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건축과 베르나르디노 루이니를 비롯한 르네상스 거장들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하고자 하는 예술 애호가나, 밀라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히 역사적 장소를 탐방하고 싶은 1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성당 내부에서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제단화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특히 루이니의 '예수의 수난' 연작은 중요한 볼거리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명상적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성당 내부가 다소 협소하며, 개방 시간이 불규칙하거나 예고 없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다는 언급이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 M1호선 (빨간색 라인) 또는 M3호선 (노란색 라인) 두오모(Duomo)역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 M3호선 (노란색 라인) 미소리(Missori)역 하차 후 도보 약 5분.
두오모 광장에서 비아 토리노(Via Torino)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 트램
- 비아 토리노(Via Torino)를 경유하는 트램 노선(예: 2번, 3번, 14번)을 이용하여 'Via Torino Via Palla' 또는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 도보
- 밀라노 대성당(두오모)에서 비아 토리노(Via Torino)를 따라 남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위치하여 도보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주요 특징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로 알려진 베르나르디노 루이니가 1516년에 그린 '예수의 수난(Passione di Gesù)' 연작 프레스코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측면 예배당에 있는 제단화와 벽화들은 그의 섬세한 표현력과 색채 감각을 잘 보여준다.
17세기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키니에 의해 재건된 웅장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내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중앙 제단과 예배당 곳곳의 정교한 장식, 그리고 카를로 프란체스코 누볼로네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바로크 제단화가 인상적이다.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당으로, 고대 로마 황궁 유적지 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당 내부에는 밀라노 칙령을 기념하는 명판도 찾아볼 수 있으며, 번화한 비아 토리노에서 한 걸음 벗어나 조용히 사색하거나 기도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추천 포토 스팟
황금 시간대의 성당 파사드
해 질 녘 황금빛 햇살을 받은 성당의 우아한 바로크 양식 외관은 매우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프레스코화
수난 예배당을 비롯한 측면 예배당에 있는 루이니의 정교하고 생생한 프레스코화를 클로즈업하여 촬영하면 좋다.
바로크 양식의 제단과 내부 장식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바로크 양식의 중앙 제단과 천장화, 그리고 예배당의 세부 장식들을 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평일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방문하면 비교적 한적하게 성당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성당 내부에 있는 작은 예배당들, 특히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예수의 수난' 연작이 있는 예배당은 놓치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입장은 무료이지만, 성당 유지보수를 위한 기부금을 내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오후나 저녁 시간대에는 개방 여부가 불규칙할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한다.
성당 내부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플래시 사용은 자제하고 다른 방문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최초 건립
성 나탈레(Natale) 주교에 의해 산 조르조(성 게오르기우스)에게 헌정된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롬바르드 왕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 및 초기 역사
교회의 기원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로마 황제의 궁궐(Palazzo Imperiale)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는 설이 '알 팔라초(al Palazzo)'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 재건
기존 건물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되거나 대대적으로 개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건축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을 수 있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프레스코화 제작
화가 베르나르디노 루이니가 성당 내부의 수난 예배당(Cappella della Passione)에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중요한 프레스코화 연작을 완성했다.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 개축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키니(Francesco Maria Richini)의 설계로 성당 전체가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개축되어 현재 내부 모습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파사드(정면) 완성
건축가 프란체스코 크로체(Francesco Croce)에 의해 현재와 같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 정면(파사드)이 완성되었다.
내부 복원 및 개조
루이지 카뇰라(Luigi Cagnola)의 감독 하에 성당 내부의 대대적인 복원 및 개조 작업이 이루어졌다.
종탑 및 돔 완공
건축가 알폰소 파로케티(Alfonso Parrocchetti)의 설계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종탑과 돔이 완공되어 현재 성당의 전체적인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테러 공격 피해 및 복원
7월 마피아의 폭탄 테러로 성당 현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이후 1996년에 복원되었다.
여담
성당의 이름에 붙은 '알 팔라초(al Palazzo)'는 과거 이 자리에 고대 로마 황제의 궁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진다.
1158년과 1201년의 문서에는 평화 시기에 밀라노의 신성한 전차였던 **카로치오(Carroccio)**가 이 성당에 보관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선포한 밀라노 칙령을 기념하는 명판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당은 밀라노의 성 코스탄티니아 기사단(Sacro Militare Ordine Costantiniano di San Giorgio)의 대표부 역할을 하며, 이를 알리는 기념판이 내부에 있다고 한다.
1164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밀라노 침공 당시,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유해가 파괴를 피해 잠시 이 성당의 종탑에 숨겨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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