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포로 로마노의 마지막 기념물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직접 확인하거나, 고대 로마 건축물의 독특한 사례를 관람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건축학도들이 주로 방문한다.
포로 로마노 중심부에 자리한 코린트 양식 기둥의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으며, 기단에 새겨진 라틴어 비문을 통해 건립 배경과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이용
- 로마 지하철 B선 콜로세오(Colosseo)역에서 하차하여 포로 로마노 방면으로 도보 약 5~10분 이동하면 포로 로마노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 포로 로마노 내부로 입장하여 로스트라 유적 근처에서 포카스의 기둥을 찾을 수 있다.
포로 로마노는 매우 넓으므로 내부 안내 표지판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 버스 이용
- 다수의 버스 노선이 포로 로마노 인근(예: Via dei Fori Imperiali)을 경유한다.
- 정류장에서 하차 후 포로 로마노 입구까지 도보로 이동한다.
주요 특징
서기 608년에 세워진 이 기둥은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에 건립된 마지막 기념 건축물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로마 제국의 오랜 역사가 저물어가는 시기에 세워져 특별한 감회를 준다.
높이 13.6미터의 홈이 파인 코린트 양식 기둥은 2세기경 다른 건축물을 위해 만들어졌다가 재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흰색 대리석 주춧돌 역시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동상을 지지하던 것을 재사용한 것이다.
기둥의 받침대에는 라틴어로 된 헌정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은 라벤나 총독 스마라그두스가 동로마 제국 황제 포카스에게 이 기둥을 바쳤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황제의 자비와 이탈리아에 가져온 평화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다.
추천 포토 스팟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함께 담는 구도
기둥 뒤편으로 보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함께 촬영하면 고대 로마의 웅장함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 또는 팔라티노 언덕 전망대
두 언덕 위에서 포로 로마노 전체를 조망하며 포카스의 기둥을 사진에 담으면, 주변 유적과의 관계 속에서 기둥의 위치와 규모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기둥 정면 근접 촬영
기둥 하단의 비문이나 코린트 양식 주두의 정교한 조각을 가까이에서 촬영하여 건축학적 디테일을 강조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포로 로마노 통합 입장권으로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과 함께 방문할 수 있다.
포로 로마노는 매우 넓고 그늘이 적으므로 여름철에는 물과 모자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기둥 주변은 비포장 상태일 수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을 권장한다.
포카스의 기둥은 포로 로마노의 다른 주요 유적들(로스트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등)과 가까이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용이하다.
역사적 배경
기둥 제작 (추정)
현재 포카스의 기둥으로 사용된 코린트 양식 기둥은 원래 2세기경 다른 미상의 건축물을 위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카스 황제에게 헌정
라벤나 총독 스마라그두스가 로스트라 앞에 이 기둥을 세우고 동로마 제국 황제 포카스에게 헌정했다. 이는 포로 로마노에 세워진 마지막 기념 건축물이다.
황제 동상 설치 및 파괴
기둥 꼭대기에는 금으로 도금된 포카스 황제의 동상이 세워졌으나, 610년 포카스 황제가 실각하고 살해된 후 기록말살형의 일환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매몰 및 잊힘
포로 로마노의 지반이 점차 높아지면서 기둥의 하단부와 받침대는 흙과 파편 속에 묻히게 되었다.
기단부 발굴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통해 기둥의 받침대와 그곳에 새겨진 라틴어 비문이 세상에 다시 드러났다.
포로 로마노의 랜드마크
발굴 이후 포카스의 기둥은 포로 로마노의 주요 유적 중 하나이자, 로마를 찾는 많은 예술가와 여행객들에게 영감을 주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여담
포카스의 기둥이 세워진 정확한 이유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포카스 황제가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기증하여 교회(산타 마리아 아드 마르티레스)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주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유배 생활에서 돌아와 라벤나 총독 지위를 되찾게 해준 포카스 황제에 대한 스마라그두스의 개인적인 충성심과 감사의 표현으로 세워졌다는 설도 있다.
기둥 자체는 2세기에 제작된 것을 재활용한 것이며, 기둥을 받치고 있는 흰색 대리석 주춧돌 역시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게 봉헌된 동상을 지지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이전 비문을 지우고 새로운 내용을 새겨 넣은 것이다.
일부 기록이나 안내문에서 포카스 황제를 '비잔틴 황제'로 칭하는 것에 대해, 헤라클리우스 황제(재위 610-641) 이전의 동로마 황제에게 해당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포카스 황제는 군인(백인대장) 출신으로 황위에 올랐으며, 로마에서는 교황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중매체에서
18-19세기 베두타(Veduta) 작품 다수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주세페 바시 등 많은 화가들이 포로 로마노의 풍경을 담은 베두타 작품에 포카스의 기둥을 중요한 요소로 그려 넣었다. 이들 작품 속에서 기둥은 폐허 속에서도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낭만주의적 감성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