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독특한 건축 양식, 특히 거대한 단일석 돔 구조에 관심이 많은 역사 애호가나 건축학 연구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기념물은 고대 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방문객들은 2층으로 구성된 십각형 구조의 영묘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며, 이스트리아산 석재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벽체와 현재는 비어 있지만 테오도리쿠스 대왕의 석관으로 사용되었던 반암 욕조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주변 공원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영묘의 장엄함을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일부 방문객들은 입장료에 비해 내부 전시물이 부족하고 공간이 다소 비어있다고 평가하며, 건축물 자체의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시
- 라벤나(Ravenna) 중앙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15-20분 (약 1.2km) 거리에 위치한다.
- 역에서 영묘까지 도보 이동 시, 철로를 건너기 위한 지하도를 이용해야 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영묘는 라벤나 시내 중심부에서 약간 북동쪽으로 벗어난 곳에 있다.
🚗 자가용 이용 시
- 영묘 입구 근처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영묘의 가장 큰 특징은 지름 약 10미터, 무게 약 230톤에 달하는 단 하나의 이스트리아 석재로 만들어진 거대한 돔 지붕이다. 고대 건축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 구조물은 어떻게 그 자리에 놓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건물은 두 개의 십각형 구조가 위아래로 겹쳐진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든 벽체는 약 400km 떨어진 이스트리아 채석장에서 가져온 고품질 석재로 정교하게 쌓아 올려졌다. 이는 당시 동고트 왕국의 기술력과 자원 동원 능력을 보여준다.
영묘 상층부 중앙에는 테오도리쿠스 대왕의 석관으로 사용되었던 붉은색 반암 욕조가 놓여 있다. 비록 그의 유해는 비잔틴 시대에 제거되었지만, 이 육중한 욕조는 한때 강력했던 왕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추천 포토 스팟
영묘 외부 전경 (공원과 함께)
주변 공원의 푸르름과 함께 영묘 전체의 독특한 건축미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십각형 구조와 거대한 돔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단일석 돔 지붕 근접 촬영
거대한 단일 돌로 만들어진 돔의 웅장함과 표면의 질감, 그리고 12개의 장식적인 손잡이(안사)를 가까이에서 포착하여 건축 기술의 경이로움을 담아낼 수 있다.
야간 조명 아래 영묘
저녁에 조명이 켜진 영묘는 낮과는 다른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독특한 실루엣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좋다.
방문 팁
입장료(성인 4유로)를 고려할 때, 건축물 자체의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내부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니, 여행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면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영묘 주변은 넓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피크닉을 즐기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하다.
매표소와 실제 영묘 입구가 다소 떨어져 있어 동선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참고한다.
일부 방문객은 영묘 내부에서 재생되는 배경 음악이 명상적인 분위기를 방해한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여름철에는 라벤나 지역이 매우 더울 수 있으므로, 가급적 봄이나 가을에 방문하는 것이 쾌적하다.
역사적 배경
영묘 건립 시작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쿠스 대왕(Theodoric the Great)이 자신의 사후 안식처로 삼기 위해 이스트리아 석재를 사용하여 영묘 건설을 명했다.
기독교 예배당으로 전환
비잔틴 제국이 라벤나를 점령한 후, 테오도리쿠스의 유해는 영묘에서 제거되었고 건물은 기독교 예배당(Oratory)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배수 및 발굴 작업
수 세기 동안 인근 하천의 범람 등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물에 잠겨 있던 영묘 주변 지역에 대한 배수 작업과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졌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등재
라벤나의 다른 초기 기독교 기념물군과 함께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기념물군(Early Christian Monuments of Ravenn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
여담
테오도리쿠스 영묘의 지붕은 무게 약 230톤, 지름 약 10미터에 달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스트리아 석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그 높이까지 들어 올렸는지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붕 외부에는 12개의 돌출된 손잡이 모양 장식이 있는데, 이는 지붕을 운반하거나 제 위치에 설치할 때 사용된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영묘 건축에 사용된 이스트리아 석재는 현재 크로아티아 지역인 이스트리아 반도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약 400km나 떨어진 거리에서 운반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이 영묘는 로마나 비잔틴 예술의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독특한 고딕 양식과 장식을 보여주며, 로마 시대의 석조 건축 기법인 '오푸스 콰드라툼(opus quadratum)'을 사용한 점이 특징으로 언급된다. 이는 당시 버려졌던 기술을 다시 활용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테오도리쿠스 영묘는 이 시기 왕의 무덤으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예시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동고트족의 왕이었으나, 젊은 시절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인질로 생활하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훗날 동로마 제국의 총사령관 및 집정관까지 역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탈리아를 통치하며 로마인에게는 로마법을, 고트족에게는 고트법을 적용하는 등 비교적 관용적인 정책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2Fbanner_1748613407672.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