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독특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유명하여, 역사와 건축 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뿐 아니라 영적인 평화를 찾는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다.
방문객들은 '보마누아르 양식'으로 지어진 정교한 후진부를 감상하고, 역사적 요소가 담긴 예배당들을 둘러보며, 다채로운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 인상적인 오르간과 다양한 조각상 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시
- 디낭(Dinan) 기차역에서 하차 후 도보 또는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성당은 디낭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특징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이 성당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이다. 현대적인 작품과 세심하게 복원된 오래된 창문들이 조화를 이루며, 특히 햇빛이 투과될 때 내부 공간을 아름다운 빛으로 채운다.
15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브르타뉴 지방의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특히 3개의 방사형 예배당으로 이루어진 **'보마누아르 양식(style Beaumanoir)'**의 독특한 후진부(chevet)와 섬세한 석조 장식, 다양한 가고일 조각 등이 눈에 띈다.
17세기에 제작된 남쪽 트랜셉트의 정문은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의 본 건물과 대조되는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한 장식을 자랑한다. 내부 남쪽 트랜셉트에는 1889년 알프레드 올드노우(Alfred Oldknow)가 제작한 영국식 대형 오르간이 있으며, 조각된 밤나무 오르간 로프트와 함께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추천 포토 스팟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앞 (내부)
다채로운 빛이 쏟아지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보마누아르 양식 후진부 (외부 후면)
성당 뒷면의 독특한 보마누아르 양식 후진부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좋은 촬영 지점이다.
르네상스 양식 남쪽 정문 (외부)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장식된 남쪽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에 적합하다.
방문 팁
미사 시간을 피해 방문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기부 환영).
몇 유로를 내고 초를 봉헌하며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제단 뒤편 진열장에 역사적인 교회 성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상점가와 연결된 남쪽 입구 외에도 서쪽 정문의 히브리어 명문도 의미가 있으니 확인해 볼 만하다.
역사적 배경
최초의 생말로 성당 건립
디낭의 자작 올리비에(Olivier)에 의해 성벽 바깥, 현재의 생 조아생 예배당(Chapelle Saint-Joachim) 자리에 최초의 생말로 성당이 세워졌다.
최초 성당 파괴 및 재건 계획
프랑스 군의 위협에 직면한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 2세는 방어 전략상 첫 번째 생말로 성당의 파괴를 명령하고, 성벽 내부에 새 성당을 짓는 데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장 2세 드 로앙(Jean II de Rohan)이 재건 프로젝트를 이어받았다.
현 성당 착공
현재 위치에 생말로 성당의 첫 번째 돌이 놓였다.
주요 부분 건축
성가대석, 트랜셉트(익랑), 네이브(신랑)의 중앙부 등 주요 구조가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종탑 건설
첨탑을 제외한 종탑 부분이 건설되었다.
남쪽 트랜셉트 정문 건설
르네상스 양식의 남쪽 트랜셉트 정문이 세워졌다.
성당 수난기
성당은 곡물 시장, 마구간, 공연장, 병영 등으로 사용되며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귀족 문장 등이 파괴되었다.
종교 시설로 반환
성당은 다시 가톨릭 예배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한 상태였다.
네이브 완공
네오고딕 양식으로 네이브가 완공되었으며, 기존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을 존중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서쪽 정면도 이때 완성되었다.
역사 기념물 지정
생말로 성당은 프랑스의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되었다.
여담
원래 성벽 밖에 있던 생말로 성당은 브르타뉴 전쟁 중 전략적 이유로 성벽 안으로 이전하여 재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르타뉴 정치의 중요 인물이었던 장 2세 드 로앙(Jean II de Rohan)이 재건축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 성당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3개의 방사형 예배당이 특징인 후진부의 '보마누아르 양식'은 당시 브르타뉴에서 유행하던 평평한 후진부와 차별화된 선택이었다고 평가된다.
종탑은 원래 높은 화강암 첨탑을 계획했으나, 건설 자금이 생말로(Ille-et-Vilaine) 시로 잘못 전달되었다는 속설과 함께 미완성으로 남았다.
측면 통로(déambulatoire)의 한 요석(clé de voûte)에는 일곱 가지 대죄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장 2세 드 로앙과 브르타뉴 공작 간의 갈등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서쪽 주 출입구에는 레위기 25장 10절에서 인용한 히브리어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당의 종 중 가장 큰 '그로-말로(Gros-Malo)'라는 이름의 종은 종탑의 종실에 비해 너무 커서 바닥에 일부가 박힌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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