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이탈리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그의 문학적 발자취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문학 애호가 및 역사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무덤 건물과 그 안에 안치된 석관을 보며 경의를 표할 수 있고, 인접한 조용한 정원에서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바로 옆 단테 박물관을 함께 방문하여 단테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 수도 있다.
무덤 내부는 직접 들어갈 수 없고 외부에서만 관람해야 하며, 전체 규모가 작아 단독으로 방문하기보다는 라벤나의 다른 풍부한 역사 유적들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도보
- 라벤나 구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하여 산 비탈레 성당,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 등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약 5~10분 거리에 있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 차량
- 구시가지 내 차량 진입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외곽 주차장 이용 후 도보 접근이 권장된다.
- 인근에 유료 주차장이 있으나 공간이 협소할 수 있다.
🚲 자전거
- 라벤나 시내는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으며, 무덤 근처까지 자전거로 접근이 용이하다.
자전거 거치 공간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요 특징
1781년 건축가 카밀로 모리자가 설계한 작은 신고전주의 사당 형태의 건물로, 내부에 단테 알리기에리의 유골이 담긴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대리석과 스투코로 장식된 내부는 소박하지만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덤 오른편에 자리한 작은 정원으로, 원래 수도원 회랑의 일부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사색에 잠기거나, 2차 세계대전 중 단테의 유골이 임시로 매장되었던 역사적 장소를 둘러볼 수 있다.
석관 뒤편 벽에는 1483년 조각가 피에트로 롬바르도가 제작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단테의 모습을 담은 부조가 있다. 이 부조는 15세기부터 이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천 포토 스팟
무덤 정면과 명판
신고전주의 양식의 무덤 건물 전체와 입구 위 'DANTIS POETAE SEPULCRUM'이라고 새겨진 명판을 함께 담아보자.
콰드라르코 디 브라치오포르테 정원과 무덤
고요한 정원의 아치나 담쟁이덩굴을 배경으로 무덤을 촬영하거나, 정원 내 2차대전 유골 은닉처 표식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
창 너머 석관과 내부
무덤 건물의 창을 통해 내부의 석관과 피에트로 롬바르도의 부조, 그리고 꺼지지 않는 등불을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단테 서거일 추모 및 피렌체 시 올리브유 헌납식
매년 9월 14일
단테의 서거일인 매년 9월 14일, 그의 고향 피렌체 시에서 토스카나 언덕에서 생산된 올리브유를 무덤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헌납하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에는 피렌체와 라벤나의 시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다.
신곡 매일 낭독 (L'ora che volge il disio)
매일 저녁 (하절기 오후 6시, 동절기 오후 5시경)
매일 저녁 단테의 '신곡' 중 한 편을 낭독하는 '욕망을 부르는 시간(L'ora che volge il disio)'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낭독 후에는 단테가 사망한 밤을 기리는 의미로 13번의 종이 울린다. 많은 방문객과 현지인들이 참여하여 단테를 기리는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한다.
방문 팁
단테의 무덤 방문은 무료이며, 별도의 예약이나 티켓이 필요하지 않다.
무덤 바로 옆에 위치한 단테 박물관(Museo Dantesco)을 함께 방문하면 단테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매일 저녁(하절기 오후 6시, 동절기 오후 5시경) 열리는 '신곡' 낭독 행사에 참여하면 매우 특별하고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무덤 주변은 '단테 구역(zona dantesca)'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정숙과 존중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
무덤 내부를 밝히고 있는 등불은 단테의 고향 피렌체에서 매년 9월 14일 기증하는 토스카나산 올리브유로 채워져 계속 타오르고 있다.
무덤 옆 작은 정원(콰드라르코 디 브라치오포르테)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피해 단테의 유골을 안전하게 보관했던 장소를 표시하는 담쟁이덩굴 덮인 작은 흙더미와 기념판이 있다.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이 바로 인접해 있으며, 이곳에서 단테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성당 내부의 침수된 지하 제실도 독특한 볼거리이다.
역사적 배경
단테 알리기에리 사망 및 최초 매장
단테가 라벤나에서 사망하고, 당시 프란체스코 수도원이었던 산 피에르 마조레 교회(현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회랑 바깥 길가 고대 로마 석관에 안장되었다.
석관 이전
베네치아 공화국의 라벤나 총독이었던 베르나르도 벰보에 의해 석관이 회랑 서쪽으로 옮겨졌다.
피렌체의 유골 반환 시도와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의 유골 은닉
단테의 고향 피렌체가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의 허가를 받아 유골 반환을 시도했으나, 라벤나의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비밀리에 석관에서 유골을 빼내어 수도원 벽 속에 숨겼다. 피렌체 대표단은 빈 석관만을 발견했다.
유골함 제작 및 보관
수도원장 안토니오 사르티 수사가 숨겨져 있던 단테의 유골을 새로운 나무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이 상자에는 'Dantis ossa a me Frate Antonio Santi hic posita 1677, die 18 Octobris'라는 문구가 기록되었다.
현재의 무덤 건축 및 유골 재안치
로마냐 주재 교황 특사였던 루이지 발렌티 곤자가 추기경의 의뢰로 지역 건축가 카밀로 모리자가 현재의 신고전주의 양식 무덤을 완공했다. 이때 1677년 상자에 보관되어 있던 유골이 원래의 석관에 다시 안치되었다.
나폴레옹 시대의 유골 재은닉
프랑스 점령기 종교 단체 탄압 과정에서 유골이 몰수될 것을 우려한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1677년 상자에 담긴 유골을 다시 꺼내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과 브라치오포르테 예배당 사이의 낡은 문 아래에 숨겼다.
숨겨진 유골의 극적인 발견
단테 탄생 600주년을 맞아 진행된 복원 작업 중 한 인부가 우연히 'OSSA DANTIS'(단테의 뼈)라고 적힌 1677년의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유골은 대중에게 공개된 후 호두나무 상자에 담겨 다시 무덤 기념물 아래에 안장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골 피난
전쟁 중 폭격으로부터 유골을 보호하기 위해 1944년 3월부터 1945년 12월까지 인접한 정원 땅속에 유골을 묻어두었다가 전쟁 후 다시 무덤으로 옮겼다. 이 장소에는 현재 기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여담
단테의 고향 피렌체는 수 세기에 걸쳐 그의 유골 반환을 끈질기게 요청했으나, 라벤나는 이를 계속 거부해왔다. 이 때문에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단테를 기리는 기념비와 함께 **빈 무덤(가묘)**이 조성되어 있다.
무덤 내부를 항상 밝히고 있는 등불의 기름은 매년 단테의 기일인 9월 14일에 피렌체 시에서 공식적으로 기증하는 토스카나산 올리브유를 사용한다. 이는 두 도시 간의 오랜 역사적 경쟁과 존경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식으로 여겨진다.
단테의 유골은 도굴이나 정치적 목적의 탈취를 피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비밀리에 옮겨졌으며, 한때는 그 정확한 위치가 수백 년 동안 잊혔다가 1865년에 이르러서야 복원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덤 옆 작은 정원의 이름인 '콰드라르코 디 브라치오포르테(Quadrarco di Braccioforte)'는 과거 두 사람이 계약의 신성함을 보증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강한 팔(Braccioforte)'에 맹세하며 그 형상을 아치에 그렸다는 지역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단테는 당시 학문과 문학의 공식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닌, 일반 민중이 사용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방언으로 위대한 서사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집필함으로써 현대 이탈리아 문어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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