복원되었다.
교황의 황금 장미 수여
교황 프란치스코가 토리노 성의와 관련된 역사적 중요성을 기리며 성당에 황금 장미를 수여했다.
여담
성당의 정식 명칭은 '위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토리노 사람들은 애칭으로 '라 콘솔라(La Consolata)'라고 부른다. 이는 '위로받는 자'라는 의미로, 성모 마리아가 위로를 주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성당 건물은 고대 로마 시대 아우구스타 타우리노룸의 성벽 북서쪽 모퉁이 탑 유적 위에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성당 옆에 서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은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토리노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 로마 유적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1706년 토리노 공성전 당시 프랑스군의 포탄 한 발이 성당 돔 아랫부분에 명중했으나 터지지 않았는데, 이 포탄은 현재도 외벽에서 볼 수 있다. 다만, 포탄에 새겨진 연도는 1704년으로, 공성전이 일어난 해와는 차이가 있다.
성당 내부에는 토리노의 여러 성인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로 성 주세페 카파소와 성 레오나르도 무리알도, 그리고 복자 주세페 알라마노 등이 있다.
19세기 사진가 세콘도 피아가 성당의 유명한 성모 성화를 촬영하던 중, 그림 하단에서 '로마 시민의 성모 마리아(S.MARIA.DE.PPLO.DE.URBE)'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는 성화가 안토니아초 로마노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며, 델라 로베레 추기경이 토리노로 가져온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 발견은 성화의 유래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종탑에는 피에몬테 주에서 가장 큰 종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종은 노바라의 산 가우덴치오 대성당의 종과 크기가 비슷하다고 한다.
대중매체에서
Fruta madura (시집)
피에몬테 방언 시인 니노 코스타(Nino Costa)가 이 성당을 주제로 한 시 'La Consolà'를 발표했다. 시는 다양한 계층의 토리노 시민들이 성모 앞에서 위안을 찾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Il Codice Gianduiotto (소설)
브루노 감바로타(Bruno Gambarotta)의 소설로, '다빈치 코드'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성당의 종탑이 전설적인 '이에로가미코 잔두이오토'의 비밀 레시피가 숨겨진 장소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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