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개요
테살로니키의 역사와 도시 전체의 탁 트인 전망을 동시에 경험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사진 촬영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비잔틴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을 거쳐 현대 감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독특한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요새의 성벽 일부를 따라 걸으며 도시와 바다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과거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둘러보며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내부 전시 공간에서는 요새의 변천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최근 입장료가 인상되었으나 관람 가능한 구역이 제한적이고 일부 시설이 노후화되어 방문객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 23번 버스를 타고 'EPTAPIRGIOU'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요새 뒷편에 도착한다.
- 이후 짧은 도보로 정문까지 이동할 수 있다.
지하철 노선에서는 거리가 있으며 오르막길이므로 버스 이용이 편리하다.
🚕 택시 이용
- 도시의 높은 지점에 위치하므로, 하루 일정의 첫 방문지로 택시를 이용한 후, 이곳에서부터 다른 장소로 걸어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 도보
- 테살로니키 시내 중심부에서 도보로 약 1시간 소요되나,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므로 체력 소모가 클 수 있다.
아노 폴리 지역의 다른 유적과 함께 둘러볼 경우 도보 이동을 고려할 수 있다.
주요 특징
요새 성벽 위에서는 테살로니키 시내, 항구, 에게 해, 그리고 맑은 날에는 올림푸스 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이 아름답다는 평가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1989년까지 약 100년간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옛 감옥 건물과 독방 등의 시설 일부를 직접 둘러볼 수 있다. 그리스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과 관련된 이야기가 깃든 장소이다.
비잔틴 시대부터 오스만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증개축된 10개의 탑과 견고한 성벽의 건축 양식을 관찰할 수 있다. 성문 위 오스만 시대 비문 등 역사적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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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성벽 위 (남쪽 및 동쪽 방향)
테살로니키 시내 전체와 테르마이코스 만, 맑은 날에는 멀리 올림푸스 산까지 배경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노을과 함께 담으면 더욱 인상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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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감옥 안뜰 및 복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석조 건물과 다소 어둡고 육중한 분위기의 감옥 시설을 배경으로 독특하고 역사적인 느낌이 강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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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입구 및 주변 성곽길
견고한 요새의 외관과 주변 아노 폴리 지역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함께 담을 수 있다.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다양한 각도로 요새를 촬영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입장료는 최근 비 EU 성인 기준 10유로로 인상되었으며, 일부 구역은 보수 또는 기타 이유로 폐쇄되어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도시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므로, 23번 버스를 이용해 'EPTAPIRGIOU' 정류장에서 하차하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오르막길을 피하는 방법이다.
요새 방문 후에는 성벽을 따라 트리고니온 타워(Triangle Tower) 방향으로 걸어 내려오면서 주변 아노 폴리(Ano Poli) 지역의 전통 가옥과 골목길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부 일부 계단은 마모되어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 착용이 권장된다.
EU 시민 중 25세 미만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며, 학생 할인은 평일에 적용될 수 있으니 해당 증명서를 지참하는 것이 좋다.
관람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이며,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전시 내용을 자세히 보며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초기 요새 건설 (북쪽 5개 탑)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재위 기간(379–395년) 또는 9세기에 도시 아크로폴리스의 북동쪽 모퉁이에 5개의 탑과 성벽이 처음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조물은 아크로폴리스의 북쪽 방어선을 형성했다.
요새 확장 (남쪽 5개 탑)
남쪽에 5개의 탑과 성벽이 추가로 건설되어 요새의 규모가 현재와 유사하게 확장되었으며, 도시 성채 내부의 독립된 보루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점령 및 재건
오스만 제국이 테살로니키를 점령한 직후, 술탄 무라드 2세의 명령으로 도시의 첫 오스만 총독인 차우쉬 베이(Çavuş Bey)에 의해 요새가 재건되었다. 현재 성문 위에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비문이 남아있다.
감옥으로 전환
요새는 군사 시설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예디 쿨레(Yedi Kule)'라는 이름의 감옥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테살로니키의 주요 교도소 시설로 기능했다.
감옥 폐쇄
약 100년간 운영되던 예디 쿨레 감옥이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 및 연구 대상이 되었다.
복원 및 발굴 작업 시작
문화재 관리 당국(9차 비잔틴 및 현대 유물 관리국)에 의해 요새의 체계적인 고고학적 연구 및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발굴을 통해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등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여담
이름은 그리스어와 튀르키예어로 모두 '일곱 개의 탑을 가진 요새'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10개의 탑을 가지고 있다. 이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예디쿨레 요새에서 이름을 따왔거나, 상징적인 의미로 붙여졌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감옥 시절에는 정치범을 포함한 많은 수감자들이 거쳐갔으며, 그리스의 전통 대중음악인 레베티카(rebetika) 노래 가사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사회의 아픔과 저항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새 내부 발굴 과정에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바실리카와 비잔틴 시대 초기 묘지 교회의 유적이 발견되어, 이곳이 오랜 기간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장소였음을 시사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테살로니키의 군사 총독 거주지 및 수비대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치 칼레(İç Kale)', 즉 '내부 성채'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733년의 무기 및 군수품 목록에는 10개 탑 각각의 튀르키예어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각 탑의 기능이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등대 탑', '탄약 탑', '감옥 탑' 등이 있었다고 한다.
대중매체에서
다수의 레베티카 노래
악명 높은 '예디 쿨레' 감옥으로서의 역사는 다수의 그리스 레베티카 노래에 언급되며 그 시대의 고통과 저항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 노래들은 그리스 현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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