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5세기 롬바르디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미와 내부의 종교 예술 작품, 특히 '자비의 성모 마리아' 프레스코화와 베르고뇨네의 제단화를 감상하려는 예술 및 역사 애호가,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거나 미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주로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성당 내부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조각들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으며, 때때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 건물의 역사와 예술품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일부 방문객은 종탑에 올라 주변 경관을 조망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종소리가 매우 잦고 커서 주변의 정적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있으며, 내부 일부는 관리가 미흡하거나 어둡게 느껴질 수 있다는 언급도 있다. 또한, 방문 시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 밀라노 북동부 카소레토(Casoretto) 지역에 위치한다.
- 가까운 지하철역(예: M2 Lambrate FS, Piola 등)에서 하차 후 도보 또는 버스로 환승하여 접근할 수 있다.
정확한 노선 및 도보 시간은 출발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대중교통 앱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 성당 주변은 주거 지역으로, 주차 공간이 제한적일 수 있다.
방문 시 인근 공영 주차장 또는 노상 주차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특징
성당 이름의 유래가 된 1446년 작 프레스코화로, 하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성당 좌측 익랑(트랜셉트)에서 볼 수 있으며, 섬세한 표현과 색감이 특징이다.
오른쪽 두 번째 아치에 위치한 이 작품은 베르고뇨네(Bergognone) 또는 그의 제자 암브로조 베빌라콰(Ambrogio Bevilacqua)에게 귀속된다. 그리스도의 부활, 세례 요한, 요한 복음사가를 묘사하며, 작품을 의뢰한 멜치 부부의 초상화도 포함되어 있다.
15세기 솔라리 가문(Solari family)에 의해 지어진 성당은 붉은 벽돌의 파사드와 고풍스러운 종탑이 특징이다. 성당 왼편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연상시키는 아담한 회랑(chiostro)이 있으며, 과거 오라토리오의 안뜰로 사용되었다.
추천 포토 스팟
성당 정면 파사드와 종탑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롬바르디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외관 전체를 담을 수 있다.
내부 '자비의 성모 마리아' 프레스코화 앞
성당의 이름 유래가 된 핵심적인 예술 작품을 배경으로 촬영할 수 있다.
회랑 (Chiostro)
아치형 기둥과 고요한 안뜰이 어우러진 회랑에서 평화로운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면 평소 공개되지 않는 종탑에 오를 기회가 있을 수 있으며, 성당의 역사와 예술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미사 시간에는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미사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성당의 역사와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80페이지 분량의 안내 책자를 5유로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일부 방문객은 문이 닫혀 있어 입장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으므로, 방문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기존 소성당 존재 및 복원
귀족 피에트로 탄치(Pietro Tanzi)의 소유지에 작은 성당이 있었으며, 탄치의 후원으로 복원되었다. 루카의 산타 마리아 델라 프리조나이아 수도원에서 라테라노 참사회원 파견을 요청했다.
탄치의 유증
피에트로 탄치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소성당에 기증했다. 단, 프리조나이아 수도원에 종속되고 최소 6명의 참사회원이 상주하는 조건이었다.
초대 원장 선출
카소레토 정규 참사회 연합의 초대 원장이 선출되었다.
현 성당 건설 시작
솔라리 가문(특히 귀니포르테 솔라리)에 의해 현재의 성당 건설이 시작되었다. 관련 기부 문서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예배당 장식
일부 예배당의 장식 작업이 진행되었다.
종탑 완공
성당의 종탑이 완공되었다.
수도원 지위 획득
수도원(abbazia) 칭호를 얻었다.
건물 변경 및 성 카를로 보로메오 체류
펠레그리노 티발디의 설계로 추정되는 변경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성 카를로 보로메오가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참사회 폐지 및 쇠퇴 시작
참사회가 폐지되면서 성당은 쇠퇴기를 맞이하고 투로(Turro)의 분당이 되었다.
본당 승격
본당 교회(chiesa parrocchiale)로 승격되었다.
파사드 복원
안노니(Annoni) 건축가에 의해 파사드가 15세기 형태로 복원되었다.
새로운 코레토 건설
제대 왼편에 새로운 코레토(작은 성가대석)가 만들어져 건물 평면이 변경되었다.
추가 복원 작업
여러 차례의 수리 및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여담
성당 이름에 '비앙카(Bianca, 하얀색)'라는 형용사가 붙은 이유는 내부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 프레스코화에서 성모가 하얀색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또한 당시 밀라노에 있던 다른 성모 마리아 교회들, 즉 '산타 마리아 네라(검은 성모 마리아)'와 '산타 마리아 로사(붉은 성모 마리아)'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스포르차 가문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많은 유산 기증 덕분에 풍부한 도서관을 갖추고 학식과 재산을 기준으로 선발된 30명의 참사회원을 유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성 카를로 보로메오가 이 수도원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성당 앞 보도에는 '바람 장미(rosa dei venti)'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3랑식 구조였으나, 16세기에 측랑이 예배당으로 변경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주랑의 십자형 궁륭 천장은 현재 원통형 궁륭으로 남아있다.
과거 오라토리오의 안뜰로 사용되던 회랑에는 교회에서 나온 많은 묘비들이 보관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당이 위치한 카소레토(Casoretto) 지역은 밀라노 북동부 외곽에 해당한다.
한때 성당이 쇠퇴하여 투로(Turro)의 분당(succursale)이 되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종소리가 자주, 그리고 꽤 오랫동안 울린다는 언급이 있으며, 이로 인해 주변 거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feature_0_1747662960199.jpg)
/feature_0_174777090570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