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미를 간직한 오라토리오 예배당은 현재 낭트 미술관의 일부로 운영되며, 역사 건축물과 예술 전시에 관심 있는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다양한 전시와 문화 행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으며, 예배당 내부의 섬세한 장식과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 낭트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트램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낭트 미술관(Musée d'Arts de Nantes) 또는 오라토리오 광장(Place de l'Oratoire)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자세한 노선 및 시간표는 낭트 대중교통(TAN) 웹사이트나 앱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이용
- 예배당 자체 주차장은 없으나, 인근에 유료 공영 주차장이 다수 있다.
- 낭트 미술관 방문객 주차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유용하다.
주요 특징
17세기에 건축된 예배당의 바로크 양식 파사드는 필라스터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하며, 건축 당시의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방문객들은 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거나 건축물의 정교한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상시 개방 (외부)
예배당 내부는 코린트식 기둥과 천사 머리 조각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 바로크 시대의 종교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현재는 낭트 미술관의 부속 건물로 다양한 전시회, 콘서트, 강연 등이 열리는 특별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운영시간: 낭트 미술관 운영 시간과 동일
추천 포토 스팟
바로크 양식 파사드 정면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 정면은 방문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진 촬영 장소이다. 특히 건물 전체의 균형미와 장식적인 요소를 담기에 좋다.
예배당 내부 (전시와 함께)
내부의 코린트식 기둥과 천사 조각,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전시물을 배경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 예술의 조화를 담아낼 수 있다.
페롱(Perron) 계단 위
18세기 도시 정비로 인해 추가된 입구 계단인 페롱 위에서 예배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독특한 구도를 연출할 수 있다. 주변 광장의 모습도 함께 담을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낭트 미술관과 통합 운영되므로, 미술관 방문 시 함께 둘러보는 일정으로 계획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예배당 내부에서는 특별 전시나 행사가 자주 열리므로, 방문 전 낭트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하면 더욱 풍성한 관람이 가능하다.
역사적 배경
오라토리오 수도회 낭트 정착
오라토리오 수도회가 낭트에 정착하여 교육 활동을 시작한다.
예배당 건축
자크 말레르브와 질 코르비노의 설계로 예배당이 건축되고 1665년에 봉헌된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광장 정비 및 페롱 설치
장 바티스트 세느레의 도시 계획에 따라 오라토리오 광장의 지반이 낮아지면서 예배당 입구에 페롱(계단식 현관)이 만들어진다.
르라쇠르 호텔 통합
예배당 남쪽 파사드에 르라쇠르 호텔(Hôtel Lelasseur)이 통합된다.
프랑스 혁명과 용도 변경
프랑스 혁명으로 오라토리오 수도회가 해체되고 예배당은 국유화되어 형사재판소, 헌병대 막사, 기록 보관소, 고고학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노동자 클럽 본부
노동자 클럽인 '오라토리오 클럽'의 본부로 사용된다.
세스메종-루싱게 호텔 건축
예배당 북쪽 파사드에 세스메종-루싱게 호텔(Hôtel de Sesmaisons-Lucinge)이 들어서면서 예배당 파사드가 두 건물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임시 종교 기능 수행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손상된 낭트 대성당을 대신하여 잠시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 등이 거행된다. 이후 인도차이나 전쟁 및 알제리 전쟁 전사자들을 위한 안치소로도 사용된다.
역사 기념물 지정
르라쇠르 호텔의 일부로서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다.
복원 공사
낭트 미술관의 부속 건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 공사가 진행된다.
낭트 미술관 부속 전시 공간
낭트 미술관의 일부로서 전시회, 콘서트, 강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담
원래 17세기 오라토리오 수도회의 예배당으로 지어졌으며, 건축가 자크 말레르브(Jacques Malherbe)가 시작하여 그의 사후 질 코르비노(Gilles Corbineau)가 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본래의 종교적 기능을 잃고 형사재판소, 헌병대 막사, 기록 보관소, 심지어 고고학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48년 혁명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정치 클럽인 '오라토리오 클럽(club de l'Oratoire)'의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자유주의적 성향의 클럽과 대비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낭트 대성당이 손상되자, 이 예배당에서 임시로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 등이 거행되는 등 종교 기능을 다시 수행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낭트 출신의 유명 정치가이자 프랑스 혁명 및 나폴레옹 시대의 경찰 총수였던 조제프 푸셰(Joseph Fouché)는 젊은 시절 오라투아르 교단에서 수학과 물리 교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예배당의 설계는 당시 오라토리오 수도회 총장이었던 아벨 드 생트 마르트(Abel de Sainte-Marthe)가 구상했으며, 반종교개혁의 정신을 반영하여 측랑이나 주보랑이 없는 단순한 구조를 채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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