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중세 건축물과 그에 얽힌 전설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나 독특한 도시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성문을 통과하는 트램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인기가 많다.
방문객들은 성문의 외관과 내부 벽화를 감상하며 슈바벤 상인 전설을 되새길 수 있고, 타워 내부에 위치한 주석 인형 박물관(친피구렌클라우제)을 관람할 수도 있다. 또한, 성문은 슐로스베르크 언덕으로 향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일부 방문객들은 타워 내부 박물관의 전시 내용이 다소 빈약하거나 깊이가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접근 방법
🚋 트램 이용
- 프라이부르크 시내 트램 노선 중 일부가 슈바벤토어의 아치를 직접 통과한다.
- 성문 바로 옆 또는 인근의 트램 정류장(예: Schwabentorbrücke)에서 하차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성문 북쪽의 부속 건물은 트램, 자전거, 택시, 배달 차량 및 시내 중심가 주민들의 차량 통행로로 이용된다.
🚶 도보 이용
- 프라이부르크 구시가지(Altstadt)의 보행자 구역 경계에 위치하여 도보로 둘러보기 편리하다.
-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마르틴 문(Martinstor) 등 다른 주요 명소와 도보로 연결된다.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 언덕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슈바벤토어 근처에서 시작된다.
주요 특징
1250년경 건설된 프라이부르크의 두 개 남은 중세 도시 성문 중 하나로, 역사적인 방어 시설이자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독특한 탑의 형태와 붉은 사암, 계단식 박공 지붕을 통해 중세 및 이후 시대의 건축 양식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성문 안쪽 벽에는 1572년 마티아스 슈베리가 그린 상인과 마차 그림이 있으며, 이는 19세기에 프라이부르크를 사려다 아내가 금을 모래로 바꿔치기해 망신당한 슈바벤 남자의 전설로 이어졌다. 이 그림과 전설은 슈바벤토어의 중요한 이야기 요소이다.
1969년부터 성문 타워 내부에 위치한 사립 박물관으로, 약 9,000개의 주석 인형으로 제작된 디오라마를 통해 지역 역사의 다양한 장면을 전시한다. 특히 남부 독일의 자유 운동 관련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추천 포토 스팟
성문 외부 (성 게오르기우스 그림과 함께)
성문 바깥쪽에는 프라이부르크의 수호성인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무찌르는 모습이 1903년 프리츠 가이게스에 의해 그려져 있어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성문 아치와 통과하는 트램
현대적인 트램이 중세 성문의 아치를 통과하는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장면을 연출하여 많은 방문객들이 사진으로 담는다.
성문 내부 (슈바벤 상인 그림)
성문 안쪽 벽에 그려진 슈바벤 상인 전설 관련 그림은 슈바벤토어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기념사진 배경으로 좋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성문 아치로 트램이 수시로 통과하므로 사진 촬영 시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타워 내부의 주석 인형 박물관(친피구렌클라우제)은 운영 시간이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슐로스베르크 언덕과 연계하여 방문 계획을 세우면 프라이부르크의 전망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성문 주변 안내판이나 QR코드를 통해 역사와 의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역사적 배경
건립
도시 방어벽의 일부로 건설되었다. 초기에는 도시 안쪽으로 개방된 형태였다.
석벽 증축
도시 안쪽으로 개방되었던 부분이 석벽으로 막혔다.
계단탑 추가 및 벽화 제작
계단탑이 추가되었고, 같은 해 마티아스 슈베리가 안쪽 벽에 상인과 마차 그림을 그렸다.
슈바벤 전설 발생
마티아스 슈베리의 그림이 슈바벤 상인 전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대대적인 개조
칼 쉐퍼의 설계에 따라 탑의 높이가 거의 두 배로 높아지고, 북독일 양식의 계단식 박공 지붕이 설치되었다. 1903년 프리츠 가이게스가 외벽에 성 게오르기우스 그림을 그렸다.
부속 건물 건축
역사주의 양식의 부속 건물이 추가되었다.
원형 복원 시도
개조된 부분이 일부 철거되고, 원래 모습과 유사한 단순한 천막형 지붕과 양파형 돔이 있는 종탑이 설치되었다.
주석 인형 박물관 개관
타워 내부에 사립 박물관 '친피구렌클라우제(Zinnfigurenklause)'가 문을 열었다.
보수 공사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되어 2013년 11월에 완료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제안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제안되었다.
여담
슈바벤토어라는 이름은 19세기에 생겨난 한 슈바벤 상인의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상인은 프라이부르크를 사기 위해 금 두 통을 가져왔지만, 그의 아내가 몰래 금을 모래와 자갈로 바꿔치기하여 망신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성문 안쪽 아치 천장의 머릿돌에는 '가시를 빼는 소년'의 로마네스크 양식 조각이 있는데, 이는 기독교적으로 해석되어 인간이 원죄의 가시를 품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문을 통과하는 모든 이에게 이를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슈바벤토어 옆 광장은 1848년 바덴 혁명 당시 독립 의용군이 정부군에게 패배한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있던 자리로, 비공식적으로 '1848년 마지막 바리케이드 광장(Platz der letzten Barrikade von 1848)'으로 불린다는 언급이 있다.
중세 시대에는 '오버토어(Obertor, 윗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2022년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제안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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